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이미숙, '미친 존재감'이란 바로 이런 것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4. 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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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눈물의 여왕' 방송 영상 캡처

모슬희(이미숙)가 30년 세월 끝에 왕을 제치고 궁(퀸즈그룹)을 먹었다. '눈물의 여왕'의 여주인공은 홍해인(김지원)이고, 홍해인의 남편 백현우(김수현)가 함께 주인공이지만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의 선봉장은 단연 모슬희 역의 이미숙이다. 2화에서 모슬희가 장기로 홍만대(김갑수) 회장을 이기면서 "제가 궁을 먹었네요. 왕이 피할 곳이 없어서 어떡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직감했다. 모슬희가 왕이 되겠구나! 그리고 8화에 이르러 모슬희는 그 복선을 완성시켰다. 

모슬희는 퀸즈그룹 회장의 내연녀로 30년 세월을 지냈으나 호적에 이름을 올리거나 재산을 증여받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대놓고 의뭉스러움을 부여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이미숙이 그 역할을 맡으면서 시청자에게 이 인물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초반부터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이미숙의 존재감은 대중에게 확고하다. 그 확고한 존재감이 30년 동안이나 큰 꿈을 품에 안고 살아온, '탑티어급 인간 이무기' 모슬희와 시너지를 발휘하며 시선을 붙든다. '눈물의 여왕' 속 퀴즈그룹 사람들에 대해서는 '재벌가가 저렇게 허술한 게 말이 되나' 하는 비판이 꽤 있지만, 모슬희가 30년 세월 동안 설계한 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 수긍에는 이미숙의 탁월한 연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사진='눈물의 여왕' 방송 영상 캡처

생각해보면 이미숙은 언제나 분량과 상관없이 주인공 찜쪄먹는 존재감과 연기로 시청자들을 홀려 왔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에서 조원(배용준)과 숙부인 정씨(전도연)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만큼 눈에 밟히는 건 한양을 떠나는 조씨 부인(이미숙)의 먹먹한 표정이었다. 목표를 향해 긴 세월 동안 속내를 감추고 전진하는 모슬희와도 어느 정도 닮아 있는 드라마 '자명고'(2009)의 왕자실이나 '신델레라 언니'(2010)의 송강숙도 생각난다. '자명고'의 왕자실은 왕비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스스로 둘째 부인이 되길 자처하는 여장부로, 자신의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혈육마저 해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미모와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도 더 큰 것을 갖기 위해 끝없이 악행을 벌이면서도 그 악행을 수긍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미숙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지금 표현으로 치면 모두가 '연기 차력쇼'를 선보였던 '신데렐라 언니'의 송강숙은 고상하고 우아하고 조신한 느낌의 사모님 연기와 생존이 우선인 우악스러운 억척녀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신들린 연기를 보였다. 특히 후반부에 뜯어먹을 게 있는 호구로만 여겼던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깊고 큰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던가를 깨달으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은 압권. 송강숙의 남편 구대성으로 김갑수가 출연했기에, 지금 '눈물의 여왕'을 보는 '신데렐라 언니' 팬들은 상반된 느낌의 재미도 느낄 법하다. 김갑수와 또 한 번 내연의 인연을 맺었던 '아이언맨'(2014)의 윤 여사도 기억날 것이다. 주장원(김갑수)의 장남을 낳고도 본심을 숨기고 있는 집사 윤 여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모님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날리며 압승을 거두는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눈물의 여왕' 5화에서 자신에게 계속 깐족거리는 홍범자(김정난)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장면에서 윤 여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사진='눈물의 여왕' 방송 영상 캡처

무엇보다 이미숙의 강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 필요하면 극에 섹슈얼한 텐션을 일으키다는 점이다. 1960년생인 이미숙은 이미 환갑과 진갑이 지난 나이지만 전혀 그 연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M&A 전문가 윤은성(박성훈)과 모자 관계임이 암시됐고 또 7화에서 관계가 밝혀졌지만, 그 이전 짧은 찰나에 시선을 교환하며 스쳐가는 두 사람의 투 샷을 보면 두 사람이 내연의 관계라 밝혀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이미숙의 힘이다. '돈꽃'(2017)에서 정말란으로 분한 이미숙이 연하의 장혁과 애증의 서사를 완벽하게 표현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할머니로 나온다 한들 이미숙은 이미숙이다. 영화 '여배우들'(2009)에서 '죽을 때까지 여자이고 싶다'고 남겼던 이미숙의 말은 지금도 진행 중인 셈이다. '눈물의 여왕'에서 이미숙이 선보이는 화려하고 우아하면서도 패셔너블한 룩도 화제다. 극 중 '찐 재벌가 사모님'으로 나오는 나영희와 김정난은 물론이요 주인공 김지원 못지않게 시선을 붙드는데, 특히 60대 나이에 부쉐론의 헤어 밴드를 그렇게 찰떡 같이 소화할 사람이 이미숙 말고 또 있을까 싶다. 

'눈물의 여왕'은 8화에서 모슬희의 30년 세월 동안 설계한 큰 꿈이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남은 것은 모슬희-윤은성 모자에 대항해 백현우-홍해인 부부가 힘을 합쳐 퀸즈를 되찾는 이야기일 터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모슬희가 거둔 승리의 끝은 좋지 않을 것이 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숙의 모슬희가 얼만큼 처절하게 주인공들의 진을 뺄지 기대하게 된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극에서 사라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40년 넘는 시간 동안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존재감의 탑을 쌓아온 이미숙이기에 가능한 궁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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