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1인분의 무게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2024. 4.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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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은둔 청년’들 사연에 관심이 많다. 일찍 고도성장과 저성장을 맛본 일본에선 수십 년도 전에 나온 사회 현상이었다. 이젠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다루는 단계까지 왔다. 왜 집 밖으로 안 나오는 청년이 많아졌는지 분석할 깜냥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은둔 청년은 하나같이 ‘1인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1인분이란 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마침 청년층에선 ‘평균 올려치기’라는 유행어가 돈다. 한국인의 유난히 강한 비교 문화와 경쟁 심리를 풍자한 단어다. 말뜻을 좀 더 해부해 보자면 10분위 중간은 5인데, 이를 은근슬쩍 7 수준으로 옮겨서 평균값을 확 올려버린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가진 뉘앙스다. ‘올려치기’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행동이다.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해 평균 올려치기에 가담하는 이가 없진 않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훨씬 많이 보인다. 유행어마저 사회가 아닌 개인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유행어를 내가 못나서 사람 구실을 못 한다며 자책하는 은둔 청년들의 1인분에 적용해 보자. 내 몸 건사하고, 누구한테 폐 안 끼치며, 남들만큼 일하는 것으론 1인분 축에도 못 든다.

그럼 그 1인분의 정체는 대체 뭘까. 각자 생각하는 상이야 다를 터이다. 다만 청년층에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1인분이란 대기업, 수도권, 4년제 대학 출신 같다. 이들의 삶은 온갖 미디어에서 한국 사회 표준으로 묘사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장인은 대개 잘 빠진 정장에 출입증 목걸이를 달았다. 매체뿐 아니라 청년층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하청,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소리보다는 대기업 직원이 주류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담론에 더 공감한다. 중소기업 사원의 애환을 잘 녹인 유튜브 ‘좋좋소’를 보며 마음이 짠해지다가도 곧 “나는 이렇게 안 되어야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머릿수가 많은데도 말이다.

이를 단순히 청년층의 자기 객관화 부족 문제로만 치부하면 곤란하다. 사회에서 형성된 1인분의 값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청년층 과반이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1인분의 무게로 시달리고 있다. 알기 쉽게 직장으로 비유했지만 사회 온갖 분야에 1인분이 존재한다. 책도 많이 봐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하고, 외부 활동도 해야 하며, 너무 살찌거나 말라선 안 되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곤란하다. 이 무게는 너무도 무거워서 종종 뭐라도 시도해 볼 의지를 꺾곤 한다.

더욱이 지금도 1인분 기준이 낮아지기는커녕 차츰차츰 올라가고 있다. 정치가 좌우 극단으로 찢어지듯, 사회는 상하 극단으로 계속 찢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평범한 청년들이 스스로 평균 몫만큼 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렵다. 반면 기존 한국 사회 1인분의 상징을 획득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져만 간다. 이 경우 포기가 더 쉽고 합리적인 선택지가 된다. 결혼을 포기하면 대기업 가려고 발버둥 안 쳐도 되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하면 아르바이트만으로 연명 가능하다. 그렇게 하나씩 접다 보면 어느새 은둔 청년에 가까워져 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노력하라고, 의지가 부족하다고 다그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다 이해한다고, 네 잘못은 없다며 무작정 위로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선 마음으로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청년들은 한껏 무거워진 1인분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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