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일본서 사망자 나온 붉은누룩의 비밀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4. 4. 3. 13: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제약의 건강보조식품. 고바야시 제약 제공

지난주 일본열도가 붉은 누룩(홍국)의 공포에 휩싸였다는 외신이 화제였다. 고바야시제약에서 만든 '홍국 콜레스테 헬프' 등 건강보조식품 3종을 먹고 5명이 사망하고 114명이 입원했다는 것이다. 2021년 출시된 이 제품을 복용한 사람이 많아 앞으로도 피해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만에서도 고바야시제약의 홍국 원료로 만든 대만 제약사의 건강보조식품을 먹고 탈이 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다행히 우리는 고바야시제약의 홍국을 수입하지 않는다. 

쌀에 붉은 누룩을 띄어 만든 홍국쌀은 특유의 붉은색이 인상적이다. 중국 전통 의학은 홍국쌀을 심혈관계에 효과가 있는 약재로 평가했다. 실제 홍국에는 천연 스타틴 성분이 들어 있어 오늘날에도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추는 효과가 있는 건강보조식품의 원료로 쓰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홍국(紅麴)은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 전부터 써온 누룩의 일종으로 이름 그대로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다. 북경오리(베이징덕)의 붉은색도 홍국을 발라 구운 결과다. 한편 홍국쌀은 중국 전통 한약재로 어혈을 없애 혈맥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바야시제약 제품의 일본식 영어를 풀어쓰면 'cholesterol help',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므로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홍국은 어떻게 이런 효과를 내고 왜 갑자기 지금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난 것일까.

● 천연 스타틴 만들어 

먼저 누룩(麴)을 잠깐 살펴보자. 포도즙처럼 당을 함유하는 과즙은 효모만 넣어주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지만 쌀이나 보리 같은 곡물로 술을 빚으려면 효모가 분해하지 못하는 녹말을 먼저 당으로 바꿔줘야 한다.

이때 동서양이 다른 방식을 썼는데 보리를 발아시켜(맥아) 식물의 녹말분해효소를 활성화해 녹말을 당으로 바꾼 뒤 효모가 작용한 게 맥주이고 밀이나 쌀에 곰팡이를 번식시켜(이를 '띄운다'고 표현한다) 만든 덩어리, 누룩을 찐 쌀에 넣어 곰팡이의 녹말분해효소로 녹말을 당으로 바꾼 뒤 효모가 넘겨받아 작업한 게 청주다. 

누룩에 쓰이는 곰팡이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술을 빚을 때 누룩곰팡이(황국균)가 가장 널리 쓰이고 중국과 일본에는 검은곰팡이(흑국균), 흰곰팡이(백국균), 붉은누룩곰팡이(홍국균)를 쓴 지역 특산 전통주가 있다.

분류학의 관점에서 누룩용 곰팡이는 두 속으로 나뉜다. 황국균, 흑국균, 백국균은 누룩곰팡이속(Aspergillus)이고 홍국균은 모나스쿠스속(Monascus)이다. 이들과 푸른곰팡이속(Penicillium)은 누룩곰팡이과(Aspergillaceae)에 속하는 친척들이다. 참고로 푸른곰팡이의 한 종은 브리와 까망베르 치즈 발효에 쓰인다.

이들 곰팡이는 녹말이나 단백질 등 거대영양소를 분해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차대사산물'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곰팡이가 만든 색소와 휘발성물질도 이 범주로 종에 따라 종류가 달라 누룩 고유의 색과 냄새를 부여한다. 

그런데 곰팡이가 만든 이차대사산물의 상당수가 소위 곰팡이(진균)독소(mycotoxin)로 불리는 독성 물질이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의 한 종(P. rubens)에서 발견한 페니실린 역시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곰팡이독소로 볼 수 있다. 다만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종류는 항생제 범주에 넣고 곰팡이독소는 사람과 동물(가축)에 독성을 띠는 물질로 한정해 쓰는 경우가 많다.

스타틴(statin)으로 불리는 일련의 분자도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죽이려고 만드는 곰팡이독소다. 박테리아 생존에 필요한 스테롤(sterol)을 생합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HMG-CoA 환원효소에 달라붙어 활성을 억제한다. 그런데 사람의 콜레스테롤 생합성 역시 HMG-CoA 환원효소가 있어야 하고 구조가 박테리아와 비슷해 스타틴이 작용한다. 고지혈증에 효과가 있는 이유다.

1970년대 초 일본 제약회사 산쿄의 연구자들이 푸른곰팡이의 한 종(P. citrinum)에서 처음 스타틴을 분리했다(훗날 메바스타틴으로 명명). 그 뒤 누룩곰팡이의 한 종(A. terreus)에서도 또 다른 스타틴을 찾았고 1987년 고지혈증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최초의 스타틴 약물인 로바스타틴이다. 
 

홍국균을 비롯한 모나스쿠스속 곰팡이는 박테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모나콜린이라고 부르는 천연 스타틴 분자를 만든다. 이 가운데 모나콜린K는 로바스타틴(왼쪽)이라는 제품명으로 의약품이 됐고 모나콜린J(가운데)는 의약품 심바스타틴(오른쪽)을 만드는 원료(전구물질)로 쓰인다. ScienceDirect 제공

이들과 친척인 홍국균(Monascus purpureus) 역시 여러 스타틴 분자를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국균에서 발견된 스타틴은 속명을 따서 모나콜린(monacolin)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모나콜린 K가 바로 로바스타틴이다. 홍국쌀이 중국 전통 약재로 쓰이고 현대 제약사에서도 홍국을 건강보조식품 원료로 쓰는 이유다. 

● 유럽 미국에서는 식용색소로 사용 금지

그런데 홍국균은 시트리닌(citrinin)이라는 곰팡이독소도 만들므로 주의해야 한다. 보통은 미량이라 문제가 없지만 만에 하나 섭취량이 늘면 급성신부전증 등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식품회사가 홍국균의 붉은 색소를 쓸 수 없게 규제하는 배경이다.

홍국균은 이차대사산물로 신장독성이 있는 곰팡이독소인 시트리닌(아래)을 만든다. 한편 누룩곰팡이속과 푸른곰팡이속의 몇몇 종은 강력한 신장독성이 있는 오크라톡신A(위)도 만들 수 있다. 오크라톡신A 분자의 일부(오른쪽)와 시트리닌 분자의 구조가 꽤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이번 홍국 건강보조식품 사건은 홍국균이 만든 시트리닌과 오염된 푸른곰팡이가 만든 오크라톡신의 시너지 작용으로 신장독성이 커진 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독성학 메커니즘과 방법 제공

이번 붉은 누룩 사태 역시 신장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입원한 것으로 시트리닌 때문으로 보이지만 제약사 측은 이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대신 일부 제품에서 푸른곰팡이가 만드는 곰팡이독소인 푸베르산(puberulic acid)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강력한 신장 독성이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원인을 파악하려면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하는 배경이다. 

곰팡이독소는 다양한 경로로 인체를 공격한다. 신장독성이 큰 대표적인 계열이 오크라톡신(ochratoxin)으로 누룩곰팡이속과 푸른곰팡이속의 몇몇 종이 만들어낸다. 흥미롭게도 오크라톡신의 구조를 보면 일부가 시트리닌과 꽤 비슷하다. 생합성 과정에서 몇몇 효소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오크라톡신인 오크라톡신A의 신장독성은 시트리닌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홍국균은 오크라톡신을 만들지 못한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홍국균이 만든 시트리닌과 제조 과정에서 오염된 푸른곰팡이가 만든 오크라톡신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강력한 신장독성이 나타난 게 아닐까.

● 최대한 노출 줄여야

곰팡이가 사람과 동물에 치명적인 독성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1960년대 영국 런던 근교에서 칠면조 병아리 10만 마리가 떼죽음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드러났다. 사료인 땅콩이 누룩곰팡이의 한 종(A. flavus)에 오염됐고 이 곰팡이가 만든 독소가 병아리를 죽인 것이다. 대표적인 곰팡이독소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이 발견된 과정이다.

곰팡이독소는 곰팡이에 오염된 음식이나 오염된 사료를 먹은 가축을 통해 인체에 들어와 해를 끼친다. 대표적인 곰팡이독소인 아플라톡신B1을 만드는 곰팡이와 오염 경로, 증상을 보여주는 도식으로 특히 간암이 치명적이다. 곡물 및 유지 과학과 기술 제공

아플라톡신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커서 2004년 케냐에서는 곰팡이에 오염된 옥수수를 먹고 125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설사 치사량을 먹지 않아도 아플라톡신에 반복해 노출되면 간암이 생길 위험성이 커진다.

곡물과 견과류 등 농산물의 생산, 보관, 가공 과정에서 늘 곰팡이에 오염될 수 있다. 실제 아플라톡신 노출 위험이 큰 지역의 간암 발생률은 선진국의 16~32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결과 지구촌 전체 간암의 5~28%가 아플라톡신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특히 날이 더워지고 습해지면 음식물이 곰팡이에 오염될 가능성도 커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곰팡이에 오염된 음식은 곰팡내가 섞여 냄새가 이상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럴 때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다 버려야 한다. 특히 견과류는 소량 구매하고 냉동실에 보관해 곰팡이 노출과 증식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곰팡이독소는 음식 섭취뿐 아니라 피부접촉이나 호흡을 통해서도 몸으로 들어와 습진과 천식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장마철 집안에 곰팡이가 증식해 퀴퀴한 냄새가 나면 방치하지 말고 없애고 환기를 자주 해줘야 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 곰팡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공기 중에는 늘 곰팡이 포자가 떠다니기 때문이다. 결국 포자가 깨어나 증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게 최선의 대응이다. 그리고 천연물 유래 건강보조식품을 구매할 때도 유의해야 한다. 홍국처럼 곰팡이가 원료인 제품이 아니더라도 약용식물 등 원료가 곰팡이가 감염된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해썹(HACCP) 인증 제조 시설에서 만든 제품인지는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21세기도 4분의 1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천연은 몸에 좋고 합성은 해롭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 고지혈증인 사람들을 위한 고순도 스타틴 의약품이 나와 있음에도(심지어 더 싸다)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불순물이 섞인 천연 스타틴이 함유된 홍국 제품이 인기가 있으니 말이다. 곰팡이독소를 비롯해 강력한 독성을 지닌 물질 대다수가 천연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