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 히비키 없어요…가짜 술까지 등장한 일본 위스키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4. 4. 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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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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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주류 숍. 한글로 '야마자키, 히비키 없어요!'라는 손팻말이 보인다. /김지호 기자

‘야마자키, 히비키 없어요!’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주류 숍에 한글을 손으로 그린 듯한 손팻말이 눈길을 끕니다. 막상 가게 사장님과는 한글은 물론 영어로도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손짓, 발짓에 스마트폰 번역기까지 동원해야 겨우 말이 통합니다.

샴드뱅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래전부터 위스키 마니아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웬만한 위스키는 전부 권장소비자가격(MSRP)에 가까운 가격으로 한국 소비자가의 반값에 판매되는 곳이죠.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주류 매대가 꽉 찼던 이곳이, 이제는 소문이 나서 메뚜기떼가 휩쓸고 간 것처럼 황폐해졌습니다. 하지만 타지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한국인들의 단골멘트 중 하나가 “야마자키, 히비키 있어요?”입니다. 하지만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명의 똑같은 질문에 답변하기 곤란해진 사장님이 묘책으로 고안해 낸 게 한글 손팻말입니다. 맥캘란은 몰라도 야마자키나 히비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각종 산토리 위스키를 판매 중인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주류 숍. /김지호 기자

일본 위스키가 자국 내에서 종적을 감춘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습니다. 해당 브랜드의 증류소에서조차 보틀 구매가 쉽지 않은 상황이죠. 어렵게 일본 시내에서 발품 팔아 발견한 제품들도 대부분은 이미 피(Fee)가 잔뜩 붙어, 출시가의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 중입니다. 한때 일본의 잡화점인 ‘돈키호테’에서 1만 엔에 판매되던 싱글몰트 야마자키 12년은 국내에서 5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블렌디드 위스키인 히비키도 대형마트 오픈런 아니면 정가에 구할 길이 없습니다. 심지어 최근 일본에서는 일본 위스키의 인기를 악용하는 짝퉁 업자들까지 등장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가짜 위스키 업자들이 양심까지 팔기 시작한 것이죠. 이쯤 되면 궁금하실 겁니다. 대체 일본 위스키가 뭐길래 인간의 도덕성까지 포기하게 했는지.

◇일본 위스키의 두 전설…. 도리이 신지로, 타케츠루 마사타카

최초로 일본에 위스키가 알려진 시기는 1800년대 중반입니다. 1860년대 요코하마의 한 호텔 바에서 위스키를 판매했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해주죠. 하지만 당시 수입 위스키의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주정에 색소와 향신료를 더한 유사 위스키가 성행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1980년대 출시됐던 캡틴큐나 나폴레옹 같은 제품들이죠.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가짜 술만 마실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산토리 위스키의 창업주인 도리이 신지로(1879~1962)와 니카 위스키를 설립한 타케츠루 마사타카(1894~1979)입니다. 위스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일본을 위스키 강국으로 만든 두 주인공이죠.

사케 양조장의 아들이자 직원이었던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1916년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스페이사이드의 롱몬 증류소와 캠벨타운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배웠고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증류기 내부 청소까지 자청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모든 것을 메모하고 그리는 습관을 지닌 타케츠루는 증류기의 생김새부터 모든 증류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1963년, 더글러스 홈 영국 외무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청년이 만년필과 노트로 위스키 제조 기술의 비밀을 모두 훔쳐 갔다”라며 농담을 한 일화가 있을 정도였죠.

타케츠루 마사타카와 그의 아내 리타의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 최초의 위스키를 꿈꿨던 타케츠루는 현지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여성 리타와 결혼한 후 4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사회적으로 술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상황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술 만든다는 이야기 자체가 불편했던 상황이죠. 그가 다니고 있던 사케 회사도 위스키 제조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타케츠루의 ‘진짜 위스키’를 향한 꿈은 좌초되고 2년 후 결국 사케 양조장을 그만두기에 이릅니다.

‘오사카의 코’로 불리는 산토리 위스키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 /위키피디아

비슷한 시기에 타케츠루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사카의 코’로 불리는 도리이 신지로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향에 민감했고 1899년 일본 최초의 와인인 ‘아카타마 포트와인’을 출시해 대박이 났습니다. 성공적으로 와인 사업을 이어가던 도리이는 고품질 위스키에 대한 야망은 있었으나 이를 실현해줄 기술자가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기술자를 데려오려고 했던 도리이는 긴 수소문 끝에 재야에 있던 타케츠루를 발견해 영입하게 됩니다. 당시 대졸 신입 사원의 첫 월급이 40~50엔이던 시절, 10년 계약에 연봉 4000엔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모신 귀한 인재였습니다. 그렇게 1923년,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두 남자의 의지가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도리이는 증류소 터를 도심에 세울 것을 건의했고 기술 담당인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와 환경이 가장 비슷한 홋카이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합의를 통해 결정된 곳은 오사카의 야마자키란 지역입니다. 도심과 접근성이 좋으면서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유사한 지역을 찾은 셈이죠. 이곳은 세 개의 강이 합류하여 스코틀랜드처럼 안개가 끼고 습도도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즉 위스키 만드는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1929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인 ‘산토리 시로후다’가 탄생합니다.

일본 최초의 위스키인 ‘산토리 시로후다’. /산토리

문제는 이 위스키가 일본인들의 입맛에 안 맞았다는 점입니다. 시로후다는 화이트 라벨을 의미하며 저숙성 스피릿 같은 술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스카치위스키 특유의 피트향까지 더해져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죠. 사케 같은 낮은 도수의 발효주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알코올 40도와 훈제 향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첫 위스키는 대실패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실패는 결국 두 사람의 ‘결별’로 이어집니다. 정통 스카치위스키를 추구했던 타케츠루는 결국 본인이 처음부터 원했던 홋카이도에 오늘날의 닛카 증류소를 차리고 도리이는 시로후다의 아픔을 극복하고 1937년, 산토리 위스키의 대표 격인 가쿠빈을 출시합니다. 그는 사업가답게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위스키 맛에 집중해서 본격적인 성공궤도에 오른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니카 증류소의 제품들은 산토리 제품들에 비해 피티하고 몰티한 개성이 더 강한 편입니다.

◇일본 위스키 전성시대

산토리사의 (왼쪽)히비키 하모니, 야마자키12년 모습. /김지호 기자 촬영협조: 피규필드

일본 위스키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몰트 바에서 마시다가 남은 술을 맡기는 키핑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고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게 느껴질 수 있는 스카치위스키에 물을 섞어 마시는 미즈와리도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위스키는 자연스럽게 식중주로 성장하면서 하이볼과 함께 대중적인 소비층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렇게 1984년에는 산토리 최초의 싱글몰트인 야마자키가 발매되고 5년 뒤 1989년에 블렌디드 위스키인 히비키가 출시됩니다.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산토리사의 ‘야마자키 2013년 셰리 캐스크’가 세계 최고의 위스키를 가리는 ’월드 위스키 바이블’에서 100점 만점에 97.5점을 받아 1위를 차지한 것이죠. 당시 위스키 평론가인 짐 머레이는 야마자키에 대해 “형언할 수 없이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본 위스키의 급부상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업에 울리는 경종이라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이 외에도 야마자키 18년, 히비키 21년, 30년 등이 각종 국제주류 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휩쓸면서 일본 위스키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NHK에서 타케츠루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맛상’ 포스터. /NHK

일본 위스키를 히트시킨 또 다른 공로자는 드라마였습니다. NHK에서 타케츠루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맛상’을 제작한 것입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총 91화로 진행된 맛상은 아침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23%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위스키의 소비 촉진을 불어넣었습니다. 맛상은 유학 시절 리타가 타케츠루를 부르던 애칭이었습니다.

드라마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위스키와 타케츠루 관련 서적은 출시와 동시에 절판이 됐습니다. 닛카 증류소 투어의 방문자는 36% 늘었고 그가 기술자로 있던 산토리 위스키의 인기도 정점을 찍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인기에 원액이 부족해지자, 산토리 위스키는 히비키 17년과 하쿠슈 12년의 판매 중지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품귀 현상이 오히려 일본 위스키의 명성을 높였고 출시와 동시에 피가 붙는 상황을 만듭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 위스키가 고숙성 원액 부족으로 숙성연수 표기 없이 NAS(None Age Statement)로 출시되는 이유기도 하지요.

일본 위스키의 인기는 단순히 물량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히비키나 야마자키로 입문하면서, 위스키는 쓰고 독하다는 선입견을 없앴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순히 코를 찌르는 알코올 대신 향긋한 꽃향기와 달콤한 과일 풍미를 느꼈다는 의견도 공통적입니다.

산토리의 창업주 리이는 ‘얏테미나하레(やってみなはれ)’라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이는 “어디 한번 해봐”의 오사카 사투리입니다. 스코틀랜드에 지지 않는 일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창업주의 일단 해보자 정신이 스며 있는 것이죠. 100년 동안 꿈을 잃지 않은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과 혁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지금의 일본 위스키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입니다. 우리만의 철학으로 끈기 있게 준비하고 견디면 언젠가는 세계가 인정해 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류가 이렇게 퍼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지금도 가격이 오르고 있는 일본 위스키를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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