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육종방식, 양에서 질로 진화…기후적응형 품종 개발 급선무

최소임 기자 2024. 4.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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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60년, K–농업을 말하다] 통일벼 이후 우리 벼 육종 방식의 변화
1970년대 다수확 통일벼로 증산
1980년대 고품질 쌀 육성·보급
1990년대 UR 협상·WTO 출범
국제 경쟁력 위해 고급화에 박차
국내 외래품종 재배비율 4.3%
경기지역에선 해들·알찬미 대체
공급과잉 해결위해 ‘가루쌀’ 확대
온난화 가속…지속적 육종 연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겪으며 만성적인 쌀 부족 상태였던 한국은 1970년대 초반 개발한 ‘통일벼’로 주곡 자급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벼 육종의 최우선 목표는 수량 증대였다. 그러나 5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우리의 쌀 소비 패턴은 변화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어 지난해 56.4㎏까지 감소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로 벼가 재배되는 환경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통일벼’로 대표되던 증산 시대 이후 국내 벼 육종 변화를 살펴보고, 앞으로 과제와 대안을 짚어본다.

시대별 요구되는 품종 변화=시대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벼 품종은 계속 달라졌다. 증산이 최고 목표였던 1960년대 후반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원연 교잡을 통해 다수성 생산구조를 가진 ‘통일벼’ 육종에 나섰고, 1970년대에 들어서 주곡 자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형 품종들은 여러 단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밥맛’이다. 대부분 통일형 품종들은 자포니카에 비해 찰기가 없어 밥맛이 낮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와 함께 저온피해 등 재해 안전성이 떨어지는 특징도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1980년대에 들어서는 수량성보다 안전성과 품질에 중점을 두고 육종법을 개발했다. 더군다나 1980년 저온피해 발생으로 통일형 품종 재배가 급격히 줄었다. 그 결과 통일형 품종 재배면적은 1986년 22%까지 감소했고, 1992년에는 완전히 자포니카 품종으로 교체됐다. 통일형 대체 품종으로 ‘삼남벼’ ‘소백벼’ ‘동진벼’ ‘오대벼’ 같은 자포니카 품종이 육성·보급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는 등 대외 개방 압력이 심해지면서 우리쌀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따라서 이 시기 육종 개발의 화두는 품질 고급화였다. 지금까지도 많이 재배하고 있는 ‘신동진’ ‘일품’ 등이 이 시기 개발됐다. 가공용 쌀 품종인 향미·유색미 등도 등장했다.

2000년 이후에는 최고 품질의 쌀 생산을 위해 육종단계부터 도정수율·밥맛·내병충성 등 선발 지표를 더욱 강화했다. 건강에 관심이 커지면서 기능성 쌀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확대되는 국산 벼 품종…‘종자주권’ 높인다=최근 들어서는 국내에서 재배하던 외래 품종 벼들이 국내 품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쌀 재배면적 가운데 외래벼 품종 비율은 2020년 7.9%(5만7000㏊)에서 지난해 4.3%(3만1000㏊)까지 줄었다. 가장 많이 재배하는 외래 품종인 ‘추청(아끼바레)’과 ‘고시히카리’의 재배면적 비율은 2020년 각각 6.2%, 1.3%에서 지난해 3.0%, 1.1%까지 감소했다. 농진청은 올해까지 외래 품종 벼의 재배를 국내 전체 벼 재배면적의 약 1.5% 수준인 1만㏊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한때 일본 품종이 밥맛이 좋은 고급 쌀로 인식됐으나 국산 벼 품종 연구와 보급에 따라 그 자리를 국산 품종이 채웠다. 특히 고급 쌀시장을 점유하던 경기지역에서 ‘추청’과 ‘고시히카리’를 ‘해들’과 ‘알찬미’ 같은 국산 품종으로 대체한 영향이 크다.

농진청은 “기존 외래 벼를 우수한 우리 벼 품종으로 대체해 경기 이천 쌀의 명성을 유지하고 싶다는 지역 요구가 있었다”면서 “2016년 이천을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쌀 수요 감소·기후변화…과제로=국내 쌀산업은 쌀 소비량 감소에 따른 공급과잉, 이상기후에 따른 품질 저하와 돌발 병해충 증가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먼저 쌀 소비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루쌀 같은 가공용 쌀 보급 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를 만들 수 있는 쌀로, 분질미라고도 부른다. 건식제분을 하기 때문에 대규모 제분이 가능하고, 밀가루처럼 다양한 가공식품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농진청은 2019년 개발한 가루쌀 품종 ‘바로미2’의 보급과 활용을 늘리기 위해 각종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다. 또 2025년까지 우량계통 선발방식으로 개선한 품종을 출원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기후변화는 벼 육종 연구에 있어서 풀어야 할 주요 숙제로 꼽힌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벼 안정 생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돌발 병해충에 저항성이 높은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한국작물학회지에 실린 ‘기후변화에 따른 국내 벼 품종과 재배 기술의 적응성에 관한 고찰’에서는 “온난화가 현재 추세와 같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에는 품종의 수량, 품질 등에 대한 안전성을 담보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후변화에 지속적인 적응을 위해서는 중단 없는 육종 연구가 수행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기영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장은 “쌀 소비가 지속 감소함에 따라 옛날 수량 중심에서 품질 위주로 육종 개발 방향을 바꿔나가고 있고, 수급 조절을 위해 가루쌀 같은 가공용 품종의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병해충에 대응하고, 여름철 온도가 높아지고 가을에 비가 많이 옴에 따라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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