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돌과 하늘을 보물로, 멋진 상상을 현실로

황지원 기자 2024. 4.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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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25) 테마파크 성공신화 쓰는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
디자이너로 성공적인 경력 쌓던 중
남이섬 개발 한류관광지로 탈바꿈
돌·잡초 무성한 제주 공터 사들여
재활용 조성물·헌책도서관 등 조성
현무암 활용 지역대표기념품 제작
국내 최초 ‘평생교육공원’ 선포도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는 현무암 구멍에서 삼라만상을 봤다. 그가 본 이미지를 버려진 철판에 구멍을 뚫고 모양을 만들어 표현했다.

‘황무지를 단무지로!’

돌과 잡초만이 무성했던 제주 한림읍 금악리 10만㎡(3만평) 땅을 8년 동안 일궈 ‘탐나라공화국’을 만든 강우현 대표(69)의 포부다. 2022년 4월 문을 연 탐나라공화국은 나무와 산·연못·책이 있는 테마파크다. 제주엔 이미 테마파크가 수십곳 있지만 이곳엔 특별한 점이 있다. 버려진 물건으로 만든 예술 작품과 구덩이에 빗물을 모아 조성한 80군데 인공 연못, 책 30만권이 쌓인 도서관, 쪼개 파는 하늘이다. ‘왜,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해 강 대표를 만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일했던 강 대표는 1998년 프랑스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공식 포스터, 서울랜드 마스코트 ‘아롱이 다롱이’ 등을 제작했다.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린 건 강원 춘천 남이섬 사장을 맡으면서부터다. 2001년 겨울 남이섬에 놀러 간 강 대표는 아름다운 자연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섬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 벌목 후 굴러다니던 나무에 장군 캐릭터 100개를 그렸다. 남이섬엔 조선 전기 문신 남이 장군의 묘가 있다. 강 대표는 8개월 동안 매주 주말이면 남이섬을 찾아 손수 꾸몄다. 그 모습을 본 남이섬 소유주는 강 대표에게 사장직을 제안했다.

“제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46만㎡(14만평)짜리 캔버스가 생긴 셈이니 월급은 100원만 받겠다고 했어요. 대신 경영실적이 기존보다 2배 이상 나오면 남는 건 저한테 달라고 했죠.”

강 대표는 사람들이 모여 술이나 마시던 ‘유원지’ 남이섬을 온 가족이 모여서 즐기는 공간인 ‘한류테마파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바꿔나갔다. 섬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을 모아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고, 양변기로 화분을 탄생시켰으며, 서울에서 버린 은행잎을 모아 은행나무길을 만들었다. 특히 2002년 1월엔 한류 열풍을 일으킨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남이섬은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까지 찾는 관광지가 됐다.

강 대표는 남이섬이 드라마 촬영지로만 남아 있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가상 국가로 선포했다. 대통령으로 강 대표가 취임하고 국기와 국가·헌법·화폐를 만들었다. 강 대표가 취임할 당시 한해 27만명이 찾던 남이섬은 이후 330만명이 오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가 됐다.

2009년 그는 한 사업가가 테마파크를 조성할 목적으로 매입했다가 투자 실패로 남겨진 제주 공터를 샀다. 막상 뭔가를 하려고 보니 돌로 뒤덮인 곳을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땅을 되팔려고 몇년을 기다렸는데 어떤 중국인이 살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속 시원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다간 제주가 다 중국 땅이 될 판이었습니다.”

탐나라공화국 전경.

남이섬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강 대표는 새로운 캔버스를 찾아 2014년 제주로 왔다. 탐나라공화국 곳곳엔 강 대표의 기막힌 아이디어가 속속 배 있다. 땅을 뒤덮은 돌을 파내 쌓아 산을 만들었다. 비닐이 썩지 않아 문제라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 구덩이에 깐 후 그 위에 빗물을 받아 연못을 만들었다. 태풍으로 망가진 풍력발전기 위엔 수백개 조명을 달아 ‘하늘등대’로 이름 지었고, 불빛 하나가 비추는 공간을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하늘추모공간’으로 설정했다. 지난해엔 하늘 한 구역을 120명에게 121만원씩 받고 팔았다. 하늘을 산 사람들의 이름은 하늘등대에 붙어 있는 전광판에 띄운다. 하늘을 돈을 받고 판다니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 같은 얘기지만 탐나라공화국에선 강 대표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

탐나라공화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소는 30만권 책이 모여 있는 ‘헌책 도서관’이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책은 집이나 도서관·출판사에서 버려질 뻔한 것을 기증받았다.

“100년 후면 책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없어질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 모아둔 책이 얼마나 귀중한 보물이 되겠습니까?”

제주 사람이 된 지 어느덧 10년. 강 대표는 육지에서 만드는 초콜릿이 아닌 제주에서 나는 것으로 만든 지역 대표 기념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무암을 1200℃ 가마에서 녹여 그것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 현무암 가루를 넣은 반죽으로 구워낸 도자기 ‘제주도(陶)’도 개발했다. 앞으론 제주에서 나는 풀 ‘신서란’을 가지고 한지와 스카프를 만들 예정이란다.

“얼마 전엔 탐나라공화국을 국내 최초의 ‘평생교육공원’으로 선포했어요. 어른이건 아이건 탐나라공화국을 찾아서 재활용에 대해 배우고 자연 속에서 자기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는 공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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