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도 처세술 배우는 나라"...'어린이 자기계발서' 열풍, 이대로 괜찮을까

손효숙 2024. 4. 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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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열풍이 어린이 책까지 옮겨붙었다.

최근 '어린이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린이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출판계 안팎에선 실용서에 편중되는 어린이책 출판 트렌드가 유년기의 다양한 독서를 방해하고 지적 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인 심리학책의 아이디어를 빌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쓰는 자기계발서가 쏟아진 건 2, 3년 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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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어린이 자기계발서' 열풍
베스트셀러 10위 목록에 9권 점령
실생활 파고드는 밀착형 조언 
"유년기 교양 습득 한계"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자기계발서 열풍이 어린이 책까지 옮겨붙었다. 최근 '어린이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린이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출판계 안팎에선 실용서에 편중되는 어린이책 출판 트렌드가 유년기의 다양한 독서를 방해하고 지적 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이달 아동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는 어린이 자기계발서 열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대화 기술, 인간 관계 유지법, 감정 관리법 등 처세술을 다룬 어린이 자기계발서가 10위권에 9권이나 포함됐다. '상처 주는 말 하는 친구에게 똑똑하게 말하는 법'(북라이프 발행), '다정한 말, 단단한 말'(우리학교), '나도 상처 받지 않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는 말하기 연습'(위즈덤하우스), '예의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사계절), '감정에 이름을 붙여봐'(파스텔하우스), '어린이를 위한 그릿'(비즈니스북스), '배려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친구가 되고 싶어'(파스텔하우스), '예의 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2'(사계절), '좋아 싫어 대신 뭐라고 말하지?'(이야기공간) 등 제목만 보면 아동책 순위인지 성인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인지 헷갈릴 정도다.


"감정·관계도 매뉴얼대로"

'상처 주는 말 하는 친구에게 똑똑하게 말하는 법'은 초등학생을 위한 친구관계 조언을 담았다. 북라이프 제공

성인 심리학책의 아이디어를 빌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쓰는 자기계발서가 쏟아진 건 2, 3년 전부터다. 학교생활 등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현실적인 대처법을 알려주는 이른바 '실생활 밀착형' 어린이책들이다. 특히 '대화·관계'와 '감정·심리'를 주제로 한 자기계발서가 강세다. 예스24에 따르면 2020년에 각각 3권, 11권에 불과했던 유사 도서는 지난해 17권, 24권으로 늘었다.

이들은 성인용 자기계발서 형식과 유사하다. 아동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상처 주는 말 하는 친구에게 똑똑하게 말하는 법'은 4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말 그릇'을 쓴 김윤나 작가의 후속작이다. 2017년 나온 '말 그릇'에서 사회 초년생이 단단하게 말하는 법을 다뤘다면, 지난해 펴낸 어린이 책에선 첫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초등학생 독자를 대상으로 '친구의 말에 상처받는 59가지 상황'에 따른 말하기 방법을 알려준다. 책은 지난해 어린이 분야 전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예스24 관계자는 "아이들의 감정과 관계에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관련 책 수요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쉬운 해법' 찾는 편중독서 우려

인기에 비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자녀들에게 인간관계를 가르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부모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된다"고 홍보하는 아동용 자기계발서가 독서의 참맛을 느끼고 폭넓은 독서습관을 기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탓이다. 실용서 위주의 독서가 어린이의 사고력 계발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 도서관저널을 발행하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유년기는 다양한 장르의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발전해야 하는 시기"라며 "사고를 유도하지 않고 복잡한 상황에 대해 하나의 정답으로 결론 내버리는 독서에 아이들이 젖어드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가 다양한 책을 읽혀 사고력을 기르기보다 정답과 처세를 알려주려는 분위기도 문제이고, 성인 베스트셀러 인기에 쉽게 편승하려는 출판문화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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