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격한 흥분’ 다음은 도파민 가뭄… 마약은 행복의 빈털터리로 가는 지름길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2024. 4.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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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댐 무너져 홍수 난 것같이
정상적 방법으로는 나올 수 없는
도파민을 단번에 쏟아낸다
놀란 우리 몸은 생산량을 줄여
일러스트=김성규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손은 이미 휴대폰으로 소셜미디어나 포털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자극적인 걸 넘어, 도파민이 솟구쳐 짜릿한 그 무엇을 찾아 헤맨다. 올해 2월에는 이강인 탁구, 3월에는 한소희-류준열 환승 연애와 결별이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 전청조 사기만 한 게 없다. 더 강렬한 게 없을까? 있다. 마약이다.

“선생님, 벌레 좀 어떻게 해주세요. 가려워 미치겠어요.” 50대 김병철(가명)씨는 수갑을 찬 것으로 모자라 포승줄에 묶인 손이 닿는 모든 곳을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댔다. 메스암페타민, 일명 필로폰 중독자에게서 흔히 나타나기에 ‘메스 버그(meth bug)’라고 불리는 증상이었다. 환각은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온몸이 불에 타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붉은 두 눈에서 눈물을, 코에서는 콧물을,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렸고, 옷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경찰과 의사인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벌레를 어떻게 좀 해달라고, 제발 자기를 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심지어 주사를 놓으려는 간호사가 자신을 비난하고 욕을 한다며 발버둥 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마약 투약자들끼리 ‘쭈라’라고 부르는, 환각과 피해망상이었다. 마약을 하다 경찰에게 잡혀 조사를 받던 그는 필로폰을 못 하자 금단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꾀병을 부린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경찰도 김씨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경찰서 근처 병원 응급실로 그를 데리고 왔다.

나는 오늘 출근해 아픈 환자를 보며 돈을 버는 동시에, 퇴근하면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채우는 데 돈을 썼다. 이렇듯 돈은 사람이 사는 데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돈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하지만 돈과 얽혀 사람이 싸우면, 우리는 돈이 문제라고 한다. 도파민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는 지금도 우리 몸에서는 도파민이 나온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은 첫째로 우리 몸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손상받아 도파민이 부족하면, 몸이 뻣뻣해지고 손이 덜덜 떨리는 파킨슨병이 생긴다. 둘째로 도파민은 감정에 작용하여,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실제로 일부 우울증 환자에게 도파민 농도를 올려주는 약을 쓰기도 한다. 셋째로 도파민은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고자 하는 동기와 보상에 작용한다. 우리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 도파민의 농도가 높아지면, 우리는 도파민이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이 중독의 대명사가 된 것이 바로 도파민이 감정과 보상에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성규

실제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초콜릿은 도파민 양을 55%, 섹스는 100%, 담배는 150%, 코카인은 225%, 메스암페타민은 1000% 증가시킨다. 마약은 댐이 무너져 홍수가 난 것같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나올 수 없는 도파민을 단번에 쏟아낸다. 일명 ‘도파민 홍수’다. 이로써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은 영원히 사라진다. 처음에는 잠시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위해 저축해 둔 돈을 하루 만에 다 쓴 것과 같다. 넘쳐나던 도파민이 어느 순간 귀해진다. 다시 한번 마약을 하지만, 그동안 저장해 둔 도파민을 모두 썼기에, 도파민이 처음처럼 콸콸 흘러나오지 않는다.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효과도 줄어든다. 어쩔 수 없이 마약 투여량을 늘린다. 내성이다.

마약으로 인해 저장된 도파민이 줄었지만, 한 번에 흘러나온 어마어마한 도파민의 양에 놀란 우리 몸은 도파민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도파민 생산량을 줄인다. 저장된 도파민을 다 쓴 데다가, 생산되는 도파민마저 준다. 도파민 가뭄이다. 정상적인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사는 데 돈이 필요하듯,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일정량의 도파민이 항상 필요하다는 데 있다. 보통 사람도 가난해지면 불행한데, 엄청난 부자가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면, 그 좌절과 고통은 더욱 크다. 돈, 아니 도파민이 없는 삶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다. 못하면 아픈 금단증상이다. 약이 강하면 강할수록, 마약을 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금단은 심하다. 그 결과 처음 마약을 하는 이유(중복 포함)는 호기심(66.7%), 다른 사람의 권유(60.6%), 즐기기 위해서(20.6%) 등이지만, 계속해서 마약을 하게 되는 이유는 욕구·갈망(68.1%), 우울감(33.1%), 금단(30%)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고, 즐거움을 위해 하다가, 결국 아프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마약에 중독된 것이다.

도파민 홍수에 이어지는 도파민 가뭄으로 인한 중독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마약 외에도 도박, 게임, 술, 스마트폰 등 모두 적용된다. 해도 해도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고, 봐도 봐도 만족하지 못해 더 강한 걸 찾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른 대신 허기만 진다면, 당신은 중독이다. 간절히 하기를 원하고(갈망), 더 강한 것을 더 오래 하고(내성), 잠시도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진다(금단). 일단 내성과 금단이 생기면 아무리 많이, 더 강한 걸 해도 잠시 좋을 수는 있으나 결국 심해진다. 다음에는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자신이 중독인지 아닌지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은 잠시 손에서 내려놓는 것이다. 휴대폰, 음식, 그 외에도 마찬가지다. 조마조마하고 초조하면 금단증상이다. 당신은 이미 중독이다. 당장 멈춰야 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디지털 디톡스’ 와 함께 몸 쓰는 습관을!

마블링이 박혀 있는 소고기는 고소하다. 혀에서 녹아내린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곧 무덤덤해지다 느끼해진다. 삶이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건, 자극이 없어서라기보다 자극이 많아서일 때가 있다. 몸에 같은 자극이 계속 반복되면 반응이 줄어든다. 이를 생물학적으로 ‘순응’이라고 하고, 경제학에서는 좀 더 고상하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잃어버린 활기를 다시 찾는 효과적인 좋은 방법은 잠시 끊는 것이다. 최고의 식사는 산해진미가 아니라, 배고플 때 먹는 한 끼다. 모바일 중독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유행이다. ‘디지털 거리 두기’다. 하지만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고 더 하고 싶다.

“나쁜 여자 친구를 잊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 줄 아세요?” 내가 근무하는 의정부 지역 특성상 환자 가운데 유난히 젊은 군인이 많다. 이 질문에 많은 이가 술을 마신다고 한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나쁜 여자 친구를 잊는 가장 쉬운 방법은 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겁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담배가 더 생각납니다. 담배를 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다른 더 좋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군인이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간다. 환자가 나가자, 스마트폰 중독인 나는 스마트폰 대신 악력기를 손에 꽉 움켜쥔다.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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