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가신 엄마 대신… 끊임없이 병치레하면서도 동생들 뒷바라지[그립습니다]

2024. 4. 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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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큰언니 변정숙(1946~2019)
이미지로 사진을 대신하지만, 큰언니의 사랑은 내 삶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게티 이미지뱅크

봄소식이 남녘으로부터 올라왔다. 이맘때쯤 아랫녘에 내려가 살던 언니도 나물을 캐러 들판을 헤맸을 거다. 깨끗이 갈무리한 냉이는 된장 양념을 버무려 소포장해서 냉동한 후 익일 택배로 보내왔다. 봄 내내 즐기던 언니의 냉이 된장국이 어슴푸레 시야를 흐린다.

언젠가부터 언니는 접이식 등산용 스틱에 의지하다가 결국에는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다녔다. 대중탕이나 정형외과에 오가며 가끔씩 “막내야” 하고 내게 들르곤 했다. 몸이 웬만히 성할 때면 직접 버무린 겉절이나 모락모락 김이 나는 팥떡, 붕어찜을 건네주었다. 말만 꺼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그것을 장만해 주는 통에 우리 집 냉장고는 늘 특식으로 그득했다.

8남매의 첫째 딸이던 언니는 태생부터 일복이 많았다. 등에는 항상 동생들이 업혀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는 언니가 무탈했던 적이 별로 없다. 심장병과 고혈압에 관절염, 십여 년 넘게 받아온 신장 투석까지. 투석을 받으면서도 일찍 엄마를 여읜 동생들을 향한 사랑은 육신의 고통도 넘어서게 했을까. 하지쯤이면 미숫가루를 한 박스 보내왔다. 열 가지가 넘는 잡곡을 엎드려서 씻고 말리고 볶아 방앗간에 가서 빻았다고 한다. 김장철이면 형제들 다 불러놓고 삼사백 포기의 배추와 무김치를 담아 나누어 줬다. 오전에 서너 시간씩 투석을 받고 와서는 현기증에 비틀거리면서도 그나마 보람 있는 일이라며 우리의 만류를 거절했다.

요양차 시작한 전원생활도 서둘러 접어야 했다. 불의의 사고로 형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귀촌 5년여 만에 다시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와 내 이웃이 되었다. 이미 언니 삶도 그때 ‘정리’가 시작되었는지 골방처럼 작은 집은 또 다른 ‘정리’를 앞둔 모양새였다. 풀지 않은 박스, 서랍장 위에 올린 이불 보퉁이, 행어에 걸린 옷가지들이 곧 길 떠날 행낭처럼 보였다.

언니는 동네 산토리니 제과의 밤 식빵이나 호두 식빵을 좋아했다. 몇 봉지 사 들고 들르면 누워 있다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오랜 세월 병치레를 하느라 세상과 단절돼 대화 소재도 제한적이었다. 내 결혼식 때는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혼주석에 앉고 아이를 낳을 때도 옆을 지켜주던 언니, 내겐 엄마 같은 존재였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금방 돌아 나오곤 했다. 차츰 찾는 발길도 뜸해진 외로운 세월을 언니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냈다.

언니는 새벽 다섯 시면 병원의 셔틀을 탔다. 급기야 아들 등에 업혀 병원에 다니면서부터는 자식에게 너무 짐이 된다며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반나절 이상을 병원에서 보내는 언니는 보통사람 일상의 반만 사는 형국이었다. 그런 중에도 수시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들락거렸다. 하루 세 번 알약을 한 움큼씩 털어 넣느라 입에서는 약 냄새가 진동한다니 입맛이 있을 리 없었다. 근육이 다 빠져나가서 종아리가 내 팔보다 가늘던 언니.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내가 핑그르르 그냥 앉어져 버려야.” 어느 날인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던 말이다. 주머니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내밀며 영양제라도 맞으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그날 언니를 꼭 안아주고 곁에 있어야 했음을 알았다.

울먹이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언니가 아무런 침구도 없는 차가운 병상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모니터에는 생명선 몇 줄이 수평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명징한 의식을 갖고 있었던지 내 마지막 인사에 웅얼웅얼 언니의 옹알이가 목젖에서 맴돌았다. 창자 끝에서부터 끌어 올리듯 안간힘을 써가며 옹알거렸지만, 그 말은 언니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흩어졌다. 눈가에 끈끈한 액체 한 줄기를 읽어 낼 뿐 언니의 말은 끝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언니의 옹알이, 언니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산토리니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언니가 살던 집 앞에 와있다. 손에 든 빵 봉지 두 개만 대롱대롱 언니의 옹알이처럼 흔들린다. 보름쯤 지나면 언니의 여섯 번째 기일이다. 언니를 향한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몽글몽글 피어난다. 언니,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고 참 그립네.

동생 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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