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팀 대기에도 느긋…MZ 사이에서 퍼지는 '0차 문화' 뭐길래

김지성 기자 2024. 4. 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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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등록하실 분들 왼쪽으로 서 주세요. 알림 받으신 분들은 오른쪽으로 한 줄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의 한 베이글 카페 앞에 '대기를 위한 대기줄'이 늘어섰다.

개점한 지 1시간이 채 안 된 시각이지만 대기자는 매장 안에서 취식하려는 66팀과 포장해가려는 156팀으로 총 222팀에 달했다.

인기 카페나 식당에 '대기'를 등록한 뒤 기다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식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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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한 베이글 카페. 대기 등록을 위한 대기줄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매장 문 오른쪽으로 알림을 받고 온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대기 등록하실 분들 왼쪽으로 서 주세요. 알림 받으신 분들은 오른쪽으로 한 줄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의 한 베이글 카페 앞에 '대기를 위한 대기줄'이 늘어섰다. 입장 대기를 등록하려는 사람들이다. 매장 앞 태블릿PC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모바일 알림이 온다.

개점한 지 1시간이 채 안 된 시각이지만 대기자는 매장 안에서 취식하려는 66팀과 포장해가려는 156팀으로 총 222팀에 달했다. 오래 기다려야 할 게 뻔한데도 사람들은 익숙한 듯 태블릿PC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주변에 있는 팝업 스토어나 또 다른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인기 카페나 식당에 '대기'를 등록한 뒤 기다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식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1차 일정 전이라는 의미에서 '0차 문화', '0차 공간'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중시하는 세대 특성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송모씨(30) 일행은 베이글 카페에 대기 등록을 하고 기다리는 3시간 동안 'n차'를 했다. 송씨는 "웨이팅 걸고 즉석떡볶이 먹고 쇼핑하다가 아이스크림도 먹고 카페에서 기다리니 시간이 됐다"며 "원래 웨이팅이 있으면 딴 데 갔는데 요즘엔 다 이래서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송모씨(30)는 유명 카페에 대기를 등록해 놓고 식사를 하고 디저트까지 먹었다. /사진=독자 제공


개장 전부터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치는 '오픈런'도 옛말이 됐다. 최근에는 적당한 시간에 와서 대기 시간을 나름대로 채워가는 게 대세다. 젊은 세대는 기다림을 지겹게 느끼기보다 일정 순서를 바꾸는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날 잠실에서 만난 송파구민 황모씨(33)는 "매장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대기를 걸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며 "기다리는 동안 카페 옆 팝업 스토어에 갔다가 석촌호수에 벚꽃 구경을 간다"고 말했다.

주말 인기 식당이나 카페에서 대기는 불가피하다. 이왕 기다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이들은 미리 웨이팅 관련 정보를 찾기도 한다. 포털사이트 블로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맛집 상호와 함께 '웨이팅 팁', '주변 가볼 만한 곳' 등을 공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모씨(29)는 지난 주말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퓨전 한식당에 가기 전 사전 조사를 했다. 김씨는 "주말 데이트 장소를 정할 때면 사실상 가기 전부터가 시작"이라며 "가려는 식당이 진짜 맛집인지, 웨이팅하면서 주변에 갈만한 곳이 있는지 등을 검색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최모씨(33)도 "직장인에게 소중한 주말은 1분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며 "이왕이면 맛집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데 기다리는 시간도 그냥 날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일로 채우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앞에 있는 행사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0차 문화'가 현재를 중시하는 세대 특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봤다. 기다리는 시간도 현재의 일부이니 즐기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해 현재의 만족도를 끌어올린다는 설명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오히려 지금 즐거운 것에 집중하려는 특성이 있다"며 "힘들다고 무력해지는 게 아니라 합리적 선택을 위해 고민하며 즐기는,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또 "예전에는 맛집에 대한 입소문이나 평판에 단순히 동조하는 심리를 보였다면 이제는 수많은 정보 중에 필요한 정보를 찾는 등 비용과 수고를 들여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추세"라며 "기성세대 문화보다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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