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25] ‘최후의 만찬’이 필요한 선거
마술사 친구의 작업실에서 문득, 벽에 걸려 있는 달마도를 쳐다보았다. 행운을 부른다는 미신에 너도 나도 집과 사무실에 달마도를 걸어두는 게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이념이나 과학보다 강한 것이 ‘유행’이며, 실체란 그게 뭐든 ‘유행한다는 그 현상 자체’라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쥐라도 꿩을 잡으면 매. 당장 속이면 영원히 장땡. 이렇듯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에 실망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마술사의 작업실을 나와 다시 길 위에 서니, 선거 유세 차가 미신에도 미달하는 개소리들을 이념의 가면을 쓴 채 확성기로 과학처럼 떠들며 지나간다. 누구나 한 번은 진짜 예언자가 될 수 있다. 22대 국회는 ‘최악의 악’일 거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왕 예언자가 된 김에 상념 하나가 떠올랐다. 이 시대에 달마도 대신 한국인의 집과 사무실에 걸려 있으면 좋을 그림은 뭘까?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아닐까 한다. 가롯유다의 구원사역설 같은 외경(外經)적인 해석이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같은 신성모독형의 소설적 가설이 아니라, 정통 신약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그린 ‘최후의 만찬’ 말이다.
열두 제자의 발을 손수 씻겨준 예수가 “너희 가운데 한 명이 나를 팔리라”고 말하자 그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길 계획인 가롯유다가 문제가 아니다. 예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하는 베드로는 예수의 말 그대로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게 되고 나머지 열 명도 대동소이하게 된다. 그들은 예수가 울부짖으며 기도할 적에 쿨쿨 자고, 자기들 중 누가 더 큰 자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저 그림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는 바는, ‘인간이란 다 그 지경인 존재라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다빈치 이전에도 다른 화가들이 자주 그렸는데, 예외 없이 가롯유다만이 식탁 건너편에 따로 있다. 그러나 다빈치는 가롯유다까지 다른 제자들과 한 무리 속으로 그려 넣었다. 배반에 초점을 맞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조형성을 고려했다는 게 미술사(美術史)의 중평이건만, 나는 다빈치가 ‘누구나 언제든 예수를 팔아넘기거나 부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인하려 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예수는 가짜 선지자들이 설칠 거라고 걱정했다.
‘위선형 범죄 정치꾼’들이 이 시대의 지배종(支配種)이고, 그 토대는 그 어떤 ‘내로남불’도 내 편이면 괜찮다는 유권자 대중이다. 내 편이라는 게 착각이다. 노예는 쇠사슬에 묶인 자가 아니다. 거짓말쟁이를 못 알아보는 자다. 한국 정치는 마술로도 미신으로도 치유 못 한다. 우리가 우리의 가롯유다가 돼선 안 된다는 자각만이 희망이다. 22대 국회는 내로남불 소시오패스들이 국민들을 형벌하는 아수라가 될 것이다. 나는 실패한 예언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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