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돈 룩 업’ 강요하는 총선

이노성 기자 2024. 4.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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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 아니면 네 편 갈라치기, 갈등 부추겨 미래 어둡게 해
선심성 공약에 혐오만 판 쳐…유권자가 “고개 들라” 외치자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극단적 정치문화를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는데 대통령은 별 관심이 없다. 중간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 현실을 외면한다. 심지어 “위를 쳐다 보지 말라”고 외친다. 국민은 땅만 보는 쪽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무리로 분열한다. 기업은 인류의 안전보다 혜성에 매장된 희귀 광물에 더 관심 있다. 언론은 클릭 장사에 바쁘다. 어느 순간 혜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접근한다. 결과는 파멸이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한 장면. 넷플릭스


4·10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지형도 ‘돈 룩 업’과 다르지 않다. 혐오가 휩쓸면서 인물·정책 대결은 설 자리를 잃었다. 남은 건 ‘내 편만 옳다’는 배제의 광풍이다. 여당이 야당 대표를 겨냥해 “쓰레기 같은 말”을 한다고 공격하자 야당이 “당신 입이 쓰레기통인 걸 모르느냐”고 역공하는 게 여의도 문법 수준이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공부 좀 하라”거나 “거짓말 하지 말라”고 상대를 윽박지르는 구태가 반복된다.

정치 퇴행의 피해는 유권자 몫이다. 진영 논리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에 사회 갈등은 심화한다. “고개 들라”와 “들지 말라”는 강요에 눈을 어디 둬야 할지 혼란스럽다. 조국혁신당 신드롬도 결국 원내 1·2정당에 대한 실망의 표출 아닌가. ‘심판’ 프레임의 가장 큰 부작용은 성찰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상대를 심판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과거 잘못을 가리는 ‘회귀적 투표’ 성격이 짙어지는 순간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전망적 투표’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 결과는 4년마다 심판 프레임의 무한 반복이다. 혜성만큼 무서운 반지성 사회의 고착화다.

심판론에 기댄 후보들은 시대정신을 고민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편은 나를 찍는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고개 들어 멀리 내다보는 수고로움 대신 당장 표 되는 ‘땅’만 쳐다본다. 개발 공약이 범람하는 이유다. 지하철·철도 몇 개 더 놓겠다고 지르거나 ‘민원 다 해결하겠다’고 자신한다. 국가 재정은 안중에 없다. ‘00역 엘리베이터 설치’나 ‘축제 다양화’ 같은 골목 공약도 있다. ‘의원님’이 개발부터 마을버스 증차까지 다 해결하면 기초단체장은 왜 존재할까.

국회의원이 할 일 1호는 입법이다. 헌법과 법률을 제·개정해 나라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예산안 심의와 결산 심사가 두 번째다. 세금이 잘 쓰이는지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의미다. 국정감사·조사와 외교 활동도 중요한 역할이다. 이걸 하라고 국회의원 300명에게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와 면책특권을 부여한다. 부산·서울시장도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주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무슨 법을 만들어(또는 개정해) 부산과 국가를 바꾸겠다는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 후보라면 ‘입법 로드맵’을 먼저 선보이는 게 순서 아닌가. 한반도 평화와 기후위기 시대 해법쯤은 내놔야 할텐데 온통 토건 공약뿐이다.

과거 큰 정치인들은 혐오에 기댄 득표 전략을 자제했다. 그 후과가 치유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희망’을 붙들고 큰 담론과 씨름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54년 한 잡지 기고문에서 실업·양로·학업·흉작보험을 조속히 실현해 민생 안정을 확립하자고 제안(‘김대중의 말’·태학사)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무렵 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4대 보험이 DJ 집권기에 거의 완성됐다. 1981년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던 사형수 DJ의 주장은 전자정부 출범으로 결실을 맺었다. 정치인의 ‘가치’가 나라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구상도 국회의원 시절 형성됐다. 군부독재 상징인 하나회 척결부터 전광석화였다. 취임식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 옷을 벗겼다. 전두환·노태우 후계그룹의 선두로 알려진 인사 둘을 한 방에 날린 것이다. 수도방위사령관을 포함해 장교 1000여 명을 차례로 정리했다. YS가 군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것은 초선인 1954년부터 대통령 후보가 된 1987년까지 군(軍)의 탈정치화를 끊임없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는 하나회 숙청보다 반발이 더 거셌다. 사회 지도층을 직접 겨냥한 게 원인이다. YS는 물러서지 않았다. 군사정부 30년간 독버섯처럼 큰 지하경제를 청산하려면 ‘돈의 과거’를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총선 후보들은 YS나 DJ처럼 국가 백년대계를 갖고 있을까. 공약만 봐선 ‘글쎄요’에 가깝다. 프랑스 출신 크리스티앙 케슬러 일본 무사시대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진 원인 중 하나로 ‘상상력 없는 정치인’을 꼽았다. 4류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젠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외쳐야 할 때다. “제발 그만 싸우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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