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환경보안관 지나간 자리 “거리는 깨끗, 마음은 산뜻”

서울앤 2024. 4. 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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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재활용·안전 책임지는 마포구 ‘우리동네 환경보안관’ 동행기
담배꽁초, 전단지, 과자 봉지, 귤껍질에 심지어 개똥 봉지도 나와

[서울&] [커버스토리] ‘거리 청소, 우유갑·커피박 수거 재활용, 아이들 안전 지킴이’ 역할

친환경 탈취제 만들어 주민에게 나눠줘

우유갑, 휴지로 교환해 저소득층 기부

“민선 8기 공약…앞으로 더 많은 역할”

마포구는 지난해부터 65살 이상 주민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청결한 생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우리동네 환경보안관들이 3월28일 망원2동 주민센터에 모여 활짝 웃고 있다.

마포구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으로 활동하는 신병훈(77)·김인순(72)씨가 3월28일 오후 손수레와 쓰레기봉지, 그리고 집게를 손에 들고 망원2동 주민센터를 나섰다.

제일 먼저 망원2동 주민센터에서 가까운 카페 허니빙에 들렀다. “이곳이 제일 처음 들르는 곳이에요.” 신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주인 전순이(55)씨가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시는데 제가 우유갑과 커피 찌꺼기를 모아서 드리면 가져가세요.” 전씨는 “겨울에는 하루 나오는 양이 얼마 안 돼 그냥 버렸는데 죄짓는 기분이 들어 썩 좋지 않았다”며 “일주일씩 모아보니 의외로 양이 많아 모아서 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이 작업해서 휴지로 바꿔 좋은 일에 쓴다고 하니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전씨는 미리 준비해둔 우유갑과 커피박을 환경보안관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유갑과 커피박을 손수레에 싣고 길을 재촉했다.

김인순(왼쪽)·신병훈씨가 골목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잠시 통신주를 바라보던 김씨는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전단을 능숙하게 떼어냈다.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듯 보였다. 두 사람은 길가에 보이는 담배꽁초, 종이 조각, 과일 껍질 등을 보이는 족족 집게로 집어 쓰레기봉지 안에 담았다. 두 사람이 지나간 길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

10여 분 남짓 걷자 망원초등학교 옆을 지났다. “환경보안관 어르신들이 초등학교 주변에도 다녀서 엄마들이 굉장히 안심해요.” 윤정아 마포구 어르신동행과 어르신지원팀 주무관은 “환경보안관은 분홍색 조끼와 모자 덕분에 깔끔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며 “활동 시간이 아이들 학교 마치는 시간이라서 혹시 아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를 지나자 두 사람은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며 계속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신씨가 도로변 하수구 빗물받이를 가리켰다. “이런 곳에 쓰레기가 많아요. 어떻게, 버려도 이런 곳에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신씨는 집게를 들어 하나씩 쓰레기를 집어냈다. “깨끗한 데는 못 버리고 더러운 데는 더 버려요. 빗물받이는 재떨이예요. 담배꽁초가 유난히 많아요.” 신씨는 “지저분한 곳에는 더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더라”며 “그래서 처음 일주일 동안 계속 치웠더니 나중에는 덜 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덧 망원유수지 체육공원 옆길을 따라 걸었다. 김씨에게 손이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집게를 새로 바꿨다”고 했다. 김씨는 “집게질을 많이 하다보니 손가락이 아프더라”며 “좀 더 부드러운 집게로 바꿨더니 힘도 덜 들어 이젠 좀 낫다”고 했다.

김인순씨가 마포구민체육센터 내 ‘카페 리’에서 우유갑을 전달받고 있다.

마포구민체육센터 못미처 도로변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원래 무척 지저분했어요. 오다 가다 행인이 버리는지, 아니면 주차장 이용하면서 버리는지 옆에 있는 길은 깨끗한데 차를 주차한 곳 주위는 쓰레기장이에요.” 신씨가 차들이 주차된 주차장 사이사이를 가리켰다. “여기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엉망이었어요. 매번 누가 버리면 여기다 또 버리는 것 같아요. 담배꽁초만 한 보따리였어요.” 신씨는 “지금도 버리긴 하지만 양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쓰레기를 주워 담은 두 사람은 마포구민체육센터 내 있는 ‘카페 리’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많은 양의 우유갑과 커피박을 손수레에 담았다. 제일 먼저 들른 허니빙보다 몇 배는 많았다. 커피박은 일부만 담고 일부는 남겨뒀다. 그래도 손수레 가방 안이 꽉 찼다.

두 사람은 동교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골목길을 누비며 다시 망원2동 주민센터 쪽으로 향했다. 김씨가 차도에 떨어진 전단을 주우려 손을 뻗쳤으나 집게가 닿지 않아 포기했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집게를 움직였다.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신씨가 쓰레기를 집어 오면 김씨가 쓰레기봉지를 열어주는데, 호흡이 척척 맞는 듯했다.

“아이고 이게 뭐야.” 김씨가 갑자기 집게로 검정 비닐봉지를 주워 올렸다. “개똥이네, 개똥. 집에 그냥 가지고 가지 양심이 없어.” 김씨는 “그냥 봉지 없이 버려진 경우도 더러 있는데, 그래도 봉지에 싼 걸 보니 그나마 ‘반 양심’은 있는가보다”라며 그래도 한심한 듯 혀를 찼다.

그렇게 골목길을 돌고 돌아 나오니 망원2동 주민센터가 보였다. 다른 조 환경보안관들도 저마다 손수레와 쓰레기를 담은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이날 두 사람이 수거한 쓰레기는 담배꽁초, 빨대, 귤껍질, 전단, 비닐, 페트병, 과자 봉지, 개똥 봉지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 중 담배꽁초가 가장 많았다.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이 통신주에 붙어 있는 전단을 제거하고 있다.

환경보안관들은 주민센터 1층에 쓰레기를 한데 모은 뒤 3층 회의실에 모였다. 지난주에 수거해 말린 커피박으로 친환경 탈취제를 만들었다. 일부는 탈취제 봉지에 스티커를 붙이고 일부는 숟가락으로 커피박을 봉지에 담았다. 한성길(77)씨가 가장 능숙하게 커피박을 넣고 있었다. 손놀림이 빨랐다. “제대로 요령 있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어요.” 한씨는 “이렇게 만든 탈취제는 주민센터 2층 민원실에 놔두는데, 인기가 좋아 금방 동난다”고 했다. 커피박으로 탈취제 만들기가 끝나자, 수거해 온 커피박을 다시 쟁반에 골고루 펴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옥상에서 말린 커피박은 다음주 탈취제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거리를 깨끗하게 치우다보면 마음도 깨끗해져요. 골목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면 1만 보 이상 걷게 돼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햇빛도 제대로 못 보는데, 운동도 되고 건강에도 좋아요. 거기다 나이 먹고 소일거리가 생겨 좋은데 돈도 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죠.” 신씨는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이라는 이름 자체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동네를 깨끗하게 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김씨도 “공공근로 등 다른 일도 해봤는데 이 일이 제일 재밌고 즐겁다”고 했다.

양경수 마포구 망원2동 동장은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이 커피박과 우유갑을 수거하는 것은 마포구가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상징적 활동”이라고 했다. 우리동네 환경보안관 활동 외에 마포구는 직접 일주일에 두 번씩 카페를 돌며 동마다 250㎏ 정도씩 커피박을 수거해 청소업체에 넘겨 퇴비로 활용한다.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이 망원2동 주민센터에서 커피박으로 친환경 탈취제를 만들고 있다.

마포구는 지역의 청결과 안전을 위해 지난해부터 모든 동에서 지역 노인들로 구성된 우리동네 환경보안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2월부터 11월까지 지난해보다 인원을 10% 늘린 110명이 활동한다. 주 5일, 하루 3시간씩 근무하는데 월 76만원 정도 임금을 받는다. 우리동네 환경보안관 활동은 안전을 위해 2인1조로 활동한다. 1개 조마다 원룸·주택 밀집 지역과 상권 밀집 지역, 상습 무단투기 지역 등 각 동의 환경취약지구 3~4곳을 전담한다. 커피박과 우유갑 수거를 비롯해 무단투기 상습 구역 순찰과 계도, 골목길 청소, 불법 전단 제거, 틈새 녹지 조성과 경관 개선, 안전 취약지구 순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윤정아 주무관은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은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65살 이상 주민에게 실질적인 임금을 보장하는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해 만들었다”며 “지역 생활 환경을 깨끗하게 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은 지난해 한 해 동안 커피 전문점 등에서 수거한 커피박으로 친환경 탈취제 9750개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우유갑 4만5180개를 수거해 휴지 1004개로 교환해 마포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다. 또한, 각 동 전담지역에서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1404회 순찰했고 빗물받이와 배수로를 1030회 정비해 여름철 강우 피해를 방지하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커피박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보안관이 소각제로가게와 동 주민센터 주변 커피 전문점을 방문해 주 2회 커피박을 수거한다. 윤 주무관은 “우리동네 환경보안관은 기존 활동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 영역과 내용이 열려 있다”며 “앞으로 필요한 곳이 있다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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