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남양성모성지 35년 가꿔온 이야기

김한수 기자 2024. 4. 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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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 신부, 성지 개발 과정 정리한 책 ‘이루어지소서’ 발간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김용관 사진

사제품을 받은 지 38년. 그중 3년을 뺀 35년 동안 경기 화성 남양에서만 사제생활을 했습니다. 남양성모성지 전담 이상각(65) 신부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6년 1월 수원교구 사제로 서품받은 그는 비산동과 지동성당 보좌신부와 신갈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1989년 8월 남양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후 지금까지 35년째 남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주교 사제들은 주임신부의 경우는 5년에 한번씩 이동 발령이 나곤 하지요. 그러니 한 곳에서 35년을 보냈다는 것은 특별하고 예외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신부는 그 35년 동안 남양성모성지를 전담해 개발하고 가꿔왔습니다.

◇사제 생활 38년 중 35년을 남양에서만

이 신부는 최근 남양 생활 35년을 정리한 ‘이루어지소서’(한국교회사연구소)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500쪽이 넘어 거의 ‘벽돌책’ 두께인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쓴 ‘남양성모성지 개발 백서’인 셈입니다.

“이 신부, 남양에 가면 성지(聖地)가 있는데, 성지개발 한번 잘해 봐.”

이상각 신부는 1989년 8월 당시 교구장으로부터 발령 소식과 함께 이런 당부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이 신부도 남양에 성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네요. 담당 신부조차 존재를 몰랐던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었지만 당시엔 작은 광장 하나 있었답니다. 이 성지는 지금은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대성당이 서있는 명소로 탈바꿈했습니다.

◇성모발현한 곳이 아닌 ‘성모님께 기도하는 곳’

책에는 그 과정이 하나하나 적혀 있습니다. 성지 이름에 ‘성모’가 추가된 과정부터 흥미롭습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성모성지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 등이 있지요. 이곳들은 성모 마리아가 신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발현한) 것으로 알려진 곳들입니다. 이에 비해 남양성지는 성모가 나타난 곳이 아닙니다. ‘성모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1991년 10월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에 의해 ‘남양성모성지’로 선포됐답니다. 그리고 1995년 이 신부는 아예 남양성모성지 전담 사제로 발령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성모성지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이 신부의 손길이 닿아있습니다. 잘 생긴 소나무가 눈에 띄면 성지로 옮겨심었고, 미국의 한인성당을 순회하며 호소해 10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월간 소식지도 창간해 쉬지 않고 발간하고 있답니다. 월간 소식지에는 성지 바닥 등에 사용할 맷돌과 다듬잇돌을 보내달라는 광고를 내기도 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지요. 소식지를 받아보는 신자들은 “월보(月報)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며 ‘땅 한 평 값’으로 10만원씩 보내오기도 했답니다.

하늘에서 본 남양성모성지. /김동규 사진

◇국내외 신자들의 십시일반

이런 노력 속에 성지는 차츰 자리잡아가지요. 묵주 한 알이 수박보다 큰 돌로 만들어진 ‘묵주기도의 길’과 ‘십자가의 길’도 만들어지고, 봄부터 가을까지 각기 다른 꽃이 쉼없이 피어나는 수목원을 방불케 됐습니다. “묵주기도 길을 걸으며 다양한 나무와 꽃들과도 교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기도와 묵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영적인 위로, 마음의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이 신부는 책에 적었습니다.

◇치맛자락 매달린 아기...한국적 성모자상

남양성모성지의 상징인 성모자상. 성모의 치맛자락에 매달린 아기 예수를 표현했다. /이상각 신부 제공

‘남양 성모상’은 남양성모성지의 시그니처이지요. 성모님 치맛자락에 아기 예수가 매달린 형상입니다. 일반적인 성모자상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남양성모성지의 성모자상은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와 아기의 모습이지요. 항상 성지만 생각하다보니 이 신부는 이런 ‘아재 개그’도 한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만 하면 마리아를 찾아. 그러게 말이야(마리아), 참말이야, 정말이야, 글쎄 말이야. 이렇게 찾는데도 마리아 이름으로 찾아가 기도할 곳이 없어.”

◇세계적 건축가들과 협업

책의 후반부는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81)·페터 춤토르(81)와 대성당과 ‘티(tea) 하우스’를 건축해가는 과정을 적었습니다. 대성당 건축은 2011년 성지 봉헌 20주년을 지나며 구상하게 됐다지요. 마리오 보타는 강남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이고 페터 춤토르는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로 불리는 사람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2009)을 수상했습니다.

이 신부는 이들과 어떻게 연결돼 설득하고 설계를 맡기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건축이 진행됐는지를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촘촘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과정을 보면서 건축가들이 보여준 태도가 ‘현자(賢者)’들을 연상케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리오 보타 “에스컬레이터? 성당은 쇼핑센터 아니다”

마리오 보타(왼쪽)와 이상각 신부. /이상각 신부 제공

예를 들어 대성당은 애초에 2500명 수용 규모로 계획했답니다. 당연히 많은 인원의 신속한 입장과 퇴장이 중요하지요. 이 신부는 엘리베이터 외에 경사가 있는 긴 통로에 에스컬레이터 설치 여부를 마리오 보타에게 타진했다고 합니다. 돌아온 답은 “성당은 쇼핑센터가 아니므로 에스컬레이터 설치는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였다고 합니다.

보타는 공항-현장-회의 외에 다른 시간 낭비는 전혀 없었다고 하네요. 시간이 없을 때에는 인천공항에서 잠깐 회의를 하고 떠나기도 했답니다. 또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식탁보로 깔린 종이 위에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한 후에 그 종이에 사인을 해서 이 신부에게 주기도 했답니다. 이 신부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 ‘70대 젊은이의 열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타는 매번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를 발전시켰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당초 2500명 예정이었던 수용 규모는 2300명을 거쳐 1300명으로 줄여서 2019년말 지어졌고 코로나 팬데믹 와중이었던 2020년 11월부터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만든 파이프오르간, 이탈리아에서 만든 ‘도(258㎏)’에서 ‘시(50㎏)’까지 음계별로 7개의 종(鐘) 그리고 의자와 가구까지 하나하나 이야기들이 흥미롭습니다.

대성당은 거대한 굴뚝 2개가 서있는 형상입니다. 고딕 성당의 종탑을 원통이 대신한 것이지요. 그 천창(天窓)을 통해 들어온 빛이 제대 위에 ‘천사의 날개’처럼 비칠 때가 있답니다. 보타는 평소 ‘빛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부른다지요. 그는 “빛은 공짜여서 빛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고 형태를 빚어내는 일은 항상 즐겁다”고 말한답니다.

◇춤토르 “이미 종교 건축 충분. 경당 대신 티 하우스 만들자”

이상각 신부(왼쪽)와 페터 춤토르. /이상각 신부 제공

춤토르는 더욱 까다롭고 예술가적인 건축가. 춤토르와 만남을 주선한 보타는 “11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전(前)도 후(後)도 아닌 정확히 11시에 찾아가라”고 권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춤토르는 ‘나는 싫소’라며 부자들의 설계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유명했답니다. 건축 설계를 일단 맡게 되면 ‘내 생애의 4년을 의미한다’면서요. 정확히 약속시간에 찾아간 이 신부 일행을 맞은 춤토르는 마리오 보타 등 여러 건축가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하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나는 테마파크 같은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참 까다로운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다시 곱씹어보면 맞는 이야기들입니다. ‘성당은 쇼핑센터가 아니다.’ ‘성지는 테마파크가 아니다.’

춤토르 일행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 신부는 제일 먼저 진관사로 안내했답니다. 진관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사찰음식도 맛보고 명상도 했답니다. 이어 창덕궁을 관람한 후 남양성모성지로 온 그는 건축 예정지에 도착해서는 한참 동안 서서 무언가에 집중하더니 “소리가 들린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렇게 예정지를 둘러본 다음엔 폭탄선언(?)을 했다지요. 원래 경당(소성당)을 의뢰했는데 춤토르는 ‘티 하우스’ 즉 ‘찻집’을 짓자고 역제안했다는 겁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성지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종교적인 그림들이 디자인되어 있다”면서 “영적인 체험을 꼭 경당과 같은 종교적인 건물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지요.

“티 하우스에서 사람들이 신을 슬리퍼까지 내가 디자인하겠다”는 춤토르의 작업은 아직 ‘진행 중’이랍니다. 자기 ‘인생에 4년’을 이야기를 하더니 벌써 10년째입니다. 어떤 걸작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이상각 신부 “치유와 위로의 장소가 됐으면”

남양성모성지 '묵주기도의 길'에 주변에 진달래가 피어있다. 성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이 릴레이로 피어나 수목원을 방불케한다. /이상각 신부 제공

이 신부는 “나는 성지가 상처받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어 주는 공간,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찾아와 기도하며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오는 6일 오후 2시 남양성모성지에서는 이상각 신부의 북콘서트도 열린다고 하네요. 세계적 건축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신부는 전화통화에서 “지금 ‘묵주기도의 길’에 진달래가 만발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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