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거장 건축가의 한 프로젝트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24. 4.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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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최근에 개장한 '솔올미술관'이 화제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한 건축가의 작업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현대미술관이 쉽게 들어설 수 없는 지방의 중소도시인 강릉에 자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백색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미국의 리차드 마이어다. 1934년생으로 당시 이미 90살에 가까운 나이기도 하고, 2018년에 불미스러운 일로 강제적으로 은퇴를 하여, 직접 설계 작업을 맡아서 진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차드 마이어 특유의 디자인 DNA가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수많은 건축, 디자인, 예술 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리차드 마이어는 1970년대 초반, '더 화이트'라고 불렸던 일군의 건축가들과 함께 뉴욕 파이브라는 그룹으로 평단에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상업화, 통속화되었던 포스트모던 건축의 대두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순수한 기하학으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의 추상적이며 비지시적인 조형을 다시 되살리는 것을 주창하였다. 리차드 마이어는 뉴욕 파이브 중에서도 백색의 조형과 공간을 가장 돋보이게 실현했고 대중적, 상업적으로 성공한 건축가로 현재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솔올미술관이 그의 작품세계에서 특별히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실험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공부했던 이들에게 낯익은, 주변 지형과 맥락과 조화를 이루는 강렬한 축이나, 미술관 건축에 특히 최적화된 화려한 건축적 산책, 백색의 조형이 만드는 순수한 기하학 등이 빠지지 않고 구현된 작업으로서 많은 기대를 하게 하였다.

솔올미술관은 현재 준공되지 않은 임시 사용 중이긴 하지만, 정식 개관전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루치오 폰타나의 전시로 미술관의 첫 전시로서 손색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큰 기대에 비해 어수선한 건축물의 만듦새는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이 미술관은 인근에 아파트를 개발하고 있는 시행사가 공공기부채납의 형식으로 건축하고, 올 하반기 강릉시에 이관할 예정이다. 대규모의 예산과 전문 운영조직이 필요한 현대 미술관으로서는 독특한 탄생 이력이라, 이를 추후에 어떻게 운영할지 시에서도 아직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건축물의 완성도는 더 큰 문제이다. 리차드 마이어의 시그네이쳐인 백색메탈패널은 건물의 진입구에 세워진 엘리베이터 타워와 오피스와 전시실을 담고 있는 일부 동에서만 외벽 마감재로 사용되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건물 외벽은 미장에 페인트 마감이라는 현대 미술관 건축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저렴한 재료 선택을 하였다. 이마저도 벌써부터 도장이 벗겨지고, 오염되어 이미 건축한지 오래된 건물처럼 보인다. 물론 건축물을 짓다 보면 예산의 문제로 당초 계획과 다른 결과물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비단 비용의 절감 탓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백색메탈패널로 마감된 오피스동 외벽은 이것이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조율된 조인트와 마감재가 훌륭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건물의 나머지 부분은 이것이 같은 공사인가 싶을 만큼 완성도의 차이가 크다. 문손잡이 방향이 잘못되어 난간과 충돌한다든지, 창호 프레임의 깊이가 통일되지 않아 모서리에서 어긋난다든지, 커튼월의 모듈이 제각각으로 임의적인 치수가 쓰였다든지, 테라스 바닥 마감재의 길이가 짧아 구조물이 육안으로 드러나는 상황 등은 웬만한 한국의 공공건축에서도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퀄리티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짐작하건대, 이것은 예산의 문제나, 시공의 솜씨 차원이 아닌, 프로젝트의 매니징에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해외의 유명건축가와 국내의 로컬 건축사, 아파트 시행사와 시공사, 기부 받을 지자체 등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매끄러운 매니지먼트가 필히 갖추어져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결과물은 기술과 비용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선장이 부재해서 초래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되었든 화제가 될 만한 현대미술관을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방의 도시에 지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니 만큼 남은 기간 잘 마무리 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장소로 거듭나길 기원해본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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