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보다 자산 밸류업·시장 밸류업으로 가야 ① [더 나은 경제, SDGs]

김수연 2024. 4. 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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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5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달 20일~28일 주간은 국내 12월 결산법인 중 코스피(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상장사들이 가장 바쁜 한주였다.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가 몰려있는 주간이었기 때문이다. 28일 하루에만 850곳의 정기 주총이 열렸다.

올해 주주총회의 가장 큰 화두는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정책이었고, 그중에서도 핵심 관심 사항은 ’주주환원’과 ‘자사주 소각’이었다.

지난달 20일 열린 삼성전자 주총에서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겸 부회장이 “주주환원 정책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연간 약 9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26일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8만원을 넘기며 큰 상승세를 탔다. 삼성전자 주가는 2021년 12월28일 이후 2년 3개월 만에 8만원을 넘겼고, 개인 투자자들의 여망인 이른바 ‘8만전자’로 올라섰다.

현대자동차도 지난달 21일 주총 당일 주가가 4.56% 올랐다. 다시 현대차는 기말 배당금을 보통주 기준으로 전년 대비 2400원 늘어난 8400원으로 의결했다. 또 연간 배당성향을 25% 이상으로 높이고 자사주 소각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신세계인터내셔날도 자사주 소각 발표 후 주가가 10.97% 급등했다.

이처럼 이번 정기 주총에서 주주환원 또는 자사주 소각 정책을 밝힌 기업은 코스피 상장사 기준 50곳 이상이었는데, 이들 중 41개사 주가가 3% 이상씩 오르며 기업 밸류업 효과를 봤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주주환원과 자사주 소각이 기업 밸류업의 핵심을 짚지 못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자사주 매각을 발표하고도 주가가 되레 하락한 기업도 적지 않다. 유가증권 상장사 기준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기업 중 16곳은 주가가 떨어졌는데, 우리금융지주는 1.91%, 대성홀딩스 1.98%, 휠라홀딩스와 메리츠금융지주도 각각 2.8%, 2.96% 빠졌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미래 신성장 동력을 보여주거나 그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성장에 호의적일 때 주주환원과 자사주 소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017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주가가 최대 265만에 오르기도 했지만, 유례없는 50대 1 액면분할을 통해 주가를 5만3000원으로 낮췄다가 상승세를 반전시켰다. 게다가 그 이후로 D램과 낸드 등 주력 생산품의 가격이 하락하고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어려워지며 장기 침체기를 맞았다.

또 최근에는 엔비디아발(發)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에서도 소외되며 시장의 기대심리에 미치지 못했다.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산업 최강자인 미국 엔비디아에 직접 고대역폭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를 납품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현재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에서 HBM을 공급받아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에서 최종 조립하고 있다.

최근 주요 증권사와 금융정보업체들은 삼성전자의 실적 호조를 예측하고 있다. 이에 더해 주총에서 고배당 주주환원 정책까지 밝힌 만큼 주가가 8만원을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3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 73조1920억원, 영업이익 5조1750억원을 각각 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즉 기업 밸류업은 자사주 소각, 주주환원 정책뿐 아니라 그 기업을 둘러싼 호의적인 산업환경과 기업 스스로 성장 동력을 증명할 때 효과를 나타내는 셈이다. 밸류업 수혜주(株)로 지목되고도 몇몇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것도 이러한 연유다.

코스피 상장사 중 가장 대표적인 저PBR주로 알려진 이마트를 살펴보자. 기업 순자산 100만원 중 16만의 기업가치를 가진 PBR 0.16배 기업이지만, 밸류업 훈풍을 전혀 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밸류업 수혜를 기대하고 들어간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쿠팡과 컬리 등 온라인 유통기업 즉 이커머스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지난해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하며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결국 기업 밸류업은 이익과 산업환경이 함께 성장하는 ‘자산 밸류업’, ‘시장 밸류업’이 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여기에 주주들의 핵심이익이 반영할 수 있는 선순환 정책도 반영돼야 한다. 기업 밸류업이라는 명분 아래 정말 이름 그대로 ‘기업’만 남고 ‘주주’의 이익이 사라진다면, 우리 자본시장에 투자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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