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날 살린 이해랑賞 기념작… “은인과 재회”

이태훈 기자 2024. 4.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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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이해랑연극상 배우 박지일
어린 시절의 무대 공포증은 지금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배우 박지일은 “무대에서 완벽한 가면을 쓰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이 장애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은 늘 필사적”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부산에서 전업 배우로 가족을 부양하는 건 불가능했다. 넉넉지 않은 집안의 2남 1녀 중 맏아들. 이제 연극과 인연은 끝이라 여겼던 1992년, 서울에 취직이 돼 짐을 싸던 서른두 살 박지일(64)은 극단 ‘산울림’의 연출가 채윤일의 전화를 받았다. “지일씨, 서울 올 일 없어요?”

“단역이나 주시려는 거겠거니 했죠. ‘전 이제 연극 접을 겁니다’ 하고 인사 드리러 극단에 들렀어요. 근데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주인공 대사를 10여 분 시켜보시더니 덜컥 ‘같이합시다’ 하셨어요.” 박지일은 “겨우 정신 차리나 싶던 장남이 또 연극이라니, 꼿꼿한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지만 난 포기할 수 없더라”며 웃었다.

1993년 1월 개막한 ‘죄와 벌’은 극단 산울림의 직전 해 제2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기념 공연이었다. 서울 배우들 샅샅이 뒤져 시켜봐도 마음에 안 들었던 채윤일 연출이 1년 전 부산에서 본 박지일의 ‘맥베스’를 기억해 그를 부른 것이었다. 연극은 대성공. 이 작품으로 박지일은 그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TV로 생중계되는 아들 모습을 본 아버지도 마침내 인정해줬다. “막는다꼬 될 일도 아이고, 우짜겠노. 이제 그게 니 일이니 열심히 해라.” 박지일은 “제2의 무대 인생 길을 열어 준 ‘죄와 벌’에서 31년이 지나 제가 그 상을 받게 되다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인연”이라고 했다. “후배들이 받는 걸 보며 이제 내 차례는 없나 싶어서 근 몇 년은 아예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카리스마 있는 배우는 많지만 부드러움도 동시에 갖춘 배우는 찾기 어렵다. “뜨거운 무대 위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것”을 연기 원칙으로 꼽는 그를 평론가 고(故) 구히서 선생은 “얼음 위의 불꽃 같은 배우”(2002년 히서연극상 선정 이유)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전교 조회 때 전교생 앞에 섰다가 머리 속이 하얘지고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한 뒤, 박지일은 “쭉 일종의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몇 명 앞에만 서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요. 근데 그 긴장감이 두려우면서도 흥분됐죠.” 대학 연극반에서 ‘에쿠우스’의 소년 알런을 연기했다. “소년과 말이 한 몸이 되는 어느 순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도록 고양되더군요. 블랙홀 같았어요. 그 안에 사로잡혀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를 붙잡아준 작품 ‘죄와 벌’로 서울 연극판에서도 찾는 배우가 됐지만, ‘나약한 지식인’으로 고정된 자신의 이미지를 깨뜨려야 했다. 연극 ‘슬픔의 노래’(1995)에서 5·18 광주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배우 역할로, 그는 자신이 지닌 무대 위 폭발적 에너지를 다시 한번 각인했다. “클라이맥스에서 10여 분간 자아 분열의 모노드라마처럼 휘몰아칠 땐 객석을 내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게 느껴졌어요.” 한태숙 연출의 ‘서안화차’(2002)에서 다시 한번 그의 무대 위 광기가 폭발했다. 동아연극상, 히서연극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이 연극은 7차례 재공연됐다.

뜨겁고 무거운 역할로 각광받았지만, 그는 가볍고 경쾌한 역할에도 애착이 크다. 연극 ‘바다와 양산’이나 ‘대학살의 신’, 스스로 “연기 인생에 선물과 같은 작품”으로 꼽는 뮤지컬 ‘맘마미아’ 등이 그렇다. 2021년 총 9시간짜리 연극으로 화제를 모았던 국립극단의 ‘앤젤스 인 아메리카’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 연극배우가 된 아들 박용우(35)와 함께 무대에 섰다. “고3 때 연극을 하고 싶다길래 ‘올 게 왔구나’ 싶었죠. 네댓 살 때부터 소극장 깜깜한 조명실에서 아빠 연극을 보며 까만 눈동자만 반짝반짝 빛내던 아들이었어요. 기적 같았죠.”

38년간 연극을 60여 편 했다. 그에게 연극이란, 배우란 뭘까. “연극 ‘슬픔의 노래’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배우는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걸 들리게 합니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고 환상으로 현실을 조각합니다.’ 허구의 세계에 격정과 진실의 순간을 창조해 내는 신비로운 경험은 배우에게만 허락된 것 아닐까요.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이 저를 계속 이 길 위에 머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박지일은 오는 6월 연극 ‘햄릿’과 ‘크리스천스’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배우 박지일

카리스마와 부드러움, 거친 폭발력과 섬세한 감정선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드물고 귀한 배우. 부산상고를 나와 당대 ‘꿈의 직장’이던 한전을 그만두고 동아대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 38년간 무대에 섰다. 백상예술대상, 히서연극상, 동아연극상 등을 받았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부터 ‘파묘’(2024)까지 영화 20여 편, 목은 이색 역할을 맡았던 드라마 ‘정도전’(2014) 등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드라마 40여 편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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