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의 변신은 무죄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기자 2024. 4.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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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0대의 나이에 젊은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랑콤 광고 모델로 나선 이사벨라 로셀리니. 이사벨라 로셀리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지난달에 술자리에서 이 칼럼을 즐겨 읽는다는 독자를 만났다. 반가움 사이로 강렬한 실망의 기운이 느껴졌다. “칼럼에 나오는 사진보다 나이 들어 보이시네요.” 기자의 뼈를 때리는 정론직필 정신을 마주하고는 ‘내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거 같네’ ‘제게 그런 말을 하실 처지는 아닌 거 같은데요’ ‘확 집에 가버릴까’ 수많은 생각 속에서 번민하다가 결론지었다. ‘역시 헤어 스타일이 문제야!’ 몇주 뒤 미용실에 가서 십여 년 만에 앞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거울을 보니 전자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에게 자비란 없는 중년의 교감 선생님은 사라지고,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중년의 교감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외모는 나이듦을 실시간 중계한다. ‘눈 밑 주름 너무 심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성형 ‘비포·애프터’를 보여주는 페이스북 광고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까지 대충 살아온 세월이 몇십년인데 오십 넘어 외모에 집착하는 중년여성으로 보일까 봐 이내 포기한다. 제인 폰다,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존경받는 노배우들도 성형으로 노화를 막으려던 과거를 후회하면서 성형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 전 로셀리니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영화 ‘키메라’를 보면서 꼭 예쁜 애들이 내면의 아름다움 운운한다는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언론인 손석희가 배우 강동원을 보고 일갈하지 않았나.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하여 나이 들면 외모 삼중고를 겪는다. 외모는 초라해지고 외모에 집착하는 주책없는 노인네처럼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 하던 대로 하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이를테면 블랙과 긴 머리. 젊을 때는 검은 색이면 중간은 간다는 생각으로 검은 재킷, 검은 티셔츠를 자주 걸쳤지만 지금 그렇게 입었다가는 “갓만 쓰면 바로 저승사자야”라는 반응을 듣는다. 나이와 함께 혈색이 사라지는 탓이다. 이삼십대 눈에는 기괴하게만 보이던 엄마의 극한 핑크와 비즈 범벅 스웨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또한 젊은 시절 대충만 말려도 풍성하게 내려오던 긴 머리는 숱이 줄고 모발이 가늘어지면서 미역 줄기처럼 변모한다. 엄마의 짧은 뽀글 파마는 유행이 아니라 과학이었던 것.

그렇다고 뽀글 파마와 핑크 스웨터라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현대의 중장년에게 ‘적당한’ 외모 관리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다행스러운 건 비슷한 고민이 늘어나니 참고할만한 매뉴얼들도 점차 늘고 있다는 것. 얼마 전 인스타그램의 중장년 스타일링 메이크오버 콘텐츠를 보고 놀랐다. 예전에 신문에도 종종 등장하던 ‘부장님의 변신은 무죄’류의 아들 옷장 탈취한 아저씨의 처참한 결과가 아닌 세련미 넘치는 중장년들이 즐비했다. 흰 수염 아래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바시티 재킷, 일명 야구점퍼를 잘 소화한 아저씨와 나풀거리는 긴 치마에 에코백을 멘 킨포크 스타일의 아줌마들이 어쩐지 나도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줬다. 비슷한 메이크오버인데 왜 몇 년 전에는 유죄를 내리고 싶은 비주얼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바뀐 걸까.

모델들의 인상이 바뀌었다. 엄근진과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이자, 사회적 성공의 과시와 꼰대력의 물이 빠진 얼굴들이었다.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짧은 춤동작을 스스럼없이 따라 하는 탈권위적 모습의 연출이 이 메이크오버 콘텐츠의 포인트였다. 표정의 꼰대력이 줄어드니 신기하게도 스타일의 어색함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저항이 있었다. 마사 누스바움이 말한 ‘자연스러움’을 낭만화하는 함정, 즉 “왜 시간의 도도한 흐름에 무조건 항복하고 그냥 추한 외모를 가지고 살지 않는가?”라는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의 내면화에 대한 저항이다.

환갑 넘어 의학의 도움으로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푼 얼굴도 보기 괴롭지만 중노년에만 유독 강요되는 ‘자연스러움’의 압력에 포박될 필요도 없다. 다시 누스바움의 말대로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스킬라(그리스 신화의 바다괴물)와 나이를 거스르려 집착하는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적당한 길을 찾아야 한다.” 나이 들어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누구나 20년만에 랑콤 모델로 복귀한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68살의 남성 또는 여성은 반백에 검버섯이 서너개쯤 존재해야 삶의 연륜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회적 낙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중년 이후의 꾸밈은 또 다른 해방이 될 수 있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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