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철옹성 뚫은 집중투표제, 적대적 M&A 악용 우려도

이동훈 기자 2024. 4. 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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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가 행동주의펀드의 '신종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국내 금융지주 이사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진행된 KT&G 주총에서도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지지를 받은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외이사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하면서, 집중투표제가 행동주의펀드의 새로운 무기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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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금융지주-KT&G 주주총회서
행동주의펀드 지지 이사들 첫 선임
경영진 독단 막아 소액주주들 환영
투기자본 ‘먹튀’ 도울 가능성도

집중투표제가 행동주의펀드의 ‘신종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JB금융지주와 KT&G의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지지하는 후보들이 ‘철옹성’ 같은 대주주 중심의 이사회를 뚫고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다.

집중투표제가 한국의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대주주를 견제할 폐쇄회로(CC)TV로 작동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주주기본권을 훼손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JB금융지주·KT&G ‘친행동주의 이사’ 선임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진행된 JB금융지주에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이 후보로 추천한 김기석 크라우디 대표와 이희승 리딩에이스캐피탈 투자본부 이사가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국내 금융지주 이사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진행된 KT&G 주총에서도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지지를 받은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외이사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하면서, 집중투표제가 행동주의펀드의 새로운 무기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수만큼 의결권을 복수로 부여하는 제도다. 2명을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당 2표를, 3명을 선임할 경우 3표를 행사하게 된다. 특정 이사에게 몰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가 지지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다.

국내에선 1998년 말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여겨졌다. 지난달 말 기준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중 집중투표제가 가능한 기업은 포스코홀딩스, 한국전력, KT&G, SK텔레콤, SK스퀘어 등 5곳에 불과하다.

● 대주주 견제책 vs ‘먹튀’ 도우미

전문가들은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행동주의펀드들의 집중투표제 도입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한다. 주주 환원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미혜 삼일PwC 거버넌스센터 상무는 “집중투표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지표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도입률이 낮은 편”이라며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에서 집중투표제 확대 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기업 지배구조 팩트북 2023’에 따르면 주요 48개국 중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3개국은 집중투표제를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 캐나다, 독일 등 23개국은 주주 요청이 있을 경우 집중투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투기 자본의 ‘먹튀’를 도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월가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2006년 KT&G에 사외이사를 진입시켜 경영 개입을 시도하다가 1년 만에 지분을 모두 팔아 1500억 원의 차익을 챙겨 떠났다.

일각에서는 집중투표제가 적대적 M&A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한국토지신탁은 2015년 집중투표제를 통해 경영권이 넘어가기도 했다. 유정주 한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집중투표제는 1주 1표라는 주주기본권을 훼손하는 데다,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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