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헤드윅, 가발을 벗어던질 용기... 그리고 ‘뽀드윅’ 

2024. 4.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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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제공: 쇼노트)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 화제작 ‘헤드윅’이 2024년 14연으로 아주 생생하게 돌아왔다. 그뿐이랴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뽀드윅(뽀얀 헤드윅)’ 배우 조정석 역시 8년 만에 다시 무대를 찾았다.

‘헤드윅’은 1961년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녀가 남편 이츠학과 앵그리인치 밴드와 함께 뉴욕 밀레니얼 소극장에 서기까지.

극장 뒷문이 열리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힘을 준 언니가 등장한다. 더 하얘져서 돌아온 ‘뽀드윅’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온갖 교태를 부리며 무대로 향한다. 심지어 생중계카메라까지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이고 싶은 그녀다. 날개를 활짝 펴고 ‘Tear Me Down’ 넘버를 걸쭉한 목소리로 부르며 또각또각 활보한다. 여전한 춤사위는 나무랄 데가 없다.

뮤지컬 ‘분노의 질주’ 세트장을 그대로 써야 하는 처지. 먼지가 쌓인 폐차장이지만 놀랍도록 혁신적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약간은 들떠 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현재 결별한 락스타 토미 노시스와의 스캔들로 바깥은 시끄러운 상황. 스크린은 대서특필된 신문이 줌 인 앤 아웃된다. ‘뽀드윅’은 AI를 제법 알고 있는 듯하지만 천연스레 넘어간다.

헤드윅(제공: 쇼노트)

관객들이 경청하자 그녀는 더 깊은 상처로 안내한다. 차 트렁크를 열어 숨겨둔 고프로에 애교를 발사하고는 기구한 삶을 덤덤히 노래한다. 본명은 한셀 슈미트. 어린 시절 미군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냉대 속에 자랐다. 유일한 즐거움은 라디오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는 70년대 글램 록밴드 음악. 그리고 사랑의 기원, 나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 정도.

의자에 걸터앉은 한셀 앞으로 샤막이 내려온다. ‘The Origin of Love’ 넘버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 드로잉들은 하나같이 어지럽고 투박하다. ‘뽀드윅’은 여기서도 잘 그렸지 않냐며 넉살을 떨지만 말끝에는 불안한 떨림이 있다.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은 안쓰러움으로 바뀌어 있다. 당장이라도 무대로 튀어나가 꽉 끌어안아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헤드윅(제공: 쇼노트)

이런 그에게도 운명을 달리할 기회가 찾아온다. 미군인 루터로부터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프러포즈를 받은 것. 자유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말에 ‘헤드윅’으로 개명하고 불법 성전환수술을 감행한다. 불우하게도 헤드윅에게는 1인치 살점만 남는다. 그 또는 그녀가 된 ‘뽀드윅’은 악에 받쳐 ‘The Angry Inch’ 넘버를 쏟아낸다. 옆에 있던 앵그리인치 밴드도 가세해 무아지경으로 휘몰아친다.

하물며 베를린 장벽마저 무너지고 루터에게까지 버려진다. ‘뽀드윅’의 신들린 카워시가 아무 의미 없게 된 것이다. 그녀는 트레일러에서 짙은 화장과 선물 받은 가발로 애써 우울한 감정을 가려본다. 들키고 싶지 않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모순된 꼴로 ‘Wig in a Box’ 넘버를 흥얼거린다. ‘뽀드윅’은 그만 댄스신동의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처량한 신세를 잊을 만큼 발칙하고 아름다운 게 문제라면 문제.

헤드윅(제공: 쇼노트)

헤드윅은 락 밴드로는 벌이가 시원치 않자 베이비시터로 일한다. 거기서 만난 반쪽 토미와의 사랑은 ‘뽀드윅’의 낯뜨거운 애드리브가 증명해 준다. 그러나 토마토 가슴도, 고장난 성기도, 영원한 사랑도 가짜라는 진실을 마주하고 끝내 절규한다. 그녀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가발을 벗기로 한다. 옷도 속옷도 벗어던진다.

비로소 홀가분해진 ‘뽀드윅’의 진가가 나타나는 시간. 처절하지만 자유롭고, 위태하지만 여유로운 움직임에 순간 압도된다.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잔상이 머무르는 이유다. 이때 헤드윅은 소년 한셀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관객들도 하나 둘 ‘Midnight Radio’ 넘버에 손을 들고 마음을 맡긴다. 이츠학까지 포효하고 나면 마침내 진짜 자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헤드윅(제공: 쇼노트)

“하든지 말든지 나는 나 세상 단 하나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진 나” -Wig in a Box
“지지 말아, 포기 말아, 손을 들어” -Midnight Radio

동독과 서독, 젠더퀴어, 로큰롤 전부 몰라도 좋다. 우리네 달고 쓴 인생과 피차 다를 거 없으니. 그녀의 감정선만 잘 따라가면 관람 전보다 더 다정해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뽀드윅’의 에너지는 가능한 리앵콜까지 흡수하고 오시라.

한편,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헤드윅’은 오는 6월 2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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