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00평 매장이 ‘텅텅’... 롯데면세점, 해외 진출 야심작 다낭시내점 가보니

다낭=유진우 기자 2024. 4.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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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오전 10시 30분, 불볕 더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베트남 중부 중심도시 다낭.

내로라하는 고급 리조트가 즐비한 다낭 동쪽 미케 해변 인근 한 쇼핑몰은 유난히 조용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리조트 단지 쪽에는 발길이 뜸했다.

쇼핑몰 주차장부터 굳게 닫힌 첫 입구까지, 문자 그대로 개미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 길을 혼자 걸었다.

건물을 반바퀴 돌아 조금 더 걷자 두번째 입구가 보였다. 짙은 필름으로 코팅한 유리 문 안으로 베트남 전통 복장 아오자이를 입고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베트남어로 말을 걸지 못해 망설이니 여자가 스마트폰을 만지다 말고 영어로 먼저 말을 걸었다.

롯데 듀티프리?

이 쇼핑몰은 롯데면세점 다낭시내점이 자리한 브이브이몰(VVMall)이다.

2022년 11월, 롯데면세점은 이 쇼핑몰에 ‘다낭시내점’을 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갈 기미를 보이던 시기였다. 롯데면세점은 이 지점을 본래 2020년 열려고 했다. 2년을 미뤄 연 만큼 개점 초기 다낭시내점 규모와 구색을 성대하게 갖췄다. 다낭시내점 규모 2000㎡(약 600평)는 베트남 면세점 가운데 가장 크다.

롯데면세점은 이 무렵 경영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이전까지 핵심이었던 인천공항 면세점을 버렸다. 대신 해외사업과 시내면세점을 확대하고, 온라인 면세점을 강화하기로 했다.

다낭시내점은 해외 면세점인 동시에 시내면세점이다. 팬데믹 이후 롯데면세점 새 경영전략을 확인하는 본격적인 시험대였다.

그래픽=손민균

그러나 이날 찾은 다낭시내점은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주말 오전 10시 45분. 다른 베트남 쇼핑몰이 한창 북적이기 시작할 무렵이다. 롯데면세점 다낭시내점 600평 매장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쇼핑몰 1층에는 공사가 끝나지 않은 채 문을 닫은 매장을 가린 비닐막과 출입을 통제하는 검은 제한선 뿐이었다. 안쪽은 조명 하나 없어 어두웠다.

면세점은 이 쇼핑몰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2층에 이르자 점원 두 사람이 바짝 다가왔다. 이들은 개장 45분이 지나 이날 마수걸이 손님으로 기자를 맞았다.

매장은 다낭 시내에서 만나기 어려울만큼 깔끔했다. 층고는 높고 조명은 밝았다. 롯데면세점은 개점 당시 ‘한꺼번에 몰려도 500여명이 동시에 쇼핑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고 했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홀로 살폈다. 다낭시내점은 화장품, 식품·토산품, 시계·주류, 패션·잡화 4개 구역으로 나뉜다. 구역을 옮길 때마다 각 구역 담당 직원들이 두세명씩 둘러쌌다. 두루 훑어보니 직원은 열 대여섯명에 달했다.

베트남 국적으로 보이는 이들 직원은 서툰 우리말로 상품을 권했다. 어렵지 않은 질문에는 곧잘 한국어로 대답했다. 명동이나 잠실에 있는 국내 면세점이라 해도 믿을 만 했다.

면세점 생명은 다양한 브랜드다. 다낭시내점은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와 LG생활건강 후(Whoo), 한국인삼공사 정관장처럼 해외 관광객이 좋아하는 국내 유명 브랜드를 모두 갖췄다.

랑콤, 크리스찬 디올 같은 글로벌 브랜드 화장품 매장도 자리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유난히 많이 찾는 다낭에 맞춰 G7 커피, 말린 망고 같은 기념품도 준비했다.

그래픽=손민균

다만 브랜드보다 더 중요한 가격이 아쉬웠다. 베트남 특산품은 시내 전통 시장 가격보다 2배 이상 비쌌다. 말린 망고 팩은 시내에서 흥정하기 전 가격이 면세점 정찰가보다 저렴했다. 조니워커 같은 주류 역시 국내 입국 면세점 가격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향수와 화장품은 70% 할인 특가에 해당하는 일부 상품에나 눈길이 갔다.

베트남에서도 시내 면세점에서 산 물건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받을 수 없다. 공항 출국장에 들어가 이륙 전에 직접 수령해야 한다. 결국 다낭 공항에 입점한 다른 면세점 브랜드 가격보다 저렴하지 않으면 시선을 끌기 어렵다.

이날 롯데면세점 다낭시내점에서 파는 베트남산(産) 진(gin), 조니워커 블루라벨 가격은 출국일 확인한 일본계 면세점 JDV(Jalux Duty Free Vietnam) 판매가와 1달러 단위까지 같았다. 한시가 아까운 여행객으로선 굳이 인적이 드문 시내 면세점까지 발걸음 할 명분이 부족해 보였다.

이날 11시가 다 되서야 겨우 두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커플 1쌍이었다. 1시간여 동안 600여평 매장을 찾은 손님은 오로지 3명 뿐이었다.

관광업계 전문가들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면 롯데면세점 다낭시내점이 한동안 지금처럼 모객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면세점 다낭시내점이 입점한 브이브이몰은 당초 세계적인 호텔체인 JW 메리어트가 몰 안에 들어설 만큼 전도유망한 쇼핑센터였다.

그러나 중국계 자본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지분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현재 경영 상 문제로 몰 운영은 완전히 멈췄다. JW 메리어트 호텔은 공사를 끝마치지 못하고 건축 자재로 입구를 막았다. 일찍 문을 열었던 신발 매장, 음식점은 진작 이 쇼핑몰을 떠났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먼지가 쌓인 간판만 남았다.

다낭 관광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롯데면세점 주변은 리조트를 중심으로 한 한적한 해변 단지라 유동 인구가 전혀 없다”며 “손님을 불러 오려면 여행사에 웃돈을 주고 단체 관광객을 불러와야 한다”고 말했다. 모객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니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다낭시내점이 삐걱거리면서 롯데면세점이 추진하는 해외사업·시내면세점 확대 전략에도 제동이 걸렸다.

다낭면세점 개점 당시 롯데면세점은 “다낭시내점 오픈으로 베트남과 동남아 면세시장에서 경쟁력을 공고히 할 계획”이라며 “롯데면세점은 글로벌 2위 면세사업자로 지속적인 투자와 해외 진출로 사업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전 세계 면세사업자 가운데 2위였던 롯데면세점 순위는 도리어 3위로 밀려났다. 2023년 열기로 했던 하노이 시내면세점 개점 계획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현재 다낭시내점 주요 타깃은 단체 관광객이라 오후 특정 시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근처에 대형 카지노 사업장도 있기 때문에 다낭으로 오는 중국 항공 노선이 회복되고, VV몰 호텔사업이 재개된다면 영업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낭시내점 매출이 크지 않지만, 주력인 공항점 회복세가 빨라 올해 베트남 지역 1분기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신장했다는 게 롯데면세점측 설명이다.

올해 롯데면세점은 이용객 수가 베트남보다 많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롯데면세점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점을 8000㎡(약 2400평) 규모로 열었다. 다낭시내점보다 4배 이상 넓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팬데믹 이전 연간 이용객 수가 약 7000만명에 세계적인 허브 공항이다. 롯데면세점은 창이공항에서 주류와 담배를 단독으로 판매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창이공항점 정상화를 기반으로 올해 해외에서 연 1조원 이상 매출을 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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