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목소리 내는 남자'란 편견 깨고...'카운터테너' 자루스키·장정권이 온다[인터뷰]

김소연 2024. 4.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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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음악·오페라로 만나는 카운터테너
자루스키, 獨 프라이부르크와 바흐 '마태 수난곡'
장정권, 국내 초연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주연
카운터테너 장정권과 필리프 자루스키. 박시몬 기자·ⓒSimon Fowler

영국 클래식 음악의 심장인 런던 위그모어홀이 오는 9월부터 2025년 7월까지의 새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첫 무대는 폴란드 출신 카운터테너 야쿱 요제프 오를린스키가 연다. 카운터테너가 '남성이 여성 음역대를 노래하는 특이한 존재'로 치부되는 시대가 끝나가고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와 함께 독립 성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봄 한국에서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46)가 참여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3일 롯데콘서트홀·5일 통영국제음악당·7일 LG아트센터 서울)과 카운터테너가 주인공인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의 영어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비슷한 시기에 무대에 오른다.


"3시간의 '수난곡' 감상, 혼란의 시대에 필요"

필리프 자루스키가 '마태 수난곡'에서 부를 여러 아리아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다. 그는 "이 아리아의 연습을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Valentin_Behringer

"한때는 카운터테너의 '독특함'이 관심거리였지만 지금은 탄탄한 목소리를 가진 전문 카운터테너가 많아졌죠. 중요한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로 어떤 표현을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자루스키는 '마태 수난곡' 공연을 앞두고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카운터테너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성경 마태복음을 소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만든 작품. 바로크 음악의 위대한 유산이자 교회음악의 정수로 꼽히지만 연주에 3시간이나 걸리는 대작이어서 실연 감상 기회는 많지 않다. 원전 연주(바로크 시대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로 명성 높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자루스키 등이 참여하는 이번 공연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고음과 중음, 표현력을 두루 갖춘 자루스키는 고음악뿐 아니라 낭만주의 음악과 현대음악, 재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바흐는 목소리를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 악기처럼 다룬다"며 "감정을 전달하되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조금 더 단순하고 냉정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이번 무대의 각오를 밝혔다. 이어 "3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혼란스러운 세상과 단절해 보는 것은 영성과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기 힘든 요즘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루스키는 10세 때 바이올린으로 클래식 음악에 입문해 성악으로 전향했고, 지금은 지휘도 한다.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소 좌절했지만 노래를 시작하고는 곧바로 더 많은 자유와 기쁨을 느꼈어요. 지휘자로 무대에 설 때도 무척 행복해요. 저는 가수가 아닌 뮤지션이니까요."


'카운터테너' 주인공 오페라 국내 초연

카운터테너 장정권이 예술의전당에서 노래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후배 성악가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카운터테너는 타고난 소리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후천적 노력이 중요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시몬 기자

"한국은 카운터테너의 무대가 종교음악으로 제한적인데, 오페라에서도 카운터테너를 만날 수 있음을 알려드리게 돼 기뻐요."

카운터테너 장정권(40)은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다 2021년 영구 귀국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문이 닫히면서다. 한국은 카운터테너가 설 무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유럽의 인종차별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귀국 후 오라토리오 등 종교음악 공연에 꾸준히 참여하던 그에게 선물 같은 기회가 왔다. 국립오페라단의 '한여름 밤의 꿈' 한국 초연 일정이 잡힌 것.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장정권은 "기회가 될 때마다 오페라에 출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기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한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아내 티타니아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오베론의 사랑꽃 심부름을 하는 요정 퍽(가수 겸 배우 김동완)의 실수로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장정권은 영국 카운터테너 제임스 랭과 오베론을 번갈아 연기한다. 장정권은 "'한여름 밤의 꿈'을 작곡한 벤저민 브리튼은 카운터테너를 잘 이해하는 작곡가"라고 했다. "요정의 왕이기 때문에 테너나 바리톤이 아닌 카운터테너를 써서 신비로운 매력을 더하려 한 듯해요. 천상계와 인간계를 오가는 다양한 세계관 표현을 위해서도 풍부한 음역대를 표현해 내는 카운터테너의 역할이 중요하죠."

주현미, 임주리 등의 트로트곡을 불러 외할머니를 기쁘게 하곤 했던 '소년' 장정권은 교회 보이 소프라노를 거쳐 자연스럽게 카운터테너로 진로를 정했다. 그는 "연기자와 댄서의 꿈을 꿨을 정도로 끼가 많았다"며 "노래와 연기, 춤을 함께 선보일 수 있는 오페라를 통해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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