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억 투입해도 "앞으로 더 걱정"…'빅5·공공병원' 비상경영 비상

박정렬 기자 2024. 4. 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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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진료체계 재정 투입 현황/그래픽=윤선정


전공의 집단 이탈 기간이 7주차에 접어들면서 각 병원이 경영난에 신음하고 있다. 무급휴가·병동 통폐합 등 비상 경영에도 갈수록 적자 폭이 커져 '존폐 위기감'마저 감지된다. 의료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5000억원을 돌파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인턴 임용 대상자의 96%가 등록을 포기하는 등 '의료공백 사태'는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 후 2달여 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빅 5 병원' 중 3곳이 공식적으로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지난달 15일 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이 동시에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했고 지난 2일에는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마저 전공의 이탈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비상경영체계 전환을 결정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올해 배정된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2일 온라인 게시판에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공지사항을 올려 비상경영체계 전환을 발표했다./사진=서울대병원


전공의 비중이 40% 안팎에 달하는 '빅5 병원'은 지난달부터 하루 10억~3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남은 교수·전임의(펠로·임상강사)로는 전과 같은 진료량을 유지할 수 없어 환자 수를 줄인 게 가장 큰 이유다. 입원·수술 환자는 반토막 났는데 간호사·임상병리사·행정직 등 수 천여명의 직원 인건비는 거의 그대로라 적자를 면키 어렵다. 전공의 월급, 수술 재료비 등을 제외해도 벌충이 되지 않는다. 이경민 보건의료노조 서울아산병원지부장은 "이대로라면 올해 적자 금액이 4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 심지어 공공병원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달 19일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코로나19(COVID-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일반 병동을 비우며 경영상태가 악화했고,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누적 적자 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순천향대천안병원과 울산대병원 등 대학병원도 잇따라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박형국 천안병원장은 "이제는 직원 임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자금난이 1개월만 더 지속되면 병원 존립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현장 노동조합 대표자 합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전공의 즉각 복귀, 교수 사직 철회 및 조속한 진료 정상화 위해 정부와 사용자 대책 수립, 환자와 병원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비상 경영에 돌입한 병원들은 병동을 통합·폐쇄하거나 간호사 등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연차 사용을 촉진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시행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료연대본부 등 병원 노동자들은 이를 두고 "직원의 임금을 깎아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병원의 손실을 메꾸려고 한다"며 거세게 반발한다. 19개 수련병원 노조는 지난 1일 합동 기자회견에서 "각 의료기관은 병원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을 가장한 '고통전가'를 하지 말고 노사 합의를 거쳐 비상사태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중증·응급환자 중심의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재정 지원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투입된 공적 자금은 정부 예비비(1285억원), 건강보험 재정(3764억원) 등 5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런데도 전공의 이탈에 따른 병원의 경영난을 완벽히 해소하긴 역부족이다. 3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한병원협회와의 간담회에서도 각 병원장들은 "좀 더 실효성 있는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경영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할 수 있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마저 이달부터 사직서 제출과 진료 단축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추가적인 환자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직원 월급을 걱정하는 상황에 교수를 대체할 전문의를 고용하기엔 인건비 부담이 크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얼마나 돌아올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앞으로 레지던트→전문의가 될 인턴도 거의 모두 임용을 포기해 병원의 의사 부족 상황이 4~5년 지속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인턴 임용 예정 대상자 3068명 가운데 실제 등록한 인원은 131명(4%)에 불과하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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