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415명, 2024년 10명...대만 지진 사망자, 매뉴얼이 갈랐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4. 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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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 “일부 생산 라인 재개에 긴 시간 걸릴듯” 전세계 반도체 수급난 가중 우려
3일 대만 화롄현에서 외부와 통하는 25m 구간의 샤칭수이 다리가 무너졌다. 여진이 계속되면서 임시 다리는 10일 개통될 예정이고, 완전한 복구는 연말이나 가능할 전망이다. /X

대만 동부에서 3일 오전 발생한 규모 7.2 강진으로 현재까지 열 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지진의 진앙에서 25㎞ 떨어진 해안 지역 화롄현은 다리가 끊기고 한때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지진으로 건물 100여 채가 붕괴했고, 실종자도 수십 명에 달해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대만 중앙재해대응센터는 4일 오후 4시 25분 기준 대만 전역에서 사망자 10명, 부상자 1067명, 실종자 38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모두 화롄현에서 나왔다. 주로 낙석에 맞아 사망했고, 1명은 고양이를 구하려 건물에 들어간 32세 여교사가 기둥에 깔려 숨진 경우다. 현재까지 대만 전역에서 여진이 324차례 일어났다. 향후 2∼3일 동안 여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만은 ‘불의 고리(환태평양 지진대)’에 있어 크고 작은 지진이 잦지만, 규모 7이 넘는 강진은 1999년 규모 7.6 지진 이후 25년 만이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화롄현은 외부와 통하는 25m 구간의 샤칭수이 다리가 무너지며 ‘고립된 섬’이 됐다. 이 다리와 이어지는 다칭수이 터널은 화롄현과 인근 이란현을 잇는 길목이다. 여진으로 복구 작업이 지연되면서 10일에야 임시 다리가 개통될 전망이다. 다만 타이베이의 화롄행 열차 운행은 이날 오전 재개됐다.

화롄에 있는 타이루거 국가공원의 산속에도 1000명 이상이 고립된 것으로 추산된다. 지진 당시 공원 안에서 묵은 직원·여행객 654명과 당일 입산자를 합한 숫자다.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 11곳은 낙석이 떨어져 훼손됐다. 화롄 인근 광산 지역에도 87명의 발이 묶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 달 20일 취임하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은 3일 예정된 집권 민진당 회의를 취소하고 화롄을 찾아 상황을 점검했다. 대만은 중국 정부의 지진 구조 지원 제안은 “실종자 수색 인력이 충분하다”며 거절했다.

지진을 자주 겪는 대만이 내진 설계 등 지진 대비에 철저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AP는 “최첨단 지진 대응 기술을 갖춘 대만은 상대적으로 인명 피해가 작았다”고 했다. 대만은 2415명이 사망한 1999년 지진 이후 지진 대응과 훈련을 담당하는 국가급 센터를 2곳 설립했다. 또 1999년 이전 지어진 건축물 3만6000채를 점검하고 보조금을 지급해 안전 조치를 했다. 또한 내진 설계 기준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실제로 이번 지진에서 대만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높은 건물인 ‘타이베이 101′은 끄떡없었다. 타이베이 신이구에 있는 101층짜리(509m) 복합 쇼핑몰인 이 건물은 내부에 660t짜리 특수 장치인 ‘댐퍼보이’를 장착했다. 철판 41개를 겹겹이 쌓아 직경 5.5m 공 모양으로 만든 댐퍼보이는 진동이 발생하면 좌우로 흔들리며 건물의 균형을 맞춰준다. 미주리 과학기술대학교의 지진학자인 스티븐 가오 교수는 “대만은 엄격한 건축법규, 세계적 수준의 지진학 네트워크를 갖추고 광범위한 대중 지진 안전 교육 캠페인을 시행해 왔다”며 “대만의 지진 대비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대만 정중앙인 난터우현에서 발생한 25년 전 지진과 달리 이번 지진 진앙은 동부 해역이었다. 규모도 7.2로 다소 작았다. 이 같은 차이와 함께 25년간 준비된 지진 대비 매뉴얼과 내진 시스템 덕에 “원자폭탄 32개와 맞먹는 위력”(궈카이원 전 중앙기상국 지진예측센터장)의 지진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여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의 생산 차질로 전 세계 반도체 수급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TSMC는 4일 저녁 성명을 내고 “일부 반도체 팹(공장)의 소수 설비가 훼손돼 일부 생산 라인이 영향을 받았다”면서 “일부 생산 라인은 비교적 긴 시간 조정을 거쳐야 자동화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지진 피해가 경미한 수준이라는 당초 시장의 예상과 달리,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TSMC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비롯한 주요 설비들은 모두 훼손되지 않았다”며 “지진 발생 후 10시간 내에 팹(공장) 설비의 70%가 복구됐다”고 했다. TSMC는 자동차·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과 생성형 AI(인공지능) 개발에 필수적인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를 생산하고 있다. TSMC는 전날 강진으로 일부 공장의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공장 가동도 중단했다. 같은 날 대만 2위 파운드리 기업인 UMC 역시 시설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그래픽=김성규
라이칭더(오른쪽에서 세번째) 대만 총통 당선인이 3일 강진 피해가 발생한 화롄시를 방문해 기울어진 건물 앞에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AFP 연합뉴스
3일 지진이 발생한 대만 화롄현에서 자신의 반려 고양이를 구하러 기울어진 건물(오른쪽)에 들어가는 여교사(왼쪽)의 모습. 여교사는 결국 여진으로 인해 건물 안에서 사망했다./CTWANT 캡처
고급 빌딩 지붕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야후 대만 캡처
3일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한 당시 타이페이의 리젠트 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촬영된 영상. 한 남성이 수영을 하다 극심한 진동을 겪고 있다. 대만 기상청에 따르면 타이베이에서도 최대 규모 5 수준의 지진이 감지됐다./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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