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면접거부' 로스쿨 불합격 수험생, 승소 확정

조준영 기자 2024. 4. 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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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양심에 따라 면접 일정 변경을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림교 신자의 시험일정 변경 청구를 받아들인 최초의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4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재림교) 교인 A씨가 전남대 총장을 상대로 낸 입학전형이의신청 거부처분 및 불합격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림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종교적 안식일로 정하고 직장·사업·학교 활동, 공공 업무, 시험 응시 등 세속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A씨는 2020년 10월 전남대 로스쿨에 지원해 서류 전형에 합격했고, 면접 시간은 토요일 오전으로 정해졌다. 이에 A씨는 대학 측에 '면접순번을 토요일 오후반 마지막에 지정해 일몰 뒤에 면접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이의신청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무작위로 면접조와 면접순서를 결정한다는 모집요강 등에 따라 A씨 이의신청을 거부했고, A씨는 면접에 응시하지 않아 불합격했다.

1심은 A씨가 패소했다고 판결했지만, 2심은 면접 시간을 조정하지 않은 학교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으므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총장인 피고는 원고가 양심에 따르면서 면접에 응시할 수 있고 학생 선발 절차의 형평성·공정성을 해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피고가 원고의 이의신청을 거부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난다"며 "피고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이의신청을 거부하면서 원고의 면접 응시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불합격 처분 사유는 인정되지 않고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의 잘못이 없다며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립대학교 총장인 피고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이자 기본권의 수범자로서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사적단체 또는 사인과 달리 차별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된다"며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공익이나 제3자 이익을 다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 정도가 재림교 신자들이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인정된다면 재림교 신자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에 대한 면접평가의 경우 개별면접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원고 개인의 면접시간만을 토요일 일몰 후로 손쉽게 변경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응시자들의 면접시간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며 "또 피고는 면접대상자를 격리한 상태로 면접시험을 실시하므로 원고가 일몰 후에 면접을 실시할 수 있도록 늦은 순번으로 면접순번이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다른 응시자들에 비해 면접평가 준비 시간을 더 많이 받는 등 부당한 이익을 받는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원고가 입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피고가 면접시간을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제한되는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은 원고가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며 불합격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통틀어 재림교 신자의 시험일정 변경 청구를 명시적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판결"이라며 "우리 사회 소수자인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부당하게 차별받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청의 헌법상 의무 범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 이의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재림교 신자들이 토요일에 시행되는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입어 헌법재판소에 시험일정 변경을 구하는 청구를 했지만 모두 기각된 바 있다. 헌재는 2010년 4월과 6월 법학적성시험과 사법시험을 토요일에 실시토록 한 공고가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2023년에도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시행일시를 토요일 일몰 전으로 정한 시행계획 공고도 합헌이라고 봤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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