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 특유의 수다스러운 말발 튀김옷이 눅눅하게 느껴진 까닭('닭강정')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4. 4.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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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 넷플릭스가 아니라 대학로로 향했어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은 수다스럽고 독특하지만 지루하다. <닭강정>은 최선만(류승룡)의 회사 모든기계에 딸 최민아(김유정)가 찾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최선만의 회사에는 택배로 배달된 알 수 없는 보라색 기계가 있다. 그런데 최민아가 그곳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하고 만다. 거기다 최민아 닭강정은 다른 닭강정과 뒤섞이면서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그 사실을 목격한 이는 모든기계의 직원 고백중(안재홍)이다.

최민아를 짝사랑하던 고백중과 최민아의 아버지 최선만은 이제 닭강정, 아니 닭강정으로 변한 딸을 위해 일생을 건다. 일단 보라색 기계의 정체도 밝혀야 하고, 닭강정들 중에 진짜 최민아 닭강정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최민아를 닭강정에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도 찾아야만 한다.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것 같다고? 실제로 드라마는 회차를 거듭하면서 이상한 과학자들과 외계인도 등장한다.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익숙한 개그 같아서 좀 눅눅하다.

사실 <닭강정>의 시청자들은 대부분 30분짜리 드라마 몇 회 차를 보다가 그 길을 함께 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보통 황당한 설정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끈 이후에는 그 황당함을 뒷받침해 줄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전개가 필요하다. 그러면 그 뒤를 따라 시청자도 황당함 속에서도 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닭강정은 이 황당한 설정에 시청자를 몰입시킬 전개 방향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닭강정>은 MZ세대의 장진 감독이라고 할 만한 수다스러운 이병헌 감독이 연출과 대본을 맡았다. 황당해서 웃긴 원작 웹툰의 원작 위에 이병헌 감독 특유의 수다스러운 말발 튀김옷을 입혔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닭강정보다 아무것도 없는 튀김옷을 씹는 것 같은 맛이다. 이병헌 감독은 멜로와 코미디가 체질일 수는 있지만, 의외로 <닭강정>에서는 힘을 못 쓴다. 바삭한 재미가 가끔 있지만, 이걸 왜 씹고 있지 같은 그런 기분.

물론 <닭강정>의 각각 장면은 취향에 따라 웃길 수도 있다. 1회차 모든기계 직원들 간의 느슨하고 넋 나간 대화들이나 3회차의 인터스텔라 패러디 같은 부분은 헛웃음을 짓게 한다. 조선시대나 외계인의 등장도 어떤 부분에는 웃음벨이 터진다. 하지만 어떤 장면들은 아이디어는 기발하지만 말이 많아서 오히려 그 맛이 좀 사라진다. 유머와 유치함 사이에 경계에 있는 장면들도 생각보다 많다. 시청자가 배꼽을 잡기 전에, 드라마가 먼저 배꼽을 드러내며 춤을 추는 식이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개그콘서트>가 아니다. 짧은 호흡의 장면 하나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회를 거듭하며 연속적으로 쌓여가고 변주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필요하다. 이병헌 감독이 제작한 JTBC <멜로가 체질>처럼 로맨틱코미디의 경우, 로맨스 서사에 대해 시청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흐름이 있다. 그 때문에 <멜로가 체질>은 기본 전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멜로가 체질> 역시 로맨스 장르치고는 아주 친절한 전개의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게 더 신선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황당한 <닭강정>은 한번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매력을 상실한다.

그렇다고 <닭강정>의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닭강정>은 류승룡과 안재홍, 김남희 등 출연배우들의 과장되고 독특한 연기를 보는 맛은 있다. 특히 경찰서에서 박카스와 닭강정을 병치시켜 놓으며 경찰을 설득하는 류승룡의 연기는 백미다. 또한 안재홍 또한 디테일한 과장된 연기로 드라마의 플롯보다 더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후반부 외계인으로 등장한 김태훈의 '괴상한' 연기 또한 이 배우에게 전혀 느껴보지 못한 매력이었다. 이들 배우들만이 아니라 다른 조연진들의 연기도 '괴랄하게' 재밌다. 이건 이 드라마가 TV에는 맞지 않지만, 배우들을 신나게 만드는 대본이라는 의미도 된다.

<닭강정>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TV보다 무대에서 보아야 더 웃기겠다는 것. <닭강정>은 과장된 부조리극 연극을 OTT에 날 것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리모컨을 든 거리감 있는 시청자에게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 헛소동을 작은 소극장에서 지켜보는 관객이라면, 배우들과 호흡하며 훨씬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무대에 올린다 해도 너무 빤한 과학자와 외계인 서사에 대한 고민은 좀 필요할 것 같긴 했다. 오히려 인간이 닭강정으로 변한 존재 이유에 대해 더 탐구하면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닭강정으로 변한 인간의 형상은 작은 두뇌와도 흡사하여 우스꽝스럽기보다 섬뜩했기 때문에.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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