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200여편, 마산서 원없이 연극했어예”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때까진 술은 입에도 안 댔는데, 교수님이 막걸리 사주시며 ‘영문과 학생은 반드시 연극을 해보는 게 좋다’ 하시는 거예요.”
이상용(73) 극단 마산 대표는 참 모질고 질긴 연극과의 첫 인연을 그렇게 기억했다. 경남대 71학번으로 연극을 시작해 53년간 마산을 중심으로 경남 연극을 이끌어온 그가 제34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무대 데뷔작인 유치진 작 ‘부부’부터 줄곧 리얼리즘 연극에 천착해온 우리 지역 연극의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연극인. “1975년 졸업할 때도 친구들은 다들 영어교사 자격증 받을 생각만 하는데 저는 연극 생각뿐이었어요. 덜컥 극단 ‘까페 떼아뜨르’를 만들고 가톨릭 마산교구회관 강당에서 첫 작품을 올렸죠.”
연극 200여 편을 무대에 올리고 희곡 30여 편을 썼다. 그는 “연극은 우리 삶을 다루는 것 아닌가. 모든 연극은 결국 리얼리즘 기반”이라고 말한다.
1984년 창단된 극단 ‘마산’의 대표를 맡아 40년을 보냈다. 경상남도연극제에서 대상 7회, 우수상 7회를 받은 경남 대표 극단. 대한민국연극제에서도 대상인 대통령상을 2회(1996·2008년) 받았고, 창작 희곡으로 희곡상도 두 번(1986년 ‘삼각파도’, 1991년 ‘진주성’) 받았다. “1996년 광주광역시 전국연극제 출품작이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였어요. 배우들과 지역 신문과 방송을 다 모아놓고 삭발식을 해서 화제가 됐죠. 우리 이만큼 간절한 결의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했고요.”
1987년부터 12년간은 트럭에 간이 무대를 싣고 전국을 다녔던 ‘이해랑 이동극장’처럼 경남 도내 농어촌 지역을 순회 공연하며 연극 대중화를 위해 힘썼다. 1989년 마산국제연극제를 창립해 2014년까지 26년간 개최했다. “맨날 서양 고전 연극만 할 게 아니라, 우리 걸 보여주고 외국 것도 한번 보자, 연극을 통해 국제 교류를 활성화시켜보자는 돈키호테 같은 생각이었죠.” 마산에 문예회관도 없던 시절, 매년 10여 나라의 극단을 초청한 것도 그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경남연극협회장, 마산예총 회장을 지냈다. 한국연극예술상(1992), 경상남도문화상(1998)을 받았다.
이 대표는 “저야 평생 원 없이 연극에 전념했지만 식구들은 고생만 시켰다. 5년 전 아내가 암 수술을 받는 걸 보며 ‘내가 아파야 할 건데…’ 싶어 마음이 에이더라”고 했다. 이해랑연극상을 받게 됐다는 말을 들은 아내가 그러더군요. “평생 자기 마음대로 연극만 하다가 귀한 상까지 받았으니, 이를 우짜면 좋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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