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보수 견제’ 보상위 꾸린 기업 10곳 중 4곳 불과

김경욱 기자 2024. 4.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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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중 상장사 전수분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사진)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각사 제공

국내 상장사 10곳 중 6곳은 이사회 내 보상(보수)위원회를 운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이사 등 사내이사가 보상위에 참여하는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영진 보수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상위 설치뿐만 아니라, 내실화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회 내 보상위, 10곳 중 절반 미만 설치

1일 한겨레가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을 전수조사해보니, 전체 287개 기업 중 보상위를 운영하는 곳은 125개(43.6%)다. 구체적으로 삼성·롯데·신세계·씨제이(CJ)그룹은 분석 대상 기업에 포함된 모든 계열사에 보상위를 두고 있다. 범현대가와 에스케이(SK)·한화·지에스(GS)그룹은 계열사에 따라 보상위 설치 여부가 달랐다.

엘지(LG)·효성·코오롱그룹은 전 계열사에 보상위를 두지 않고 있다. 엘지 쪽은 “중장기적으로 보상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이사회에서 충실한 검토를 통해 각 회사 재무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보수 평가와 집행 체계를 갖추는 등 (임원) 보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형식보다는 (보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이사회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해달라”고 덧붙였다.

보상위는 경영진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고 보수 한도와 보상체계안을 심의·의결하는 이사회 내 소위원회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감사위원회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달리, 보상위 설치는 기업 재량에 달려 있다. 다만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금융회사는 보상위를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이에 따라 분석 대상 기업 가운데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44개)를 뺀 비금융 상장사(243개)만 놓고 보면, 보상위를 꾸린 기업 비율은 33.3%(81개)로 더 낮아진다. 총수 등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고액 연봉 논란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보상위를 꾸리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비금융 상장사 3곳 중 2곳은 무풍지대인 셈이다.

CJ 보상위에 대표이사가 참여…객관성 의문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보상위 구성이다. 보상위가 설치된 125개 기업 가운데 50개(40%)는 사내이사가 보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 씨제이 계열사, 신세계, 삼성바이오로직스, 오리온 등의 경우다. 심지어 이들 기업 중 12개(24%)는 대표이사가 보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대표이사가 자신의 성과를 평가하고 스스로 보수 수준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씨제이 계열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기준, 씨제이이엔엠(ENM)·대한통운·제일제당·프레시웨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씨제이 쪽은 “대표이사가 인사나 보상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고, 책임 있는 의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대표이사가 자신의 보수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위원회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박나온 한국이에스지(ESG)기준원 지배구조(G) 파트장은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사내이사가 보상위에 참여하면 자신들의 보수를 ‘셀프’로 책정하게 되는데, 이는 보상위 설치 취지에도 안 맞고, 위원회의 투명성과 독립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반면 대다수 금융회사와 롯데 계열사(롯데케미칼·롯데칠성음료·롯데웰푸드·롯데쇼핑·롯데렌탈·롯데정밀화학·롯데하이마트), 삼성 일부 계열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에스디아이·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는 보상위에 사내이사가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롯데그룹 쪽은 “사외이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보상위원회에서 임원의 보수를 결정함으로써 경영 투명성과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관과 함께 내실 따라야”…법·제도 손질 필요

위원회 외형을 갖추는 것에 더해 보상위가 제구실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상위를 설치하고 구성원을 사외이사로 채우더라도 제구실을 못하면 ‘들러리’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보수를 둘러싼 ‘고액 연봉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롯데는 계열사에 보상위를 두고 위원도 모두 사외이사로 채웠지만, 지난해 롯데지주에서 64억4900만원의 보수를 받은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38억3천만원), 롯데칠성음료(30억9300만원), 롯데웰푸드(24억4300만원), 롯데쇼핑(19억원)에서도 모두 112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이승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상위 설치나 위원 구성 등이 기업 자율에 맡겨져 있다 보니, 기업마다 편차가 심하다”며 “보상위가 내실을 갖출 수 있도록 구성뿐만 아니라, 심의 권한과 범위 등 위원회 관련 규정을 법으로 만들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원 보수 관련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현재 임원 보수 공시 대상은 총보수 5억원 이상 임직원이면서 회사 내 보수 순위 5위 이내인 경우로 한정된다. 나아가 구체적인 보수 산출 기준과 방법도 공시를 통해 알기 어렵다. 이승희 연구위원은 “개별 보수 산정 내역과 기준을 공시하도록 하면 시장에서 그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보상위도 이를 의식해 책임감을 갖고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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