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 반 고흐…홍콩 곳곳에 깃든 거장의 숨결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4.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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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홍콩에 꽃핀 미술전시
아트위크 ‘ARTS In HK’ 맞춰
갤러리·미술관 등 잇단 특별전
신진작가 전면에 내세운 곳도
기획전 ‘ANDY WARHOL’S LONG SHADOW’이 진행 중인 갤러리 가고시안 홍콩에서 관람객이 앤디 워홀의 1981년작 ‘Dollar Sign’을 감상하고 있다. [홍콩=송경은 기자]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오후 홍콩 센트럴 지구.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홍콩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곳 거리는 세계적인 갤러리들의 잇단 전시 오프닝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미국의 신진 작가 카일리 매닝의 개인전 ‘Sea Change(해일)’로 문을 연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첫날 대형 회화 작품 5점이 모두 판매됐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세계 최대 경매사인 크리스티는 경매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판매 목적이 아닌 미술품 기획전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홍콩에서는 지난달 25~31일 열린 아트위크 ‘아트 인 홍콩(ARTS In HK)’을 시작으로 현재 다채로운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아트 인 홍콩은 1년에 한 번 세계적인 미술장터 아트바젤 홍콩과 신진 작가·신생 갤러리들이 주로 참가하는 아트페어 ‘아트 센트럴’, 홍콩 빅토리아항 일대의 대규모 야외 예술 프로젝트인 ‘아트@하버’가 동시에 개최되는 주간이다. 홍콩의 갤러리와 미술관, 경매사 등은 세계 각지의 미술계 관계자들과 컬렉터들이 모이는 이 기간에 맞춰 연중 가장 중요한 미술 전시의 막을 올린다. 거장들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센트럴 지구 페더빌딩의 가고시안 홍콩은 아트위크 첫날 20세기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을 주제로 한 기획전 ‘ANDY WARHOL’S LONG SHADOW(앤디 워홀의 긴 그림자)’를 오픈했다. 5월 1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워홀의 1960~1980년대 주요 작품 21점과 그가 영감을 불어 넣은 작가 11명의 작품 14점 등 총 35점으로 꾸며졌다. 워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릴린 먼로’ 연작은 물론 실크스크린 팝 회화라는 새로운 추상화 방식을 도입한 1964년작 ‘Flowers(꽃)’, 금융 아이콘을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온 ‘달러 사인’ 연작도 전시됐다. 워홀의 오랜 동료였던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도 여럿 선보인다. 워홀과 자신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Dos Cabezas(두개의 머리)’(1982) 등이다.

왼쪽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연작 중 하나인 1979년작 ‘Multicolored Marilyn(Reversal Series)’(1979). 오른쪽은 장미셸 바스키아가 워홀과 자신의 모습을 그린 ‘Dos Cabezas’(1982). 두 작품 모두 가고시안 홍콩에서 전시 중이다. [가고시안·홍콩=송경은 기자]
가고시안은 앤디 워홀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데 모으면서 워홀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일례로 ‘일본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신작 ‘Flowers, AW, 2024’는 워홀의 ‘Flowers’ 바로 옆에 걸렸다. 워홀의 흑백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는 낸 골딘과 스털링 루비, 더글라스 고든이 작업한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됐다. 가고시안 관계자는 “워홀은 20세기 다작을 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고, 그가 남긴 다양한 시도는 동시대 작가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 현대 예술가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홍콩의 비영리 문화예술 단체인 퍼스트 이니셔티브 재단(FIF)은 ‘아트@하버 2024’의 일환으로 네덜란드의 반 고흐 헤리티지 재단과 특별전 ‘Voyage with Van Gogh(반 고흐와의 항해)’를 공동 기획했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이 전시는 홍콩 침사추이의 홍콩문화센터 광장에서 오는 5월 31일까지 열린다. 시계탑이 매 정각 종을 울릴 때마다 대형 원통형 디스플레이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을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 영상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상영된다.

‘반 고흐와의 항해(Voyage with Van Gogh)’ 특별전으로 홍콩 침사추이의 홍콩문화센터 광장 시계탑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 작품. 비수라스튜디오
미국의 세계적인 개념미술 작가 글렌 라이건의 개인전 오프닝 행사가 열린 지난달 25일 하우저앤워스 홍콩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번 전시는 하우저앤워스가 올해 1월 센트럴 안에서도 핵심지로 꼽히는 퀸즈로드 한복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여는 두 번째 전시다. 라이건은 문학 속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회화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오일스틱(유채물감 스틱)을 이용한 스텐실 기법으로 책 속의 문장들을 캔버스 위에 입체적으로 찍어내고 그 위에 젯소, 석탄 먼지 등 재료로 리터칭해 그 얼룩으로 글자 일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5월 1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라이건은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1953년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에서 발췌한 글귀들을 화폭 위에 담은 ‘Stranger(이방인)’ 연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마을의 이방인’은 볼드윈이 스위스 산골 마을에서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서구권의 인종차별과 식민주의를 분석한 글이다. 하우저앤워스 관계자는 “라이건은 캔버스 위에서 벌어지는 텍스트의 가독성 변화를 통해 인종 차별과 같은 문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언어의 무능력을 탐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우저앤워스 홍콩에서 진행 중인 미국 작가 글렌 라이건의 개인전 ‘GLENN LIGON’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 ‘Stranger #98’(2023)을 보고 있다.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1953)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화폭에 옮겨 작업한 회화 연작이다. [홍콩=송경은 기자]
같은 날 스페인 출신의 인기 팝아트 작가 에드가 플랜스의 개인전도 개막했다. 센트럴 지구 에이치퀸스(H Queen’s) 빌딩에 위치한 탕 컨템퍼러리에서 5월 10일까지 열리는 ‘Heart of Fearlessness(대담한 마음)’이다. 이번 전시작에서도 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상의 동물 캐릭터 ‘리틀 히어로스(Little Heroes·작은 영웅들)’가 등장해 상상과 현실이 얽힌 이야기를 펼친다. 일례로 2023년작인 ‘Game Over, Insert New Planet(게임 오버, 새 행성을 삽입하세요)’에서는 히어로들이 황폐화된 지구를 둘러싸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내려다 본다.

탕 컨템퍼러리, 페이스갤러리 등과 함께 에이치퀸스 빌딩에 있는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 홍콩은 독일의 저명한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개인전을 5월 11일까지 연다. 틸만스는 시각예술가에게 주어지는 ‘터너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The Point Is Matter(중요한 것은 중요하다)’에서는 홍콩, 중국 선전, 독일 베를린 등에서 촬영한 사진 작품을 포함해 변화하는 분위기, 시간의 개념 등을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연출된 것인지, 순간을 포착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인물 사진에서도 작가 특유의 빛과 색감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개인전이 진행 중인 데이비드 즈워너 홍콩 전시장 전경. [홍콩=송경은 기자]
신진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운 갤러리들도 있다. 대부분 여성 작가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일례로 화이트큐브 홍콩에서는 영국의 여성 신예 작가 루이즈 조바넬리(31)의 홍콩 첫 개인전 ‘Here on Earth(여기 지구에)’가 5월 18일까지 열린다. 캔버스에 사건을 재현시켜 구상화와 추상화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는 조바넬리는 이번 전시에서 종교적 도상학과 변천, 헌신, 의식과 황홀경 사이의 관계 등을 집중 탐구했다. 1980년대 영화 스틸을 바탕으로 제작된 회화 연작 ‘마에나드’가 대표적이다. 마에나드는 그리스 신화의 신 디오니소스의 헌신적인 여성 추종자들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어딘가에 사로잡힌 듯 흥분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페이스갤러리 홍콩에서 5월 9일까지 열리는 카일리 매닝(41)의 개인전 역시 작가가 홍콩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마찬가지로 젊은 여성 작가다. 매닝은 오는 8월 코오롱그룹이 운영하는 서울의 미술관 스페이스 K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홍콩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지난해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의 안무가 크리스토퍼 웰던과의 협업 당시 받았던 영감을 토대로 제작한 것들이다. 당시 매닝은 발레 공연 ‘From You Within Me(내 안의 당신)’을 위한 배경 그림과 의상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춤을 추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은 마치 예술 공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카일리 매닝의 ‘Metronome(메트로놈)’(린넨에 유채, 203.2×243.8㎝, 2023). 페이스갤러리
캐나다 태생의 홍콩계 여성 신진 작가 수웬 청의 인공지능(AI) 아트도 침사추이의 문화예술 복합쇼핑몰 K11 뮤제아에 등장했다. 지난달 26일 개막해 5월 19일까지 계속되는 기획전 ‘아트 카니발’의 일환이다. ‘Us In Another Form(서로 다른 형태의 우리)’란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AI 로봇 팔에 붓을 쥐어 주고 작가가 옆에서 유화 물감을 묻힐 수 있도록 도와 완성한 회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실제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과 작업에 사용된 AI 로봇도 함께 전시됐다. 현재는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수웬 청은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LG전자의 대형 OLED 디스플레이를 총동원한 미디어 아트 전시 ‘BOUNDLESS REVERIE(무한한 환상)’도 아트 카니발을 통해 열린다. 중국과 프랑스 수교 60주년을 맞아 중화권 공예품과 현대미술 작품들을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로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관람객이 전시장 벽 화면에 손을 대거나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의 영상이 바뀌면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된다. 방 하나를 전부 OLED 화면으로 가득 채운 공간도 마련됐다. 이 전시는 유료다. 성인 기준 일반 티켓 가격은 100홍콩달러(약 1만7000원)다. 그 밖에도 K11 뮤제아 빌딩에는 회화, 설치, 공예 등 다양한 작품이 곳곳에 상설로 전시돼 있다.

홍콩 침사추이의 문화예술 복합쇼핑몰 K11 뮤제아에서 캐나다 태생의 홍콩계 신진 작가 수웬 청이 선보인 인공지능(AI) 아트 작품. AI 로봇(앞)과 협업한 회화 작품들이 벽면에 전시돼 있다. [홍콩=송경은 기자]
한편 크리스티 홍콩은 이번 홍콩 아트위크 기간 이례적으로 비판매 목적의 특별전을 열었다. 지난달 26~30일 홍콩 알렉산드라 하우스에서 열린 기획전 ‘1-54 Presents: Coalescent Lights(연합의 빛)’에서는 코트디부아르 태생의 우아타라 왓츠, 카메룬 출신 바르텔레미 토구오, 우간다의 사나 게이트자 등 최근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달 26~28일에는 VIP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리우 예의 회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프라이빗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동안 크리스티를 통해 낙찰된 리우 예 작품을 소장자들에게 빌려 홍콩의 초호화 신축 아파트 ‘하이 피크’ 지상(G)층과 6층 공간에 전시한 것이다. 프란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앞으로는 경매 외에도 다양한 기획 전시와 이벤트 등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계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30일 홍콩 알렉산드라 하우스에서 열린 기획전 ‘1-54 Presents: Coalescent Lights(연합의 빛)’ 전시장 전경. 미술계의 떠오르는 제3세계 작가들 작품을 조명했다. [홍콩=송경은 기자]
크리스티가 VIP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리우 예의 회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 프라이빗 전시 전경. 홍콩의 초호화 신축 아파트 ‘하이 피크’ 내부에 전시됐다.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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