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두발 검사…교칙개정 투표 집계 ‘학생 10표=교직원 1표’

심우삼 기자 2024. 4.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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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대전의 ㄱ공립 고등학교 강당에 학생들이 도열했다.

지난해 5월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위원회'를 꾸려 학교 공동체 구성원을 상대로 두발 규정 개정에 대한 찬반 투표를 이틀간 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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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개정 권고에도 규정 고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4일 대전의 ㄱ공립 고등학교 강당에 학생들이 도열했다. 교사들이 학생의 앞머리를 일일이 눌러가며 머리 길이를 살폈다. 교칙상 이 학교 학생들은 앞머리가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하며(투블럭 금지), 스프레이나 무스 등도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벌점 3점(10점 때는 선도위원회 개최)을 받는다. ㄱ고교에선 매달 이런 두발 검사가 이뤄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과도한 두발규정이 ‘헌법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두발 관련 규정을 개정을 권고했음에도, 대전의 한 고등학교가 이를 거부하고 엄격한 ‘두발 규정’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은 두발규정이 과도한 것도 문제지만, 지난해 규정 개정 논의 당시 답을 정해놓고 이뤄진 형식적 여론수렴이 더욱 문제라고 주장한다.

2일 ㄱ고교와 학생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ㄱ고교는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받았다. 하지만 학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한 규정’이라며 개정을 거부했고, 지난해 대전교육청까지 나서 관내 학교들에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라’고 하자 뒤늦게 개정을 위한 여론수렴에 돌입했다. 지난해 5월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위원회’를 꾸려 학교 공동체 구성원을 상대로 두발 규정 개정에 대한 찬반 투표를 이틀간 진행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투표로 두발규정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론 집계 방식이 이상했다. 학교가 교직원들의 표에 가중치를 부여해 학생 10표와 교직원의 1표의 가치가 같아진 것이다. 인원수만 놓고 보면 학생 대부분이 찬성한 두발 규정 개정 쪽이 크게 우세했지만, 조정된 비율에 따라 학생·학부모·교사의 의견을 합산하니 ‘규정 유지’ 의견(64.31%)이 과반을 넘겼다. 이후 두발 제한 규정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학교 학생 ㄱ씨는 “두발 규정이 군 간부 두발 규정보다 엄격해 그간 인권 침해라는 비판도 많았고, 인권위 진정까지 제기됐었다”며 “교칙을 직접 적용받는 대상은 학생인데, 교칙의 개정 여부에 대한 설문 조사는 교직원 뜻대로 흘러가도록 비율을 조정해 대부분 학생의 의견에 반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ㄱ고등학교 관계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규정 제·개정 위원회에서 정한 비율대로 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정해진 절차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인권 단체에서도 ㄱ 고등학교의 두발 제한과 이를 둘러싼 투표는 논란거리다. 이병구 대전인권행동 집행위원장은 “학생들이 자유로운 머리 모양을 갖는다고 해서 타인의 권리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닌데, 그 결정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켰으니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ㄱ고등학교처럼 엄격한 수준은 아니라해도 교칙에 두발 제한 규정을 두는 학교는, 2000년대 초반 ‘두발 자유화 운동’이 본격화 된지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많다. 인권위가 지난해 전국 중고등학교 540곳의 학교규칙을 점검한 결과, 340개교(65.3%)가 학생들의 두발을 제한하는 규정을 뒀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일수록 두발 형태를 제한하는 경향이 짙었다. 대전 역시 학생인권조례가 없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상임대표는 “그나마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도 최근 폐지 움직임이 일고 있어, 두발 규제 같은 인권침해 요소를 완화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며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여전한 만큼, (지역별 조례를 넘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학생인권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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