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점’ 소송에 ‘AI 경쟁’선 뒤처져…무너지는 ‘애플의 아성’

배문규 기자 2024. 4. 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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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생태계의 가두리 전략으로 한때 ‘혁신의 아이콘’ 명성
미 법무부 ‘반독점 위반’ 제소…유럽 ‘디지털시장법’ 전면 시행
동시다발 견제 시작…6월 WWDC서 새 AI전략 내놓을지 주목

난공불락 같던 애플의 성채에 금이 가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으로 회사가 분리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유럽에선 ‘빅테크 갑질 방지법’인 디지털시장법의 첫 조사 대상에 올랐다. 중국 시장 스마트폰 실적 악화에, 10년을 공들인 ‘애플카’ 개발 포기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애플이 처한 위기의 배경이 이전에는 애플의 성공 원인으로 꼽혔던 터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월드 가든·walled garden)이라 불리는 폐쇄적 ‘애플 생태계’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의 재편과 맞물린 애플의 위기는 ‘개방형 대 폐쇄형’ 생태계 이슈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 골칫거리된 ‘애플 생태계’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통해 애플의 ‘정원’에 들어간다. 모양만 예쁜 줄 알았더니 운영체제 iOS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성능에 놀라고, 앱스토어에서 다양한 서비스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클라우드·애플페이·애플뮤직·아이메시지·페이스타임을 통해 일상생활이 애플과 연결되면, 어느새 애플워치·에어팟·아이패드·맥북까지 사게 된다. 소비자를 애플 생태계에 끌어들여 가두리치는 전략은 애플에 십수년간 엄청난 이익을 안겨줬지만, 미국·유럽 규제기관이 칼을 대는 동시에 경쟁자들로 둘러싸이게 만들었다.

애플의 ‘월드 가든’은 업계 기준으로 봐도 이례적으로 포괄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통합돼 애플 소비자들이 다른 기기를 사용하거나 경쟁 생태계로 옮겨가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애플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됐다. 애플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혁신을 제한하고 이용자에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이메시지의 폐쇄적 운영, 애플페이와 애플워치의 다른 서비스 연동 제한, 다른 앱스토어 사용 제한 등이 지적됐다. 이를테면 아이메시지는 아이폰 사용자 메시지는 파란색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는 초록색으로 표기되게 만들어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안드로이드폰 사용을 기피하는 압박 요인까지 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시장을 떠올려봐도 애플페이는 현대카드로만 이용 가능하고, 수수료가 없는 다른 업체와 달리 0.15%나 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EU)에선 지난달 ‘디지털시장법(DMA)’이 전면 시행됐다. DMA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일정 규모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특별 규제하는 법이다. 애플을 비롯한 빅테크 6곳이 지정됐다. 역시 핵심은 폐쇄적인 생태계를 열고, 자사 서비스만 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과징금이 전 세계 연간 매출의 20%까지 올라갈 정도로 큰 데다,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법을 준비하고 있어 디지털 규제의 중대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소송을 5년여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삼스러운 이슈는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 임계를 넘어서며 동시다발적 견제가 시작된 셈인데, 문제는 시점이다. 생성형 AI 중심으로 산업이 전환되는 시점에 AI 경쟁에서 밀려난 게 결정적이다.

애플은 2011년 음성인식 AI 서비스 ‘시리’를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했지만, 이후 아마존·구글에 따라잡혔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2022년 생성형 AI ‘챗GPT’를 내놓으며 세계를 흔들었다. 주력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실시간 통·번역 등 AI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 S24 시리즈를 먼저 선보였다.

매출 비중이 높은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올해 첫 6주 동안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다. 시장 점유율은 1년 새 19%에서 15.7%로 떨어져 순위도 2위에서 4위로 밀렸다. 이 와중에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 출시 계획을 접었다는 소식은 미래 먹거리를 포기했다는 의미로 읽혔다. 지난 2월 확장현실(XR)을 구현하는 헤드셋 ‘비전프로’가 나왔지만, 워낙 고가여서 당장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이던 애플의 주가는 하락세를 그리며 올해 들어 시가총액이 3000억달러(약 400조원) 증발했다. 블룸버그는 “AI 없는 애플은 고성장주보다 코카콜라 같은 가치주와 비슷하다”는 분석을 전했다. 애플이 ‘혁신의 아이콘’에서 멀어졌다는 얘기다.

■ AI 대응 따라 업계 재편

애플 실적에 따라 매출이 움직이는 한국 부품사들은 ‘탈애플’ 전략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대표적 애플 관련주로 꼽히는 LG이노텍은 전체 매출의 80% 정도가 애플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폰에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는 LG이노텍은 애플카 포기 소식까지 더해져 주가가 연초 대비 20% 가까이 하락했다. LG이노텍은 사업 구조를 전장·반도체 기판으로 재편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애플 의존도가 높다. 전체 매출 중 애플 비중이 LG디스플레이가 30%, 삼성디스플레이가 20%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역시 차량용 올레드(OLED) 패널 사업과 XR 기기 쪽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의 위기가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지는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애플이 부상했는데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이 그러한 시장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며 “AI라는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플레이어의 재편이 이뤄질 수 있는 중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폰의 강점으로 개방형 생태계를 내세우고 있다. 하드웨어, 칩 설계 등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운영체제(OS)·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는 구글과,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앱 프로세서(AP)는 퀄컴과 협력하는 방식이다. 애플에 앞서 갤럭시 S24를 AI폰으로 낼 수 있었던 것도 ‘개방형 협업’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자체 개발한 온디바이스 AI에 파트너사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활용한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애플이 더욱 개방된 시장 전략을 취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보다는 규제와 제한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애플은 유럽에서 앱스토어 독점 정책을 포기했다. 구글의 생성형 AI를 아이폰에 탑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중국 판매 아이폰에는 바이두의 생성형 AI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6월 열리는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 쏠린다. 업계에선 애플이 이 행사에서 구체적인 AI 전략을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이폰 16 출시가 반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을 서둘러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AI 기능이 애플의 새로운 슈퍼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소비자들이 AI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기기 교체에 나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이 제대로 된 AI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제 스스로 만든 수렁에 더욱 빠져들 수 있다.

1890년 ‘셔먼법’ 유서 깊은 ‘반독점 규제’…“혁신의 주역이 혁신을 막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왜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에 나섰을까. 한때 기술 혁신의 주역이었던 애플이 진입장벽을 쌓아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게 핵심 이유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는 석유, 담배, 철강, 통신에 이어 정보기술(IT)까지 경제·산업 환경 변화에 따라 공룡처럼 커버린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했다. 1890년 존 셔먼 상원의원이 발의한 ‘셔먼법’에서 시작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생산량 조정, 가격 인상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독점 기업들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거래를 제한하거나 독점하기 위한 모든 결합과 공모를 금지하는 셔먼법이 탄생했다.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은 1911년 이 법을 적용받아 34개 회사로 쪼개졌다. 미국 각지 석유회사들을 사들여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한 터였다. 미국 정부는 1942년 방송 산업을 독점한 NBC를, 1984년 유선 전화사업을 장악한 AT&T를 분할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미국은 독점이 자유경쟁을 저해한다고 보고 이를 막는 데 주력해왔다.

이번 애플 반독점 소송을 계기로 1998년 미국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낸 반독점 소송이 소환됐다. 당시 법무부는 “애플이 MS가 사용한 것과 같은 전술을 많이 썼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가격, 더 적은 신제품, 더 나쁜 사용자 경험”을 남겼다고 했다.

26년 전 MS의 PC 운영체제(OS) 윈도는 전 세계 PC의 95%에 설치돼 있었다. MS는 이 같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윈도에 인터넷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끼워넣었다.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PC 제조업체들에겐 윈도를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 정부는 그 결과 넷스케이프 같은 경쟁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됐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이 익스플로러를 공짜로 잘 쓰고 있는 마당에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는 MS가 다른 기업의 신제품 개발을 억제하고 경쟁을 저지해 궁극적으로 소비자 효용을 감소시킨다고 봤다. 소비자들이 더 혁신적인 기술을 경험할 기회를 놓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MS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회사를 2개로 분할하라고 명령했다. MS는 경쟁사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기로 법무부와 합의하면서 회사를 쪼개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MS의 패배는 곧 구글과 애플의 기회였다. 2012년 구글 크롬이 출시 4년 만에 MS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1년 시장에 등장한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은 출시 2년 뒤 윈도용 아이튠즈(애플의 미디어 기기 관리 프로그램)가 나온 이후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법무부는 “미국 정부와 MS의 ‘동의 판결’이 없었다면 애플이 이러한 성공을 거두고 궁극적으로 아이폰을 출시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MS 반독점 소송으로 수혜를 입고 성장한 기업이 세월이 흘러 반독점 소송의 당사자가 된 꼴이다.

애플 반독점 소송이 일단락되기까진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기업 분할이나 사업 부문 매각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MS가 PC 운영체제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과거와 달리 아이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50% 남짓이어서 기업 분할까지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도 거대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고, ‘반칙행위’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반칙행위 시점과 시정조치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플랫폼법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 1월 간담회에서 “현행법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문제’가 반복된다”며 “법 제정이 늦어진다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점화는 글로벌 빅테크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정위는 자사 플랫폼인 카카오T의 배차 알고리즘을 바꿔 가맹 택시를 우대한 카카오모빌리티와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쇼핑몰 플랫폼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를 상단에 노출한 네이버에 각각 2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플랫폼 업계 반발에 밀려 플랫폼법 제정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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