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의 폭주가 만든 도파민과 그 한계('로얄로더')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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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드라마, 누아르 그리고 파국을 거쳐 ‘로얄로더’가 도달한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로얄로더>의 영문 제목은 'The Impossible Heir' 즉 '불가능한 후계자'란 뜻을 담고 있다. '밑바닥 마이너리거들의 반란'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달린 이 작품은 강오그룹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든 한태오(이재욱), 강인하(이준영) 그리고 나혜원(홍수주)의 치열한 대결을 다뤘다.

그 시작은 마이너리거 청춘들의 성장드라마로 문을 열었다. 새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엄마와 함께 도망치며 살아가는 한태오와 강오그룹의 핏줄이지만 서자의 운명인 강인하, 그리고 도박에 빠진 엄마 때문에 대신 빚쟁이들에게 몰리게 된 나혜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러나 평균 그 이상의 꿈을 꾸며 그 욕망을 실현시켜 나간다. 명석한 두뇌로 강인하를 동아줄 삼아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한태오와, 그와 함께 강오그룹 재벌가에 입성해 그 왕좌를 차지하려는 강인하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한태오에 대한 사랑 대신 강인하를 통한 신분상승의 욕망을 선택하는 나혜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똑같은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가며 우정을 이어온 이들의 관계는 나혜원이 강인하와 결혼을 하고 강인하가 점점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폭주를 드러내면서 서서히 균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결국 이 관계를 파탄내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강오그룹 장남 강인주(한상진)를 마약에 취한 한태오가 살해했다는 누명이 씌워지고, 교도소까지 가게 된 한태오는 그 사건의 주범이 바로 강인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반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성장드라마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강인하가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죽고 죽이는 누아르로 변모한다.

죽고 죽이는 누아르로 변모한 드라마는 도파민의 자극성을 높였지만 대신 개연성을 지워버리고 게임 같은 끝없는 대결 양상으로 흘러갔다. 살인까지 저지르며 흑화한 강인하는 한태오는 물론이고 나혜원까지 밀어내고 심지어 아버지인 강중모(최진호)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강오그룹을 쪼개서라도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려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태오는 강중모의 허락하에 강인하와 대적해 나간다. 하지만 끝내 강중모가 강인하를 내치려 하자 강인하는 선을 넘는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하는 비정한 선택까지 하게 되는 것.

그런데 강인하의 흑화로 폭주하던 이 누아르가 된 이야기는 너무나 간단하게 판을 뒤집는다. 강인하가 강인주를 살해했다는 증거 하나로 그는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고, 그로부터 3년 후 한태오가 강오그룹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판타지로 처리된 결말은 어떻게 그게 가능해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를 빼놓았다. 그저 죽다 살아난 강중모가 한태오에게 그 왕좌를 물려주게 됐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다면 이건 제대로 된 성장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한태오의 성공을 향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상처들이 존재했지만, 결국 왕좌는 왕위에 있는 자가 물려주는 것에 의해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건 허탈감을 만든다. 게다가 그 왕좌를 향한 이전투구 속에서 보여지는 갖가지 비리와 부정들은 마지막 엔딩에 와서는 결국 권력을 쟁취한 자들의 웃는 얼굴로 마무리된다. 재벌가에 선을 대어 대통령이 된 자가 보여주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은 그래서 모든 게 다 평화로워졌고 행복해졌다는 동화같은 엔딩에 들어와 있지만 영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드라마는 갈등이라 끝없는 대결이 그 추동력을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때론 그 대결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애초 하려던 이야기나 메시지 같은 것들이 희석되어버리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로얄로더>의 아쉬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다 큰 대결의 갈등을 위해 한 인물의 폭주가 만들어낸 도파민은 컸지만, 그것이 갑자기 모든 갈등을 간단히 봉합해버린 용두사미의 결과로 이어진 점은 더 큰 한계를 드러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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