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 유족 사연에 눈물 보인 이재명…“이름 없이 스러진 희생자를 추모한다”

김동환 2024. 4. 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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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제76주년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에서 눈물 보여
한덕수 국무총리, 추념사에서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 빌어…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도록 최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여당의 극우적 행태가 4·3 정신을 모독한다’며 날 세웠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일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사연을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한 유족의 사연을 듣던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추념식에서는 4·3 사건 당시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김옥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과 김 할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한 영상이 공개돼 추모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등 7년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당한 일을 통칭한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고두심은 “1948년 4월 봄내음 가득했던 제주는 점점 찢기는 상처와 고통으로 평온했던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며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 정체된 시간처럼 멈춰버린 듯했지만, 가족들은 그저 이 고통의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고 운을 뗐다. 이어 “늦가을 옥자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며 “며칠 뒤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를 살피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시고 가시나물로 돌아간 뒤,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도 이듬해 봄에 곤을동 인근 화북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언니와 동생마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그렇게 김 할머니만 남겨졌다고 한다. 고두심은 “다섯 살 아이로 홀로 남겨진 옥자 할머니의 70여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다”며 “4·3의 피바람은 긴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다섯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놓았다”고 언급했다.

김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양은 “할머니의 아버지이자 저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신 사무치게 그리운 이를 향해 할머니를 대신해, 70년 넘게 가슴 깊게 묻어온 슬픔을 말씀드리려고 한다”며 “할머니는 매년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제일 먼저 음력 동짓달 스무날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전했다. 은빈양은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라며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저로서도 홀로 남겨진 딸이 돼 어두운 그늘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유족 증언 등을 바탕으로 최첨단 AI 기술로 김 할머니의 아버지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과 복원된 아버지 사진을 갖고 4·3 평화공원을 찾은 김 할머니의 영상이 뒤이어 상영됐고, 영상에서 김 할머니는 아버지 이름이 적힌 각명비 앞에서 “아버지 이 사진 아버지랑 닮아수과(닮았나요). 이거 나랑 닮았다 고라줍서(말씀 해주세요)”라며 눈물 흘렸다. 행사장을 찾은 유족 등 참석자들도 아픔을 함께하며 눈물지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별도로 글을 올려 “제주는 76번째 봄을 견디고 견뎌 평화의 씨앗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국가폭력의 짙은 상흔을 넘어 용서와 화해, 통합의 정신으로 자라났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한다”며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안고 통한의 세월을 견뎌 오신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통한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3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활개친다”며 “상처를 보듬어야 할 정부 여당이 용납할 수 없는 망동의 진원지라는 점에 더욱 분노한다”고 쏘아붙였다. 계속해서 “국민의힘은 4·3에 대한 망발과 폄훼를 일삼은 의원읠 국민의 대표로 뽑아달라며 공천장을 줬다”며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은 앞장서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갈라치기하더니, 2년째 4·3 추념식에도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3일에도 제주 4·3 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여당의 극우적인 행태가 4·3 정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대표의 지적은 지난 14일 대전시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필승 결의대회에서의 조수연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후보 비판과 맞닿아 있다. 자리에서 이 대표는 “(국민의힘은) 조선 지배보다 일제 강점기가 더 좋았을지 모른다, (제주) 4·3은 김일성 지령을 받은 무장 폭동이라는 취지로 망언한 인사(조수연 후보)를 대전에 공천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조수연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후보는 2021년 4월 자신의 SNS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당시 제주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는가. 아니면 김일성, 박헌영 지령을 받고 무장 폭동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꿈꾸었는가.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 4·3 사건 폄훼 논란을 일으켰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일 서면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추념식 불참을 비판하면서, “망언으로 4·3을 폄훼한 태영호, 조수연, 전희경 후보를 공천하고 제주시민 앞에 설 자신이 없었나”라고 한 비대위원장을 꼬집었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 오른쪽)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등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추념사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크나큰 아픔을 감내해 오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공식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와 희생자 신고 접수를 추진했고, 2022년부터는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 희생사건 중 사상 처음으로 국가보상을 시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노력이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과 설움을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진심어린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의 아픔 위로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한 한 총리는 “우리 정부는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화합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2025년까지 추가 진상조사를 빈틈없이 마무리해 미진했던 부분을 한층 더 보완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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