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리'에 빠진 3가지 이유

김고금평 에디터 2024. 4. 4.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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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쿠팡 8년, 알리 4년 이용해 보니…초저가 전략에 다양한 품종, 대국적 기질의 서비스로 차별화
알리익스프레스 광고 화면


쿠팡에 처음 입문한 2016년 어느 날, 감동이 몰려왔다. 로켓배송이라는 처음 들어본 신선한 문구만큼 혁신적이었던 '진격의 배달'은 탄성에 탄성을 자아냈다. 반품이나 환불 같은 요청에 응답하는 상담센터 직원의 서비스 역시 '최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고객님, 얼마나 불편을 겪으셨습니까"로 시작하는, 이전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감동의 문구'도 그렇거니와 소비자 불만에 맞춰 이뤄지는 서비스 질 역시 나무랄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20년 5월,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 입문했을 때 실망이 엄습했다. 물건을 주문했다가 그렇고 그런 품질과 늦은 배달로 실망한 뒤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렇게 쿠팡에 진심이었는데, 2023년 다시 알리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인데, 쿠팡에는 없고 알리에는 있었던 점과 거의 비슷한 물건인데 알리에서 반값 정도로 팔리는 것을 보고 쇼핑 목록을 훑기 시작했다.

①초저가+무료배송+아이디어 상품=오랜만에 접속한 알리 사이트는 '쇼핑의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천원마트' 코너에 들어가면 미로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런 유용한 제품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은 것도 그랬지만, 1000원짜리 제품 3개만 사면 무조건 '무료배송'이었기에 당시 배송비로 마음이 무겁던 한국 쇼핑객에게 신세계를 안내했다.

천원마트가 선보이는 '값싼 물건'들이 그렇다고 저질의 못 쓸 물건은 아니었다. 질이 조금 떨어질 수 있으나 유용했고, 무엇보다 "이런 게 마침 필요했는데…."하는 빛나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즐비했다. 쿠팡이 최근 알리와 비슷한 '천원마켓'이 생긴 건 역설적으로 따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적지 않다.

같거나 비슷한 물건의 가격에서 경쟁력을 압도하는 것도 알리의 특징이다. 선물용으로 고주파마사지기를 쿠팡에서 보고 7만원 정도에 샀는데, 알리에선 거의 똑같은 제품이 3만원대에 팔리고 있었다. 이 사실을 유튜브 어느 댓글에서 보고 알리에서 바로 주문해 쿠팡 선물용과 알리 직구를 대놓고 비교했더니, 외형·기능·배터리 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쿠팡 제품은 포장이 근사했고 얼굴 마스크 하나를 서비스로 더 제공했을 뿐이다.


②작은 부품도 구할 수 있는 '품목의 요람'=알리가 특히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가장 큰 덕목은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태블릿이나 핸드폰, 각종 전자기기의 아주 작은 부품 하나도 구글을 통해 검색하고, 이를 알리에서 찾으면 바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기자도 전기면도기 충전기를 잃어버려 쿠팡 등에서 찾다가 실패해 면도기 제조회사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니, 1만6000원 가까운 금액을 제시받았다. 결국 알리를 찾았더니, 3000원대 수준으로 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 물론 배송은 몇 주 걸렸다. 전자기기 관련 부품은 알리에서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았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알리에서 팔던 브랜드 제품이 최근 쿠팡에서 직구로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도 이 흐름을 거역할 수 없어서다.

이런 식으로 알리에서 구매한 제품이 어느새 집 곳곳에 채워졌다. 컵 세척용으로 신기하게 바라보던 주방 기기 피처 린서(pitcher rinser)를 1만원대로 구입해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LED 장식 조명(값에 비해 너무 훌륭한 품질), 식품 용기, 차량 부속품, 밀폐용기 고무 씰링 등 실생활 용품들이 가성비 만족으로 선택됐다.

③대국적 기질의 '화끈한 서비스'=서비스 응대도 기대 이상, 아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한 번은 사각 유리컵을 주문해서 제날짜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물건과 섞인 택배가 도착해서 뜯어보니 유리컵만 없었다. 스티로품으로 가득 찬 박스를 버린 뒤 서비스 센터에 문자로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고, 환불을 요청한다"고 보냈더니, 판매자가 바로 "OK"하고 환불해 줬다. 환불을 받고 '혹시 스티로폼 안에 유리컵이?'하는 생각이 스쳐, 다시 쓰레기통 안에서 스티로폼을 샅샅이 뜯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쁜 사각형 유리컵이 고이 보관돼 있었다.

나는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 다시 문자를 보내, "이는 나의 온전한 잘못이니 환불을 다시 취소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판매자는 "Hi, friend~"로 시작하더니 '이미 진행된 일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고 물건을 그냥 가지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수차례 의견을 제시했지만, 끝까지 사양하며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쿠팡이 하던 일, 알리로 넘어간 듯한 형국

알리의 이런 소소한 배려 서비스 몇 건으로 알리를 찬양하거나 최고의 상점이라고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런 작은 감동에 쉽게 넘어가고 통 큰 서비스를 오래 기억한다. 사실 이런 정책들은 쿠팡이 초기에 하던 일들이다. 친구나 가족처럼 대하는 공감 서비스부터 품질 불만이나 환불 정책, 고객 응대 같은 부문에서도 흡족할 만한 해결책을 일사불란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쿠팡은 친절을 익숙한 태도로, 서비스는 냉정한 잣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로켓배송'의 경우 익일배송이 기본인 건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지만, 오늘 이른 시간에 주문해도 '내일 낮'이 아닌 '내일 밤'이라면 이 배송의 정의를 다시 곱씹어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배송 시간도 미리 알려주는데,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고지하는 일이 다반사다. 8시간의 배송 타임을 맞출 소비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수년간 로켓배송은 오후 6시 이전에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오후 9시, 10시에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한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로켓배송을 앞세우고 밤늦게 배달된 상품을 맞이하는 소비자의 기분이 어떨지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알리처럼 배송 기간이 한 달인데, 실제로 그보다 일찍 도착할 때 느끼는 소비자의 상대적 만족감과 비교해 보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구매와 판매는 결국 행동심리학과 연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오는 배달이라도 늦은 밤에 오면 실망이 크고, 한 달 걸리는 배달이 25일 안에 오면 기쁘기 마련이다.

쿠팡은 또 언제부터인가 '반품마켓'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상품이 개봉됐으나 사용감이 없으며 외부 포장이 교체됐을 수 있는 제품으로, 기능은 정상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가격이 저렴하니 사람이 우선 몰린다. 하지만 제품을 구매한 뒤 기능이 문제가 생겨 이의를 제기하면 '재고가 없어 교환은 불가, 오로지 환불'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쿠팡이 직접 검수까지 마쳤다며 '인증'을 자랑하지만, 정작 이에 따른 문제로 구제할 방안은 미비한 셈이다. 주말에 하나밖에 안 남은 반품된 차량용 핸드폰 거치대를 무한경쟁에 뛰어들어 샀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반품밖에 할 수 없었던 경험은 반품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쿠팡


◇생활용품 시장에서의 '거대한 흐름', 어떤 차별화 필요할까

그렇다고 알리나 테무 같은 C(china)-커머스의 도약에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내는 건 아니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남아도는 물건을 초저가로 판매하는 전략이 크게 먹히지만 반입이 금지된 식·의약품, 청소년 유해매체물, 고급 브랜드 짝퉁(가품) 등이 쉽게 유통될 수 있는 점도 분명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알리와 테무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 이용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싸고 편리한 일반 생활용품점으로서의 소비라는 인식이 훨씬 지배적이다.

중요한 건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중국의 도발에 '경각심'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다. 쿠팡이 예전에 하던 감동 서비스와 발 빠른 대처는 이제 모두 알리와 테무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고객님, 너무 늦게 준비해서 죄송합니다' 같은 문자를 보내 클릭하게 만드는 테무의 전략이나, 문제가 발생할 때 전화 통화하지 않고 메시지만으로도 쉽게, 심지어 감동까지 안기는 알리의 해결책을 보면 우리 이커머스가 단순히 가성비 문제만으로 밀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C커머스의 초저가 전략은 국내 10대와 60·70대 이용자를 주로 사로잡았다. 다른 연령대는 또 어떤 매력으로 C커머스에 서서히 집착하고 선호하는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쿠팡에서 알리로 갈아타거나 알리에 더 많은 주문을 하는 이들이 혹시 다음과 같은 '사소한' 이유들로 국내 이커머스에 실망하는 건 아닌지도 살펴볼 일이다.

'검수'했다는 자신감으로 반품상품을 팔면서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땐 소비자를 만족시킬 방안이 부족하고 쿠팡체험단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호평 일색의 댓글이 넘쳐 소비자가 상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고 밤 9시 넘어 도착하는 로켓배송의 꼼수가 본의 아니게 일상화하는 일들이 그렇다.

쿠팡은 여전히 국내 소비자에게 매력적이고 중요하며 필수 아이템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알 리가 예전의 쿠팡을 보는 듯 구매력을 높이며 계속 진화하는 데다, 또 앞으로 어떤 이커머스가 새로운 시장을 점유할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그 작고 소중한 1%의 차이(가성비 뿐만 아니라)에서 모든 것이 갈릴 수 있다.

정부는 C커머스 공습에 대비한 정책과 규제 등을 연일 내놓으며 정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막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규제보다 더 필요한 것은 어떤 비교우위를 한국 이커머스가 차지할지, 또 어떤 다른 감동의 서비스로 소비자와 교감할지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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