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기투자 안한다고 개미 비웃기 전에

권오은 기자 2024. 4.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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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한 임원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며 답답해했다.

그가 느끼기에 주총장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배당 규모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가 부양책만 요구할 뿐, 회사의 장기 성장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 소액주주는 2년째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주식 장기 보유 시 세제 혜택이나, 장기 보유 주주의 배당 세율 완화 등 이미 제시된 방안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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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은 기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한 임원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며 답답해했다. 그가 느끼기에 주총장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배당 규모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가 부양책만 요구할 뿐, 회사의 장기 성장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 소액주주의 불만을 듣다가 오랫동안 투자했느냐며 되물었다. 그 소액주주는 2년째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근 2년간, 그 임원이 속해 있는 회사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상장사 임원의 얘기를 들으면서 “주가가 반토막이 났는데, 주주 입장에서 회사의 긴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싶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장투하는 사례는 거의 하나뿐이다. 주식 매수와 동시에 주가가 추락해 ‘강제로’ 장기 투자하는 경우다.

최근 개인 투자자들이 탈출하는 삼성전자가 대표적 사례다. 개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최근 한달 사이 4조70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반도체 업황이 좋아 매주 올해 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500억원씩 늘고 있고 증권사들은 목표 주가를 10만원 이상으로 올렸지만, ‘팔자’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2021년 1월 9만6800원을 최고점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3년 넘게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9층(평균 매수단가 9만원)에서 구조대를 기다린다’는 댓글이 농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었다면 장기 보유에 따른 세제 혜택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은 주식을 사고 1년 이상 지난 뒤 팔 때 소득 수준에 따라 최소 0%에서 최대 20%의 세율을 매긴다. 일반 소득세율이 최대 40%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 보유만으로도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국에선 그냥 물려있을 뿐이다.

부화뇌동하는 개인 투자자에게 ‘장기 투자’하라는 조언이 늘 따라붙지만, 수익률만 놓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장기 투자를 했을 때 가장 수익률이 좋은 종목은 에코프로다. 이어 금양, 한미반도체, 코스모신소재 등의 수익률이 좋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 과열을 이유로 비판받았던 이력이 있는 종목들이다.

개인이 국내 시장에서 장기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이 밖에도 많다. 공모주는 상장 당일 주가가 가장 높기 일쑤다. 상장 후 1년 이상 지나면 절반 이상의 확률로 주가가 공모가를 밑돈다. 신사업 부문 등을 분할해 다시 상장하거나, 인수 과정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반면에 기업이 소수 주주 입장을 고려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치고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하다.

단기 투자가 횡행하면 주가 급등락이 커지고, 시장을 교란하는 일도 잦다. 개인 투자자의 승률도 낮다. 모두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고자 한다면 꾸짖을 일이 아니라, 정책적 뒷받침이 따라줘야 한다. 주식 장기 보유 시 세제 혜택이나, 장기 보유 주주의 배당 세율 완화 등 이미 제시된 방안이 한둘이 아니다. 더 많은 기업이 사업 투자처럼 중장기 주주환원 계획을 공유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밀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세제 개혁 없이는 구호에 그칠 것이란 평가가 다수다. 총선 결과에 따라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면서 개인은 금융주나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을 팔고 나섰다. 제대로 된 정책 지원 없이는 개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어질 것이란 위기감을 정부와 기업 모두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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