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굿은 유죄, 귀신 굿은 무죄… 무당 사기죄는 ‘이것’에 달렸다

이유진 2024. 4. 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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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의식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며 굿을 권유해 억대의 돈을 챙긴 무속인이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굿은 민간 토속신앙인 일종의 종교행위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속행위를 한 이상, 비록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무당이 요청자를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로또 굿'이 유죄, '퇴마 굿' 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법원이 귀신 쫓는 것을 일종의 종교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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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흉화복 굿은 실패해도 처벌 어려워
"부동산 비싸게 팔아줄게" 하면 유죄
법원 "전통적 무속행위 벗어나면 사기"
영화 '파묘'에서 배우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캐릭터가 극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굿을 치르고 있다. 영화 '파묘' 스틸컷

“퇴마의식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며 굿을 권유해 억대의 돈을 챙긴 무속인이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굿을 일종의 '종교행위'로 보고, 굿을 통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사기로 간주하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1일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 김선범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김모(50)씨에게 지난달 20일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서울 중랑구에서 법당을 운영하는 김씨는 지난해 3월 몸이 아파 점을 보러온 홍모씨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네가 죽거나 제정신으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으며 가족들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해 그로부터 30차례에 걸쳐 7,937만 원 상당의 돈을 받아냈다.

김씨는 홍씨를 따라온 다른 고객 원모씨에게도 “퇴마굿을 하지 않으면 간경화 합병증을 앓는 아버지는 물론 너도 동생도 엄마도 죽는다”며 굿 값으로 한 달간 2,5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게 한 혐의도 받는다. 약 7개월 동안 총 8차례 굿을 하며 1억 원이 넘는 돈을 ‘굿값’으로 챙긴 셈이다.


퇴마 굿은 종교행위...목적 못 이뤄도 기망 아냐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김씨의 행동이 기망(허위사실을 말해 상대방을 착오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기망행위는 형법상 사기죄의 구성요건이다. 재판부는 “굿은 민간 토속신앙인 일종의 종교행위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속행위를 한 이상, 비록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무당이 요청자를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귀신 굿'이 아닌 '로또 굿'에선 유죄가 나온 사례가 있다. 올해 2월 대법원은 “로또에 당첨되려면 굿 비용이 필요하다”며 꼬드겨 2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긴 무속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길흉화복에 대한 결과를 약속하면서 기도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받았을 때, 전통적 행위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사기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로또 굿’이 유죄, ‘퇴마 굿’ 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법원이 귀신 쫓는 것을 일종의 종교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김씨 사건에 대해 “종교의식을 위해 치르기 위한 비용으로 본 것”이라며 "시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비용이 책정됐고, 용역행위(굿)도 시행됐기에 상대방을 속인 건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특정한 번호를 미리 알아야만 가능한 로또 복권 당첨의 경우, 퇴마와 달리 '원래부터 무속인들이 해왔던 행위'로 보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무속인이 귀신이나 영적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특정한 결과를 장담하는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수원지법은 모텔 건물 매각 때문에 고민하는 모텔 주인을 상대로 "굿을 하면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현혹한 무속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신 굿을 일종의 종교행위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지나친 경우엔 유죄 선고가 나오기도 한다. 2017년 대법원은 "당신 부인이 조현병에 걸린 것은 귀신이 들린 것이니 기도를 하여 낫게 해줄 수 있다"거나 "아들 이름을 적어 골프채로 쳐서 액운을 몰아내야 한다"면서 억대의 돈을 받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 판결을 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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