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공연연습센터, 소멸위험지역에 새 활력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4. 2. 15: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구소멸 지역에서 문화예술 거점 역할
강진, 주민 마당극으로 관광상품 만들고
담양선 전통 예술가와 재즈 협업 이색공연
영월도 귀촌 청년에 음악활동 기회 제공
전남 강진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로 유명한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조선시대 재현 배우로 활약 중인 ‘조만간 프로젝트’ 참여 주민들.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골짜기 농촌에서도, 땅끝 바닷가 마을에서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적절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인구 감소로 경제활동은 물론 문화 향유는 언감생심이던 소멸위험 지역에도 ‘문화예술 거점’이 생기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각 지역자치단체·지역문화재단과 협업해 조성한 창작 공간 ‘아르코공연연습센터’를 통해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예술위 아르코공연연습센터 사업이 전국으로 뻗어나가며 지역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의 간판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사의재 저잣거리 마당극은 순수 100% 지역민이 꾸미고 있다. 2019년부터 운영 중인 ‘강진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지역민은 고등학생, 지역 상점 사장, 귀촌한 주민 등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된 이들은 강진군 대구면에 있는 아르코공연연습센터에 모여 연기와 공연 기획은 물론 강진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배웠다. 교육을 수료한 후엔 저잣거리로 나가 조선시대를 재현한 연기를 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해 직접 공연을 기획하는 ‘모하나(모여서 하나)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한층 더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공연예술 아카데미로, 연기·분장·음악·무대·시나리오 등 교육 분야를 넓혔다. 특히 해남으로 미용학원에 다니던 강진의 고등학생들이 분장팀으로 참여하면서 실습 기회를 얻게 됐다고 한다.

임채성 강진군문화관광재단 관광마케팅팀장은 “강진군 인구가 3만2600명대로 줄어든 상황에서 전문 예술인이 이곳에 정착해 공연을 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며 “지역민을 예술인으로 양성해 공연을 열고 관광객도 유치하자는 게 처음 시작이었다”고 소개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톡톡히 봤다. 단순 취미에 그치지 않고 남녀노소 직업 교육의 효과가 있어서다. 임 팀장은 “교육 이수 후 재현 배우로 활동하는 분들껜 소정의 사례비도 지급한다”며 “귀농·귀향한 어르신에겐 소일거리가, 어린 학생에겐 진로 탐색의 기회가 된다”고 전했다. 강진군은 이런 주민 주도 프로그램 운영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문체부 주최·한국관광공사 주관 ‘2023 한국관광의 별’도 수상했다.

‘조만간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민들이 배우로 직접 참여해 전남 강진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된 사의재 마당극.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공연연습센터는 예술가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하는 발판 역할도 한다. 전남 담양의 ‘즉흥 음악놀이 워크숍’은 한국무용·가야금 등 전통 예술가와 재즈를 연결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해 재즈의 즉흥성과 참여 예술가들의 신체 움직임·국악을 접목하는 교육을 했다. 이들 역시 담양의 연습실 공간을 활용해 올해 7주간 수업했고, 그 결과물로 이달 7일 담양읍 해동문화예술촌에서 ‘담빛 시나위’ 공연을 연다.

영월에선 귀촌 청년 유지희 씨가 아크로공연연습센터를 통해 꿈을 키우고 있다. 유씨는 “내게 아르코 연습실은 숨쉬기”라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환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음악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주는 숨통 트이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도심을 벗어나 시골에 살면 어디서든 음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에 마땅한 연습실이 없어 정작 악기 연주하고 노래 부르기도 어렵더라”며 “센터를 알게 된 후 성악 발성 연습, 바이올린·피아노 연주 등을 하며 음악 실력이 늘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자신감도 생겨 홈레코딩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일 예술위에 따르면, 지자체 유휴공간을 연습공간으로 조성한 아르코공연연습센터는 전국에 20개소로, 이 중 서울 대학로, 인천 남구 도화동, 경기 화성 동탄 등 3개소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모두 비수도권에 있다. 특히 전남 강진·담양, 강원 영월, 충남 서천 등 4곳은 정부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지난해 9월 기준)한 곳이다. 지방소멸 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 수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가 0.5 미만인 경우다.

문화 향유 기회가 수도권에 쏠리는 건 지역 소멸과 지역민들의 거주 만족도는 물론 문화의 다양성에도 치명적이다. 고유한 지역 문화의 색깔이 사라지고 획일화되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의 2022년 ‘지역 간 삶의 질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공연 건수의 62%, 매출액의 86%가 수도권에 쏠렸다. 비수도권 중 부산·울산·경남권이 6%로 뒤를 이었고, 나머지 지역은 모두 3% 이하의 저조한 수치에 머물렀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문화로 지역소멸에 대응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선도적인 운영 사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민관 협력을 통해 문화예술 창작 환경을 조성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강원 영월로 귀촌한 후에도 꿈을 놓지 않고 아르코공연연습센터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 유지희 씨.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