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꽃 만발한 봄…산호랑나비 날개 펼 날 멀지 않았다

한겨레 2024. 4.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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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노트’
청명(淸明), 신선한 꽃이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절기
노란색 꽃(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복수초, 산수유, 괭이눈, 민들레, 생강나무, 산괴불주머니)

청명(淸明), 싱그러운 이름 그대로 깨끗하고 맑은 날이다. 본격적인 봄의 절기이지만, 한낮에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덥다가 금방 변덕을 부린다. 아침, 저녁으로는 다시 추위와 눈을 내리니 아직은 예측 불허의 시절이다. 들쭉날쭉한 날씨이긴 해도 이미 봄 깊숙이 들어온 때라 겨울잠에서 깨어난 생물들이 잠깐 춥다고 활동을 멈추지는 않는다.

산속에 울려 퍼지는 청명한 빗소리에 꽃이 피고 새 잎이 돋는다. 새로 나온 신선한 잎과 꽃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곤충과 식물이 서로 때를 맞추는 동기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호랑나비와 꼬리명주나비의 번데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직 월동 중인 번데기에게 이제 깨어나라는 발육임계온도(Low Temperature Threshold)의 신호가 왔다. 발육임계온도의 문턱을 넘어 날개돋이에 필요한 온도가 쌓이는 동안 밖에서는 나비가 먹을 꽃과 애벌레가 먹을 식물의 새 잎이 나온다. 약 사나흘 후면 번데기가 산호랑나비와 꼬리명주나비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기후변화 실험 중인 호랑나비과 번데기 우화대
산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

자연에서는 봄의 색깔인 노란색이 곳곳에서 만발해 눈이 부시다. 복수초, 개나리, 민들레와 산수유, 생강나무까지 계곡으로 내려가면 괭이눈까지 지천이다. 꽃송이마다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요란하고, 나풀나풀 나비의 날갯짓이 소란스럽다. 골짜기마다 온갖 생명으로 에너지가 꽉 차 있다. 언제 오나 했는데 봄은 이미 한창이었다.

냉이와 쑥이 쑥 올라왔다. 농촌에서는 꼭 뽑아야 할 잡초로 취급되지만 이 시기만큼은 없애야 할 원수가 아니라 향긋하고 맛 좋은 봄철 음식 재료다. 삼시 세끼 밥하느라 고생 많은 아내도 봄부터는 반찬 걱정을 덜 하는 것 같다. 어제는 풋 채소와 산나물을 제철 음식이라며 발 빠르게 냉잇국과 쑥국을 끓이고 돌나물을 무쳐 식탁에 올린다. 27년간 제초제, 살충제 한 번 치지 않고 지킨 자연이 주는 보약이다.

몸에 좋아 약이 되는 봄나물은 제철 노지에서 캔 것이 으뜸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야외로 나가 봄나물을 캐는 일은 삼가야 한다. 길가에는 눈발만 날렸다 하면 뿌려대는 염화칼슘의 제설제로, 논둑은 각종 농약이 켜켜이 쌓여있다. 염분 농도가 높은 염화칼슘과 니코티노이드 계통의 독성 물질로 토양과 수질이 오염될 수 있어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차량 부식과 가로수 고사를 넘어 이제는 마음 놓고 봄나물 채취 못할 정도로 오염되고 있는 자연이 못내 안타깝다.

청명 즈음에는 때맞추어 봄비가 내려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와 뿌연 황사를 말끔히 씻어주어 하늘은 더 맑고 깨끗하다. 해마다 이맘때는 황사, 미세먼지로 경보·주의보가 발령되지만, 봄비가 이런 자연재해를 없애주니 천만다행이다. 기본적인 생존 요소인 깨끗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호흡하고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

2019년 6월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 중인 필자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와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이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물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이어져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늘었다. 제주 비자림로에 사는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를 지키는 활동을 벌이는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이들의 부탁을 받고 2019년부터 이들을 도와 서식지 조사를 벌이고, 애기뿔소똥구리 보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2022년 12월 ‘비자림로 도로구역 결정처분 무효소송’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사업의 실효성에 대해 우려까지 표했지만, 결국 도로 공사는 진행됐다. 짜인 각본대로 밀고 나가는 제주도정의 막무가내에 황당했지만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의지를 목격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환경이나 생명 존중, 멸종위기종 보전의 중요성, 모든 생물과의 공영을 알리는 환경단체나 개인의 조력을 보면서 큰 용기를 얻는다.

인큐베이터 실험실에서 월동중인 물장군

내복을 벗고 두꺼운 겨울 점퍼를 봄옷으로 갈아입으니 몸이 가벼워져 걸음걸이도 가뿐하다. 꼭두새벽에 잠을 깨 제일 먼저 물장군, 소똥구리 2종 등 멸종위기종이 월동 중인 인큐베이터 실험실에 들른다. 작년 10월 말 실험실에 입주했으니 6개월의 긴 휴지기를 마치는 시간이다. 고작 1년 내외를 사는 곤충들에게 휴면의 공백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이다. 곤충의 생활 주기에 맞춰 소똥구리는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가는 열흘 뒤에 깨울 계획이고, 물장군은 먼저 깨워 번식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긴다.

곤충이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 것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삶의 과정을 보면서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일 살뜰히 관리하며 필요한 조건을 맞춰주었는데도 겨울을 이기지 못하는 개체들이 있다. 죽은 물장군을 솎아내는 일은 늘 가슴이 아프다. 먹이를 찾아, 천적을 피해,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번식이 가능한 생명 충만한 봄을 누리지 못하는 놈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물장군은 암컷이 짝짓기 후에 수컷을 먹어 치우는 짝짓기 동종포식(같은 종의 동물을 먹이로 잡아먹는 것)을 할 뿐만 아니라 자매, 형제도 동종포식을 서슴지 않는 엽기적인 놈들이다. 잔인한 동종포식을 보면 물속의 망나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수컷이 죽을힘을 다해 알을 품어 보호하는 독특한 부성애(Paternal care)를 보면 감성적인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물장군은 물속 생태계를 초토화 시킨 황소개구리를 잡아먹는 최강의 포식자로 한반도 고유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이도 하다.

필자는 도시에 지쳐서 서울을 떠난 것도 아니고, 몸이 아파서 산속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사람으로 인해 병들고 상처 입은 나비를, 곤충을, 멸종위기종을 구출하고 생물 다양성을 확보해 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와 생물과 함께 살고 있다. 27년 전 자연에 기대어 생태적인 삶을 살아보려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지만 꽃 같은 세상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택해서 ‘자연인’이 되었지만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도 높은 위험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생명이 있으면 그건 좋은 일이다.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 무거운 현실을 잠시 잊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생명을 사랑하고 기르면 서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고 있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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