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이스라엘 오폭으로 직원 숨진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

정미하 기자 2024. 4. 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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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가자지구서 WCK 직원 7명 사망
스페일 출신 스타 셰프가 2010년 설립
아이티 대지진 구호 활동이 계기
푸에르토리코, 폴란드, 우크라이나도 지원
WCK 설립자,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 올라
사고 발생 후 가자지구 내 활동 중단
바이든 대통령·스페인 총리가 전화로 애도

지난 1일(현지 시각) 가자지구 중부에서 이스라엘군의 오인으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orld Central Kitchen·이하 WCK) 차량이 공격받아 이 단체 소속 직원 7명이 사망하면서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출신 셰프 호세 안드레스(José Andrés·54)가 설립한 WCK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안드레스는 스페인 출신 미국인으로 워싱턴DC 교외 베데스다에 거주한다. 안드레스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북서부 지역에서 태어나 5세에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케이터링 등을 공부한 뒤 영국의 음식 전문지 ‘레스토랑(Restaurant)’이 매년 발표하는 최고의 레스토랑 베스트 100에서 1위를 놓치지 않기로 유명한 엘 불리(El Bulli )의 유명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 밑에서 일했다. 이후 안드레스는 21살인 1991년에 미국으로 이주했고. 2년 만에 요식업계 거물로 떠올랐다. 그는 미국 전역에 40여 개의 레스토랑을 열었고, 유명 TV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orld Central Kitchen·이하 WCK) 바지선이 지난 3월 15일 가자지구 해안에 도착했다. / 로이터

안드레스가 WCK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이다. 당시 안드레스는 스페인 ‘오픈 암스(Open Arms)’와 협력해 아이티에 식량을 보급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아이티인들과 요리를 했다. 이 경험이 기반이 돼 안드레스는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2010년에 WCK를 설립했다. 안드레스는 지난해 11월 한 인터뷰에서 “아이티 지진 생존자를 지원하면서 ‘요리사가 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구호 활동을 확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들 옆에 있다”고 말했다. 안드레스는 아이티에 학교를 짓고, 학교의 주방을 개선했고, 식품 안전 교육을 실시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 아이티 대지진 구호 활동 후 WCK 설립,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도 식사 제공

WCK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즉시 투입할 수 있는 400명의 요리사와 레스토랑 경영자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재해 현장과 전쟁이 벌어진 지역에 공급할 푸드 트럭, 주방, 요리법과 재료를 찾는다. WCK는 현지 요리사도 고용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약 400명의 현지 팔레스타인이 60개 주방에서 일한다. WCK의 수석 관리자인 로라 헤네스는 NYT에 “우리 음식의 품질은 속도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WCK는 2018년에만 푸에르토리코, 캘리포니아, 하와이,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멕시코에서 300만 회 이상의 음식을 제공했다. 또한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벌어진 우크라이나에서도 구호 활동을 벌였다. 가자지구에서는 올해 3월부터 구호 활동을 펼쳤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WCK는 설립 이래 자연재해와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는 이들에게 3억5000만 개의 식사를 제공했다. 영국 BBC 방송은 “WCK가 지난달 29일까지 이집트 라파 국경을 통해 가자지구에 진입시킨 푸드 트럭은 170여 대”라며 “요르단을 거쳐서는 육로, 하늘길을 통해 23만 명분, 해상통로를 통해서 43만5000명분의 끼니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NYT는 “WCK는 한 상황에서 주방을 신속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아는 요리사와 안드레스의 카리스마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민첩하고 광범위한 구호 단체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NYT는 “안드레스는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재난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평가했다. 안드레스는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명으로 선정됐다. 2019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orld Central Kitchen·이하 WCK) 설립자인 스페인 출신 셰프 호세 안드레스(José Andrés·54·오른쪽). / 호세 안드레스 홈페이지 갈무리

WCK는 지금까지 막대한 자금을 모았다. 2019년에는 약 3000만 달러를 모금했고, 2020년에도 약 2억5000만 달러를 모았다. 워싱턴포스트(WP) 소유자이기도 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지난 2021년, 안드레스에게 ‘용기와 시민상’을 주면서 상금으로 1억 달러를 수여했다. 안드레스는 상금을 WCK 운영에 썼다. WCK가 2022년에 모은 보조금과 기부금은 5억1900만 달러에 달한다.

◇ WCK, 사고 직후 가자지구 내 구호 활동 중단…바이든도 통화해 ‘위로’

WCK는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와 협력해 가자지구 해안에 식량을 실은 수륙양용 선박을 착륙시킬 준비를 했다. 이를 통해 선박 두 척에 120만 명분의 식량을 가자지구 북부에 보낼 계획이었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구호품 전달을 위해 가자지구에 항구 건설을 준비 중이지만,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재난을 피할 만큼 신속하게 실행될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한 발상이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아부다비를 방문했고, UAE 관계자도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망 사고 발생 직후 WCK는 가자지구 내 구호 활동을 중단했다. WCK측은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며 “향후 활동에 대한 결정을 곧 내리겠다”고 밝혔다. 안드레스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WCK 가족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가자지구 중부에서 이스라엘군의 오인으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orld Central Kitchen·이하 WCK) 차량이 공격받아 사망한 WCK 소속 직원 7명. / AFP 연합뉴스

앞서 1일 오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리에서 WCK 소속 차량 3대가 구호품 창고에 100톤의 식량을 전달하고 떠나던 중 미사일 공격을 받아 WCK 직원 7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영국인 3명, 팔레스타인인 1명, 미국·캐나다 이중국적자 1명, 폴란드인 1명, 호주인 1명이다.

안드레스는 사고 발생 이후 X에 “이들은 사람이자 천사”라며 “그들의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며 애도했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는 무차별적 살인을 중단해야 한다”며 “인도주의적 지원 제한, 민간인과 구호 활동가 살해, 식량의 무기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드레스의 입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전쟁을 시작할 때와 다르다. 당시 안드레스는 스페인 정치권 일각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 범죄와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테러 행위이며,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구호품을 제공하려던 WCK의 계획이 이스라엘군의 오인으로 무산되면서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사고 발생 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깊은 애도와 사랑, 지지를 전하기 위해 안드레스와 연락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2일 안드레스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안드레스는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길 바란다. 평화는 인류 공동의 목적이며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글을 X에 남겼다.

한편,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자지구에서 전쟁 중 사망한 구호요원 수가 175명 이상의 유엔 직원을 포함해 최소 196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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