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9] 그대에게 바라는 건 ‘밤양갱’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4. 4.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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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콜릿 세상이 동화처럼 펼쳐지는 영화 ‘웡카’를 관람했다. 그 옛날, 영화 ‘노팅 힐’에서 로맨스의 정수를 보여준 ‘휴 그랜트’는 이번 영화에 소인족으로 출연하여 “움파룸파 둠파디두”라는 중독성 강한 주문과 우스꽝스러운 춤으로 귀여움을 한껏 발산하였다. 초콜릿이 서양의 대표 간식이라면 그에 필적할 만한 한국의 대표 간식은 무엇일까?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 ‘할매니얼’이라는 말이 등장한 가운데 약과와 꽈배기 같은 예전의 간식도 유행하여, 약과와 꽈배기의 소비량이 이전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초콜릿, 약과, 꽈배기는 달콤하다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여기에 또 하나를 더해야겠다. 바로 양갱이다. 최근 편의점에서 양갱의 매출이 전년도 같은 시기 대비 100%나 늘었을 정도로 인기다.

눈에 띄지 않아도 양갱은 100년 넘게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간식 중 하나다. 그러던 양갱이 폭발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노래 덕분이다. 장기하가 만들고 비비가 노래한 ‘밤양갱’ 말이다. 왈츠풍의 경쾌한 리듬에 비교적 단순한 선율, 맑은 음색의 비비 목소리가 귀에 살포시 와닿는 이 노래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으로 볼 수 있다.

무심히 음악을 듣노라면 다디단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 같지만 노랫말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라며 이별 통보를 받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이라며 진심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야속한 심정을 드러낸다. 이별을 다룬 노래인데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과 같은 언어유희가 주는 재미 때문이다. 그 재미에 빠져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리듬을 놓치고 발음마저 꼬여 혼자 키득거리게 된다.

‘밤양갱’ 인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물론 가수 비비다. 실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으나 그녀가 이토록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이 노래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수많은 밈(meme)이 출현하였다. 공군이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올린 ‘BOMB양갱’ 콘텐츠는 조회수 100만 회를 훌쩍 넘겼고, AI를 이용하여 아이유, 장기하, 박명수 등의 목소리로 노래한 ‘밤양갱’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

비비는 가시가 돋친 밤송이 안에 달콤한 밤이 들어 있는 것에 빗대어 소박하고 진실한 사랑을 표현한 노래가 ‘밤양갱’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초콜릿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영화 ‘웡카’의 대사처럼,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그저 부드러운 말, 따뜻한 미소, 그리고 밤양갱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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