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드러낸 지방의료…43개 시군구, 소아청소년과 병원 ‘0’

정윤경 기자 2024. 4. 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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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 전국 250개 시·군·구 분석
43개 시군구 거주하는 0~19세 국민 20만8267명
경북 군위 주민 “차 타고 1시간 거리 경북대병원 찾아”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3월28일 오전 '소아전용' 의료상담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 연세곰돌이소아청소년과의원에서 아이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보은군에서 생후 33개월 된 아이가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구조된 아이는 상급종합병원 10여 곳에서 이송을 거부당하다 결국 숨졌다. 충북 보은군은 소아청소년과가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이 한 군데도 없는 지역이다.

3일 시사저널이 응급의료포털을 통해 전국 250개 시·군·구를 분석한 결과, 충북 보은군처럼 소아청소년과가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이 한 군데도 없는 시·군·구는 43곳으로 집계됐다. 전국 시·군·구 6곳 중 1곳 꼴로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없는 셈이다. ▲대구 군위군 ▲경기 가평군 ▲강원 양양군 ▲충북 영동군 ▲전남 곡성군 등이 속한다.

소아청소년과가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지역 ⓒ양선영 디자이너

전국 21만 명 0~19세, 동네병원 없어 타 지역 이동해야

43곳 시·군·구에 거주하는 소아청소년은 약 21만 명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0세부터 19세까지 인구(2024년 3월 기준)는 20만8267명으로 집계됐다.

소아청소년과가 개설된 병원이 없는 경북 칠곡군의 0~19세 인구는 1만7360명이다. 이들은 집 가까운 곳에서 병원 진료를 볼 수 없어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지역은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전, 울산처럼 대도시에 몰려 있다. 서울은 평균적으로 자치구별 4.24개의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는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2곳을 품고 있다. 강남구에만 12곳의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있다.

서울 강남구를 포함해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10곳 이상 있는 지역은 ▲서울 중랑구 ▲부산 동래구 ▲울산 남구  ▲인천 서구 ▲대구 북구 등 15곳으로 확인됐다. 경남 김해시 외에는 전부 광역시·특별시에 속하거나 수도권 지역이었다.

소아청소년과가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이 전무한 시·군·구 43곳 ⓒ 양선영 디자이너

반면 이들 지역에 비해 강원, 충남, 전북, 경북 등은 접근성이 확연히 떨어졌다. 경북과 제주 전 지역에는 소아청소년과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한곳도 없다. 충북·충남·전남이 각 1곳, 강원·전북이 각 2곳에 그친다. 강남구에만 2곳 있던 상급종합병원이 비수도권에서는 도 단위로 넓혀야 겨우 1~2곳 찾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대구 군위군은 광역시 중 유일하게 병원급 소아청소년과가 한 군데도 없는 곳으로 조사됐다. 군위군 면적은 614㎢로, 서울 전체 면적인 605.21㎢보다 넓다. 이곳 주민 김아무개(27)씨는 "큰 병이 아니면 동네 내과에서 진료를 봐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군위군 보건소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보기 시작한 건 1년이 채 안 된다. 이마저도 18시가 되면 진료가 중단되고, 주말은 정기 휴무다. 김씨는 행여 큰 병이 의심되거나 동네 병원이 문을 닫을 때면 경북대병원이나 대구가톨릭대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김씨의 자택에서 경북대병원까지는 58㎞로, 자차로 이동하면 1시간6분이 소요된다.

전문가 "의대 증원 2000명, 지역 의료 시설 투입하는 방법도"

전문가들은 저출생과 지방 소멸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소아청소년과도 붕괴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역에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수익성을 고려한다면 민간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지역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1차적으로 공공의료시설이 들어서야 한다"며 "지난 30년간 공공 의료를 방치했기 때문에 '충북 보은 사건',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일본처럼 의대생에 장학금을 주고 일정 기간 동안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면, 증원분을 전부 지역으로 투입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며 "선발할 때부터 지역 의료에 복무한다는 조항을 내걸면 기존 의사들과 공급 시장에서 충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에 복무하는 의료진에 인센티브를 주고, 수가를 개선해서는 지역 의료 공백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일단 사람 자체가 없다. 어떻게 하면 지방 의료 시설에 복무하는 의료진을 선발할 수 있을지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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