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부가세 경감”·이재명 “국민 지원금”… 총선 말말말에 기재부 ‘난감’
“재정·조세 지원 수반”… 기재부도 “검토”
與 세부담 경감·野선 예산 소요 정책 요구
조국 “경제부총리 폐지”에도 한때 뒤숭숭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합니다.
3월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해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절반 인하하는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3월 28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4·10 국회 총선거를 앞두고 각종 민생 공약이 쏟아지는 가운데, 기획재정부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공약을 현실화하는 데는 재정·조세 지원이 수반되는데, 이에 대한 지출 규모와 효과를 따져봐야 해서다.
다만 기재부는 12년 전 정치권의 공약에 대한 의견 발표를 공식화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에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내부적으로는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분위기다.
◇ 與 잇단 ‘부가세 경감’ 공약 발표… 세제실 “효과 분석”
3일 국회 등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연일 ‘부가세 경감’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사거리 총선 지원 유세에서 “출산·육아용품, 라면·즉석밥·통조림 등 가공식품, 설탕·밀가루 등 식재료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해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절반 인하하는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부가가치세는 기본적으로 10%가 붙는데,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면세하고 있다. 기초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쌀·고기·소금 등 미(未)가공식료품, 수돗물, 연탄을 비롯해, 양육비 지원을 위한 영유아용 기저귀·분유 등에 대해서는 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 것이다. 서민 생활 물가 부담이 커질 때마다 정부는 한시 면제 등 형태로 품목 추가를 요구받아 왔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지난 1일 부산 사상구 애플아울렛 지원 유세에선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을 현행 연 매출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간이과세자가 되면 세금 부담이 덜어지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연 매출 2억원이 안 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무조건 적용하자는 것이다. 앞서 기재부는 비슷한 취지로 현행 8000만원인 연 매출 기준 금액을 현행법상 올릴 수 있는 최대 금액인 1억400만원까지로 이미 한 차례 올려 올해 7월 적용을 앞두고 있다.
한 위원장의 발언이 나오자 기재부 세제실은 “지원 효과,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다만 부가세 경감을 겨냥한 한 위원장의 연이은 발언으로 난감해진 모습이다. 가뜩이나 국세 수입이 모자란 상황에서, 그나마 현재 세수 증가세를 이끄는 세목이 부가가치세여서다.
부가가치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소득세·법인세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세목이다. 각종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도 ‘마른 수건 짜듯’ 재정을 운용하는 기재부로선 부가세를 또 건드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 野 예산 소요 ‘민생지원금’ 요구… 예산실 비공식 검토
야당에선 예산 지출이 필요한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한다”며 13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마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처럼 고물가에 고통받는 국민에게 예산을 풀어 돕자는 취지다.
기재부 예산실은 민주당 측의 검토 요청은 없었으나, 실제 지원 가능한 요건에 해당하는지 비공식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예비비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동원해서 재원 마련을 검토해야 하는 문제다.
예비비 집행 조건은 ‘예측 불가능성’(예산편성 시 예측할 수 없음), ‘시급성’(다음 연도 예산편성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긴박), ‘불가피성’(확정된 예산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불가피한 초과 지출 충당), ‘보충성’(위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기확보된 예산을 먼저 활용한 후 부족분에 대해 사용) 원칙을 따라야 한다. 추경의 경우 국가재정법상 천재지변과 같은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해 경제가 아주 어렵거나, 극심한 경기침체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경우여야 편성이 가능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 시기 지급됐던 재난지원금 역시 적정성 논란으로 ‘좋은 정책’은 아니었다고 평가되고 있는 데다, ‘민생 회복’이란 명분이 예비비·추경 요건을 충족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소요 예산 발표만으로도 문제” 선관위 제재 이력에 쉬쉬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이를 의식해 지난 1일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이제 곧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 4월 재정전략회의, 7월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둔 가운데, 정치권의 요구를 한정된 재정 속에 담아내는 것이 기재부의 과제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 기재부가 구체적인 소요 재정 추계나 세수 효과를 공표하는 등 당장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선거 관여 행위 금지에 저촉될 수 있어서다.
2012년 박재완 전 장관 시절, 기재부 복지 태스크포스(TF) 팀은 ‘정치권 복지 공약 분석 결과’를 통해 소요 예산 규모를 계산해 발표했는데,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다만 이를 두고 당시에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당국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의견이 맞서며 논란이 일었다.
한편 이 밖에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경제부총리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혀 한때 기재부 내부가 뒤숭숭하기도 했다. 기재부를 둘로 쪼개어 재정·경제정책은 재정경제부가, 예산은 기획예산처가 담당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내부에서는 기재부 인사 적체가 해결될 방안이라며 호평하는 반응과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부총리제가 폐지된 바 있지만 결국 별 효과 없이 원복됐다며 부정적인 반응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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