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교육 카르텔 수사 중에...초대 국수본부장, 메가스터디 사외이사行

주형식 기자 2024. 4. 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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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공직자윤리윈회도 ‘취업 승인’
경찰 내부 “수사 공정성 논란 우려”
남구준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이 작년 2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청사를 떠나고 있다.

남구준 경찰청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이 입시 학원 ‘빅(big) 3′ 중 하나인 메가스터디교육(이하 메가스터디)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실이 4일 드러났다. 경찰의 ‘사교육 카르텔’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수본 수장이었던 남구준 전 본부장이 메가스터디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향후 수사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남 전 국수본부장은 지난달 28일 메가스터디 주주총회에서 사외 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임기는 3년이다. 그는 작년 2월 국수본부장(치안정감) 보직을 끝으로 경찰 제복을 벗었다. 국수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의 각종 수사를 총괄하며 약 3만명의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경찰 핵심 수뇌부 중 하나다. 계급도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인 치안정감으로 전국에 7명 뿐이다.

사외이사로 선임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남 전 본부장의 ‘취업 승인’ 결정을 내렸다. 윤리위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남 전 본부장의 취업이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현행법상 4급 이상 재산등록의무자 등으로 퇴직한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퇴직 후 3년 간 취업심사대상기관으로 취업하려는 경우 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윤리위원회의 이 같은 판단은 현재 경찰 수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사교육 카르텔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퇴직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국수본부장이 대형입시학원 사외이사로 간다는 건 누가 봐도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경찰청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는 메가스터디를 포함한 대형 입시 학원들을 대상으로 사교육 카르텔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지문에서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 지문과 같은 문제가 출제돼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이 일타 강사의 소속이 메가스터디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은 입시 업체 메가스터디의 일타 강사 교재에 실린 지문과 일치했다. 지문 내용은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하버드대 교수가 쓴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다만 강사 교재는 지문의 어휘 뜻을 묻고, 수능 문제는 문장 주제를 물어 문제 유형은 달랐지만, 지문이 같아 해당 교재를 푼 학생은 수능에서 지문을 다 읽지 않아도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수능 문제가 학원 문제집 등과 유사하다는 의혹은 자주 제기됐지만, 교육부가 정식 수사를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남 전 본부장의 재취업은 윤리위원회의 심사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송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리위는 지난 5년간(2019년~2023년 8월) 정부 56개 부처 총 3371건의 퇴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재취업 심사를 벌였다. 이 중 3133건(92.3%)이 취업가능 및 취업승인 판정을 받았다. 경찰청이 930건(전체 968건)으로 취업 승인 숫자가 가장 많았다. 뒤이어 국방부 440건(전체 499건), 검찰청 187건(전체 192건), 국세청 143건(전체143건) 순이다. 윤리위 관계자는 “재취업 심사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남 전 본부장은 경찰대 5기다. 윤희근 경찰청장(7기)보다 두 기수 위다. 남 전 본부장은 경남 창원중부서장,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등을 지내고, 2018년 8월부터 1년간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문 전 대통령 측근인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다. 경찰이 추천한 국수본부장 후보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본지는 남 전 본부장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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