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에 흥하고 잔디에 쓰러지다... 독일 3부 팀의 악명높은 홈 구장

이영빈 기자 2024. 4. 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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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로축구 3부리그 팀인 FC자르브뤼켄은 자국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는 팀이다. 자르브뤼켄은 3부리그 중하위권 팀인데도 올 시즌 독일축구협회(DFB) 소속 모든 구단이 실력을 겨루는 DFB 포칼(독일컵)에서 4강까지 올랐다. 자르브뤼켄은 32강에서 김민재(28)가 뛰는 최고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을 2대1로 꺾었다. 이어진 16강에서 분데스리가(1부) 프랑크프루트를 2대0으로 이긴 뒤 지난 달 12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1부)마저 2대1로 꺾었다. 독일 매체 스포츠차우는 “동화 같은 경기들”이라고 했다.

자르브뤼켄 홈 구장인 루트비히스파르크 슈타디온 구장의 잔디. 군데군데가 움푹 파여 있다. /로이터 뉴스1

특이하게도 자르브뤼켄의 약진은 홈 구장인 루트비히스파르크 슈타디온의 질 나쁜 잔디 덕분이라는 평이 많다. 이곳 경기장은 제대로 자라나지 않은 잔디 때문에 군데군데 파여 있다. 배수 시설마저 좋지 않아 비가 오면 진흙탕처럼 변한다. 독일 매체 빌트는 “자르브뤼켄의 울퉁불퉁한 잔디밭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DFB 포칼은 결승을 제외하고는 낮은 시드 팀의 홈에서 펼쳐진다. 3부리그 팀인 자르브뤼켄은 64강전부터 4경기를 모두 홈에서 치르면서 대회 규정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과의 32강전을 앞두고는 며칠 동안 비가 와서 경기장이 엉망이 됐다. 뮌헨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도 나서야 하는 바쁜 일정 탓에 경기를 미룰 수 없었다.

질퍽하고 거친 잔디에서 공이 제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뮌헨이 제대로 된 패스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던 반면 진흙탕에 익숙한 자르브뤼켄은 상대적으로 쉽게 공을 주고받으면서 뮌헨을 제압했다. 자르브뤼켄 선수단 전체 시장가치는 약 668만유로(약 95억원). 뮌헨 수비수 김민재(6000만유로·약 860억원)의 9분의 1 수준이다. 16강 프랑크프루트전도 비슷했다. 디노 토프묄러(44) 프랑크프루트 감독은 듬성듬성 솟아난 잔디에 “경기장이 무너진 줄 알았다”라고 했다.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기뻐하는 자르브뤼켄 골키퍼 팀 슈라이더. /로이터 뉴스1

자르브뤼켄의 잔디 앞에 무릎 꿇는 팀이 늘어나자 DFB는 칼을 빼들었다. 묀헨글라트바흐와의 8강전을 한 달 가량 미루면서 잔디를 보수하도록 했다. 자르브뤼켄시는 초등학교 운동장 개조, 주민센터 화재 방지 시설을 지을 예산을 급하게 빼서 루트비히스파르크 슈타디온 잔디 보수에 집행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다시 심은 잔디가 잘 자라나지 않으면서 큰 변화가 없었다. 더는 일정을 미룰 수 없던 DFB는 결국 경기를 그대로 진행시켰다. 때마침 쏟아진 비 속에서 자르브뤼켄은 또 승리를 거뒀다. 자르브뤼켄 미드필더 리하르트 노이데커(28·독일)는 “좋지 않은 경기장이 확실히 우리에게 유리한 것 같다”고 했다.

4강전 역시 지난 3일 자르브뤼켄의 홈 구장인 루트비히스파르크 슈타디온에서 열렸다. 상대는 2부리그 중하위권 카이저슬라우테른. DFB는 자르브뤼켄 홈에서 열리는 3부리그 경기마저 미루고 다시 잔디 보수에 힘쓰게 했다. 자르브뤼켄은 “지난 며칠 동안 잔디 상태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했지만, DFB는 지난 경기마다 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경기 전날에도 자르브뤼켄의 승리를 바라는 듯한 비가 왔다.

지난 3일 DFB포칼 4강전이 펼쳐진 루트비히스파르크 슈타디온. /AFP 연합뉴스

경기 당일 치열한 공방전 도중 후반 8분 자르브뤼켄 골대를 향해 상대팀 선수가 헤딩 슛을 했다. 힘 없이 땅으로 떨어져 높이 튀어 올라야 했던 공이 낮게 바운드 돼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통과해 골로 연결됐다. 잔디가 물을 잔뜩 먹어 공이 튀어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젖어 있었던 것이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선제골에 힘입어 후반 20분 추가골을 넣으면서 DFB 포칼 결승으로 향했다. 독일 매체 디 차이트는 “만약 물이 그렇게 깊지 않아버렸다면 공이 그렇게 이상하게 튀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기가 끝난 후 자르브뤼켄 선수들은 멍한 표정으로 잔디밭에 가라앉아 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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