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사 칼럼] 파시즘은 죽지 않았다

2024. 4. 1. 17: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파시즘 특징 가진 권위주의의 등장

세계는 지금 파시즘의 귀환을 목도하는 중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파시스트일까?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파시스트일까? 답은 파시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건 단순한 권위주의가 아니다. 파시즘의 특징을 가진 권위주의다.

우선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첫 번째는 나치즘과 파시즘이다. 이탈리아 철학가이자 소설가,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1995년 저서 '우르 파시즘(Ur-Fascism)'을 통해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은 히틀러 정치체계의 완전한 윤곽"이라고 말한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스탈린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지향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이와 달랐다. 에코는 "무솔리니에게는 철학 대신 그럴듯한 말만 있다…(중략)… 파시즘은 전체주의라기에는 '모호한,' 각기 다른 철학과 정치사상의 콜라주, 모순의 군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의 전체주의 역시 '모호하다.'

불변의 속성: 비이성주의 ·차별 등

두 번째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야 한다. 1920~1930년대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했다. 자연스럽게도 그 수단과 목적이 모두 군사주의적 면모를 띠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지령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중앙집권적 조직이 필요했다. 현재는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파시즘은 과거의 형태와 다르다. 그러나 파시즘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에코는 저서를 통해 '우르 파시즘(Ur-Fascism)', 즉 영원한 파시즘의 특징을 설명한다.

전통 숭배가 그 첫 번째 특징이다. 파시스트들은 과거를 숭배하며, 결과적으로 현재성을 거부한다. 에코는 "계몽과 사유의 시대는 현대 부패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르 파시즘은 비합리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동을 위한 행동' 숭배도 관찰된다. 이는 결국 분석적인 비판에 대한 적대감으로 귀결된다. 우르 파시즘은 '차이'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이용하고 과장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찾으려 한다. 고로 우르 파시즘은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이다.

또 다른 특징은 개인 또는 사회적 좌절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전형적인 파시즘의 형태가 좌절한 중산층을 향한 호소로 나타난 이유다.

좌절한 중산층 향해 민족주의 호소

우르 파시즘은 좌절한 중간 계층에 민족주의를 호소해 지지층을 형성한다. 에코는 이들 지지자가 "부와 힘을 과시하는 적에게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르 파시스트에게는 "삶을 위한 투쟁은 없고, 투쟁을 위한 삶"만 있을 뿐이다.

대중적 엘리트주의를 옹호한다. 저서 '우르 파시즘'에서 에코는 "모든 시민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 속하게 되며 각자는 영웅이 되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한 "민중은 공통의 의지를 가진 단일한 개체로 여겨진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공통의 의지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지도자는 민중의 의지를 전달하는 해석자인 척한다"고 말한다.

또한 우르 파시즘의 독특한 남성주의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의지를 성(性)적인 문제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는 여성에 대한 경멸 그리고 전통적인 성 관념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난다.

우르 파시즘의 마지막 특징은 새로운 언어다. 우르 파시즘은 '신(新)어'를 통해 조직적으로 거짓을 말한다. 해나 아렌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78년 격주간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당신에게 늘 거짓을 말한다면, 결과적으로 당신이 그 거짓을 믿는 게 아니라, 모두가 더는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추종자가 지도자를 믿는 이유는 단지 그 지도자가 리더십이라는 신성한 껍데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상은 우르 파시즘의 흥미로운 특징이었다. 오늘날의 우익 대중주의(populism) 역시 과거와 전통 숭배, 형태를 막론한 비판에 대한 적대감, 차이에 대한 공포와 인종차별, 사회적 좌절로부터의 기원, 민족주의, 음모론, '민중'이 엘리트라는 믿음, 추종자에게 진실의 정의를 말하는 지도자의 역할, 권력욕과 남성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늘날 꿈틀대는 100년 전 악몽

지난 3월 트럼프는 이민자를 '짐승'에 빗댔고, 자신이 올해 11월 대선에서 패한다면 "나라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여 2021년 1월 6일 의사당에서 폭동을 저지른 이들을 향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애국자"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행정부와 사법부를 그의 추종자들로 채우고,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사법 체계를 비난할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법 위에 있다. 무엇보다도 공화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파시즘은 1920~1930년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트럼프는 경제 및 무역전쟁이 아니라면 전쟁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의 '천재'라 부르며 미화한다. 파시즘에 뿌리를 둔 여러 유럽 정치인은 전통주의와 민족주의, 인종차별 등 우르 파시즘의 특징을 두루 공유하지만, 이같이 폭력을 감싸지는 않는다.

1920~1930년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이제 러시아 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전통적 사상도 마찬가지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회주의는 100여 년 전과 다르다. 정치 전통의 개념과 구체적 시사점은 당연히 사회와 경제, 기술과 함께 변화한다. 그러나 이들 사상의 핵심에는 여전히 역사와 정치, 사회를 대하는 태도라는 공통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파시즘에도 적용된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는 지금 각운을 맞추는 중이다.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파시즘으로의 편승은 위험하다.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Fascism has changed, but it is not dead'를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