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의 흔들림 없는 얼굴이 갖는 아우라와 연기톤 활용법('하이드')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4. 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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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하이드’ 지금이 입소문을 터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토일드라마 ​<​하이드>는 몇 가지 재밌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JTBC에서 방영하지만, 이례적으로 쿠팡플레이를 통해 선독점 공개한다. <대행사>의 이보영이 1년 만에 다시 원톱 주연으로 JTBC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그리고 최근 드물게 해외 드라마(BBC 웨일즈 드라마) <Keeping Faith>를 원작으로 삼고, <쌈, 마이웨이>의 김동휘 감독이 본격 장르물에 도전한 작품이기도 하다.

설정은 낯설지 않다. 예컨대 소설과 영화 모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나를 찾아줘>와 비슷하다.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지만 주부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나문영(이보영)이 어느 날 남편의 실종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실종된 남편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검은 조직과 결탁한 범죄까지 커다란 사건이 쉼 없이 밀어닥친다. 걱정과 당황한 감정은 분노와 슬픔을 거쳐 각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본인의 불우한 과거사가 하나의 복선으로 추가된다. 내 편의 경계가 무너지고, 덫들이 옥죄어오면서 딸과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의구현을 행하는 자력구제 코드도 담고 있다.

12부작의 짧은 호흡인 만큼 무척 빠른 보폭으로 진행된다. 나문영이 의심했던 남편 사망의 진실이 3회 만에 남편 차성재(이무생)가 살아서 등장하면서 밝혀지고, 아웃포커스로 잡히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웃사람 역할 정도의 단역으로 등장하는 하연주(이청아)를 연상하게 하는 실루엣이 빌런 소굴인 금신물산에서 잡히는 등 시청자들과 밀당을 오래 하지 않는다. 4화에서 역시나 한 박자 빠르게 패를 먼저 오픈하는 방식으로 허를 찌른다. 그래서 뭔가 익숙한 데도 몰입감이 상당하다.

이청아는 한 인터뷰에서 "제목 그대로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는, 굉장히 긴박하고 스릴 있는 드라마다."라고 했다. 실제로 4화까지 잘 쓰여진 페이지터너 소설을 보고 있는 듯하다. 한 고비가 넘어가고 안정을 찾을 즈음 더 큰 사건이 벌어진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물 특유의 맛도 꽤 진하다. 다만, 마케팅이란 관점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자극할 수 있는 내세울 요소가 이보영의 원톱물이라는 것 이외에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이보영의 도도하면서 우아한 캐릭터는 주체적 여성이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서사물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런데 원작도 그렇듯 <하이드>의 주인공은 걱정, 당황, 분노, 복수, 슬픔 등 다양한 감정과 처지 변화를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겪으면서 각성하는 과정을, 매순간마다 바뀌는 이퀄라이저처럼 진폭을 갖는 역할이다. 다시 말해 이보영의 흔들림 없는 얼굴이 갖는 아우라와 연기톤이 발휘되기 어려운 조건이다. 물론 4화부터 이보영에게 기대할 수 있는 특유의 카타르시스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지만, 여성서사의 메시지가 강한 <대행사>만큼의 통쾌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대행사>에서는 유리천장과 기득권에 도도하고 멋있고 강단 있는 이보영이 한방을 먹이는 메시지, 시대정신을 담아 대리만족의 통쾌함을 배가시킬 수 있었지만, 장르물인 <하이드>에서는 여성서사물에서 발휘되는 이보영의 장점을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즉, 이보영의 존재감이 장르적 쾌감 발휘에 집중돼야 하는 것이 일종의 핸디캡이다.

물론 여전히 기대는 남는다. 4화까지는 카운터 파트너 없이 이보영이 갈팡질팡하면서 자신의 궤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빌런의 정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시작하고, 이무생과 이청아도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 지금이 입소문을 터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비중 있는 배역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본격적으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하는 가장 흥미로운 시점이기 때문이다.

믿었던 인물부터, 예상치 못한 덫까지 온갖 견제를 받고 더욱 깊은 고난에 빠지는 나문영이 파훼법을 만들고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은 하이라이트다. 악은 가장 가까운 데 있었다는 식의 익숙한 결론은 설정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지, 범부들의 예측을 매번 뛰어넘는 <하이드>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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