교육·실습은 수도권서 '무늬만 지역의대', 지역의료 살릴 수 있나

박정렬 기자 2024. 4. 4.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육·수련을 수도권에서 받는 '무늬만 지역의대'/그래픽=조수아


정부가 비(非)수도권을 중심으로 의대 증원 2000명의 배정을 완료했지만 정작 목표로 잡은 '지역의료 육성'에 대한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교육·수련받는 의대나 병원이 실상 수도권에 있는 '무늬만 지역 의대'가 상당수라서다. 전문의 수련을 광역시·도에서 하면 수도권에서 하는 것보다 최대 12배 '지역 의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연속성 있는 교육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 결과에 따르면 증가하는 의대 정원 2000명 중 82%인 1639명은 비수도권 대학, 나머지는 경기도·인천에 각각 배정됐다. 서울 소재 의과대학은 단 한명도 정원이 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현재 2023명으로 전체(3058명)의 66.2%에서 내년 3662명으로 72.4%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가 비수도권에 의대증원분을 집중적으로 배정한 것은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서다. 지역 의대를 나오면 해당 지역의 활동 의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는 거주지에서 제때, 최적의 의료를 받는 것으로 의대 증원을 포함해 현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 정원 배정 확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격차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정부가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확정한 20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해부학실습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증원 인원 2000명을 비수도권에 82%, 경기·인천 지역에 18% 배정했다. 서울은 제외됐다. 2024.3.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하지만, 시민사회와 의대 교수들은 단순히 지역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증원이 이뤄진 비수도권 의대 중 실제 교육·수련이 수도권에서 이뤄지는 '무늬만 지역 의대'가 상당수이라서다. 예컨대 정원이 4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난 울산대 의대는 울산이 아닌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있다. 건국대는 건국대 충주병원이 아닌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 실습받는다. 충남 순천향대(순천향대서울·부천병원), 강원 가톨릭관동대(국제성모병원), 대전 을지대(노원·의정부을지대병원) 등도 마찬가지다.

의대와 수련병원의 위치는 의사가 병원을 설립할 지역을 선택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현재 의료정책연구원)가 2020년 발간한 '의사의 지역 근무 현황 및 유인·유지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특히 전문의 수련지역이 지방 광역시와 도 지역인 경우 수도권보다 지역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각각 12.41배, 5.94배나 높았다. 수도권에서 전문의를 따고 지방으로 내려갈 확률은 그만큼 낮다는 의미도 된다. 수련병원 위치는 성장(출신), 의대 졸업하기보다도 '지역 의사'를 선택하는데 훨씬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근무 의사의 의대 졸업지역 및 수련 지역 비율/그래픽=조수아


의사·약사·한의사·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연합)은 정부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사립대 의대 증원 인원 1194명 중 수도권에 병원이 있는 사립대가 764명(64%)이나 된다"며 "이번 증원은 수도권 민간 대형병원들의 민원 수리 성격이 짙다"고 비판했다. 비수도권 중심의 의대 증원 배분은 '명분'일 뿐, 사실상 수도권 대형병원에 인건비가 싼 전공의를 보급해 배를 불리게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지역에 수련병원이 위치한 국립대 의대 교수들도 지역의료와 비수도권 의대 증원은 '별개 사안'으로 보고 있다. 현재도 의대 정원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 4대 6 정도지만 전공의 정원(티오)은 6대 4로 정반대다. 수도권 병원이 전공의 확보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공의 자신도 환자가 많고 시설이 잘 갖춰진 수도권 병원을 선호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소속인 오세옥 부산대병원 교수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의대 증원 취소 집행정지 사건 심문 기일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회장은 "현재 의료 수가(비용) 체계에서 환자가 없는데 개원하면 만성적자에 시달린다. 환자와 병상이 많은 수도권으로 가지 어떤 의대 졸업생이 적자를 감수하며 지역에 남겠느냐"며 "조만간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이 6600병상 증가할 예정인데 이러면 지역 의대 출신들은 수도권에 더 몰릴 수밖에 없다. 비수도권 의대 정원이 늘었다고 지역·필수 의료가 보장된다는 건 착각"이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이 늘어도 지역 병원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인력·시설을 단시간에, 충분히 갖추기란 버거운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급격한 의대증원이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에 필요한 전공의 수급을 위한 정책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달 21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이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개원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값싸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과도한 병상 증가를 억제하고, 지역 필수 의료를 위한 병상은 적절히 확충될 수 있도록 병상 관리 대책을 충실히 추진하겠다"며 "전공의 비율도 입학정원 규모에 맞춰 5:5를 목표로 지속해서 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