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병영 훈련 때 찍은 사진… 눈물 콧물 흘리며 먼지 나게 굴렀다

채민기 기자 2024. 4. 2.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의 현대사 보물] [46] 독자 보물로 본 1980년대

독자들의 보물에 새겨진 대한민국 현대사를 연대별로 돌아본다. 1980년대는 서울 올림픽과 민주화라는 역사적 사건이 이어진 이면에 영화와 애니메이션, 음악 등 문화가 발달하고 소득 향상으로 낚시를 비롯한 레저 산업이 성장한 시대였다. 학원(學園)을 병영화한다고 비판받았던 대학생 군사 교육이 이어지다 1989년 막을 내렸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 기지를 마련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픽=송윤혜

◇대학생들도 군사 교육 받아

충남대 80학번인 독자 이강희(63·경남 창원)씨는 대학 1학년 시절 병영 집체 훈련을 받았다. “부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구르기를 시키는데 먼지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다들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면서도 겁을 잔뜩 먹었죠.” 유격, 각개전투, 구보, 화생방 등을 훈련하고 실탄 사격까지 했다.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친구들과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대학 시절 교련복에 달았던 명찰과 함께 간직하고 있다. 대학가에서 시행된 군사 교육의 흔적들이다.

대학생 군사 교육은 1969년 교련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면서 시작됐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시도와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을 잇따라 겪은 직후였다. 월남(남베트남) 패망을 계기로 1975년 병영 집체 훈련(1학년)이 시작됐고 1976년에는 학생 병영 훈련소 ‘문무대’가 준공됐다. 국가관과 안보 의식을 기른다는 명목하에 군사 교육을 이수하면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혜택을 줬지만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을 군대식으로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학생들의 병영 집체 훈련 반대 시위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대학생 군사 교육은 민주화 이후 1989년 폐지됐다.

◇영화·만화·낚시… 문화와 레저의 시대

숨 막히는 분위기만 계속됐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는 레저와 문화도 다채롭게 꽃을 피웠다. 이를 반영하듯 독자들이 간직해 온 사진이나 여러 자료도 이 시기부터는 컬러로 바뀌면서 흑백이 상당수였던 1970년대와 대조를 이룬다.

경기 파주시 독자 김국률(70)씨는 낚시 월간지 취재기자로 30여 년간 활동하며 서적·사진 등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그중에 조선일보에서 발행했던 ‘월간 낚시’ 창간호(1984년 5월)가 포함돼 있다. 김씨는 “낚시 분야 출판물과 월간지 발행이 늘어나던 시기였다”면서 “잡지가 발행되려면 단순히 동호인이 늘어나는 수준을 넘어서 관련 산업이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1960년대까지 사용했던 대나무 낚싯대, 1970년대의 유리섬유 낚싯대에 이어 지금까지도 쓰이는 탄소섬유 소재 낚싯대가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하면서 낚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관련 산업도 커졌습니다.” 낚시의 품격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월간 낚시 창간호는 표지를 생동감 있는 컬러로 인쇄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강남구 독자 송제희(53)씨는 어려서부터 모은 홍보 전단 등 영화 관련 자료 약 4000점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그는 “자료들이 지금은 손을 떠났지만 자료원에 가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면서 “몇 가지는 사진을 찍어 남겨 뒀다”고 했다. 그 가운데 1980년대 개봉했던 극장판 만화영화 전단들이 있다. ‘15소년 우주 표류기’(1980), ‘소년 007 지하제국’(1981), ‘황금의 팔’(1983) 같은 작품들이다. 송씨가 “어린 시절 엄청난 인기였다”고 기억하는 ‘로보트 태권V’(1976) 이후부터 1990년대 TV 만화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극장판 만화영화가 쏟아져나오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상영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별관과 국제극장. 개봉일은 7월 25·27일로 표기돼 있어 전단의 표현처럼 “방학과 동시에 일제 개봉”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 독자 최미옥(55)씨가 간직하고 있는 광화문 국제극장 종이 영화표에는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총력안보’ 같은 문구가 작게 인쇄돼 있다. 지금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 중인 대한민국이 한 세대 전에는 영화표에 표어를 넣어 계몽할 만큼 인구 조절이 시급한 나라였음을 보여준다.

그때 본 영화는 ‘사랑하는 자식들아’(1984)였다. 그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고 일기장에 적혀 있다”고 했다. 입장권 뒷면에 날짜가 포함된 ‘금일매표’ 도장이 있고 앞면에는 회차와 좌석 번호가 있다. 요즘 영화표처럼 상영관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은 단관 극장이었기 때문이다. 국제극장은 단관 극장 시대를 대표하던 영화관 중 하나였으나 재개발로 1985년 폐관했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여러 상영관을 모은 멀티플렉스(복합 영화관)가 대세가 됐다.

경기 김포시 독자 이은아(50)씨에게 어린 시절 들었던 카세트테이프는 어머니를 기억하게 해주는 보물들이다. 1982~1983년 개정 교과서에 따른 어린이 동요 테이프, ‘동물의 사육제’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수록된 5~6학년 감상 음악 테이프, ‘똑순이’ 김민희나 KBS ‘모이자 노래하자’ MC 박설희가 부른 캐럴 테이프도 있다. 초등학생들도 아이돌 노래를 듣는 요즘과 달리 아이들에게도 동요와 클래식이 교양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아이들은 동요를 들어야 한다”며 이씨와 언니, 동생까지 삼남매를 자주 레코드점에 데려갔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음질이 좋지만 가끔씩 이 테이프 소리를 들으면 엄마와의 옛 추억이 생각나서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

서울 종로구 독자 안동헌(56)씨는 연희동에서 50번 버스를 타고 아현중학교에 다녔던 1980년대 초반 학생용 버스 회수권을 수집했다. ‘중고생’이 적힌 회수권의 요금이 85원, 100원, 200원 등 각기 다르다. 안씨는 “회수권이 바뀔 때마다 한 장씩은 쓰지 않고 모았다”면서 “10장씩 묶어 팔던 회수권을 절취선에서 조금씩 어긋나게 잘라 11장으로 만드는 ‘재주꾼’도 많았다”고 했다. 이렇게 회수권을 늘리는 방법은 ‘응답하라 1988′ 등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도 나온다. 종이 회수권은 동전 형태의 금속제 토큰과 함께 대표적인 버스 요금 지불 수단이었지만 교통 카드가 등장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대전광역시 독자 장은덕(69)씨는 금성사(현 LG전자) 선풍기를 40여 년 사용했다. “맞벌이를 해도 월급날이면 주머니에 출근할 버스비만 겨우 남을 만큼 빠듯했던 시절”에 구입한 가장 저렴한 선풍기였다고 한다. 제품에 붙은 스티커에 제조 시점이 1982년으로 표기돼 있다. 그해 금성사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세웠다. 같은 해 삼성이 포르투갈에 제조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