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스케일의 ‘믿거나 말거나’ 도시전설

한겨레21 2024. 4. 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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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훈의 행재요화]제 기능을 하면 안 보이고 기능이 멈출 때 보이는 것들… 현 정부 들어 크게 줄어든 안전 관련 예산, 행정력 저하가 책임 부재로 이어져
최근 갑자기 도로 위 지뢰라고 부르는 ‘포트홀’이 급증했음을 많은 이가 느끼고 있다. 기후 탓만 할 수 없는 문제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국정운영 기조로 삼은 정부에서 기반 보수 사업 예산도 줄었다. 서울 마포구 도로의 포트홀 위로 차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드러나지 않아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종류의 일이 있다. 그래서 곧잘 과소평가된다. 인터넷에서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화제가 되는 중소기업 관련 ‘썰’ 혹은 괴담이 하나 떠오른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경영자가 말하기를 ‘지난 몇 년간 서버에 문제가 생긴 일이 없었다’며 서버관리팀 전원을 해고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사례라며 전파되는 또 다른 도시전설로는 사외이사가 ‘날씨가 아직 더운 것도 아닌데 전기세가 아깝다’며 서버실에 켜뒀던 에어컨을 꺼버리고 아무런 보고도 안 했다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저 두 회사가 그 뒤로 어떤 파국을 겪었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심지어 앞의 사례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했다는 이유로 업적을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후기까지 있다고 한다.

서버에 문제없었으니 서버관리팀을 해고하자?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당장 보이지 않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 빚어진 촌극이자 비극이다. 어떤 사건이 터져야만 비로소 무슨 일을 하는 것이며 그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일하긴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 비로소 일을 아주 믿음직스럽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심각한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많은 인력과 자본이 무엇을 위해 투입되는지 알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토대로서, 기초로서 견고하게 작동해야만 회사가 제대로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저 두 도시전설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현재 대동소이한 성격의 행정적 파탄이 전 국가적 스케일로 일어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국가가 더 큰 범주의 개념이다. 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생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도구와 같은 것으로 국가를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모순과 갈등을 완화함으로써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는, 국가의 운전대를 잡고 조종하는(정부, 즉 government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guberno는 ‘조종하다’ ‘키를 잡다’라는 뜻이다) 정부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정부와 협력해 국가의 기능에 복무하는 것은 군대·경찰·검찰·대법원·관료 등의 공권력, 사법권력, 행정권력 기관들이다. 이들을 ‘억압적 국가장치’라고 부른다. 억압과 폭력, 강제를 동원해 사회의 현 상태 유지와 재생산을 수행한다.

억압적 국가장치라는 이름은 사회가 공동체로서 존속하기 위해 자유의 일정한 억제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려는 욕구가 있다. 자유가 무한정 주어진다면, 다른 존재와 마주치더라도 멈추거나 피하지 않고 관성을 유지하다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살인을 불사한 폭력이 발생한다. 여기서 주체는 자신의 자유와 이기심을 스스로 제한하고 다른 주체에게도 자유와 이기심을 제한하기를 권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자발적으로 억제하고 양보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문율, 암묵적 합의를 누구든지 언제든 깰 수 있다는 불안은 상존한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사회가 사회로서 존속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서로의 인격을 해치지 않는 선까지만 자유를 한정하는 기제가 필요하고, 여기에 제삼자가 강제로 개입해 중재한다. 제삼자가 바로 국가다.

그런 일을 맡는 부문이 있는지조차 모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와 권한을 국가에 일부 양도함으로써 평화와 안전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자유가 무한정 주어지면 앞서 말한 것처럼 평생 불안을 느끼고 옆 사람을 의심하며 살 수밖에 없고 결국 자유롭게 살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권력을 국가에 승인하며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한다. 더욱이 사회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분업체계가 다원화하며 여러 방면에서 일반인으로서는 대비나 대처가 까다로운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있기에,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기 위해 그 기능을 국영사업과 공공사업에 돈을 내어 위임한다.

흔히 말하기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재해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경제 형편에 따라 재해에 대비하고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은 크게 다르다. 예컨대 주거환경에 따라 수해 정도가 다르고 대처 방법과 비용이 다르다. 감염병으로 록다운(봉쇄) 조처가 내려졌을 때, 안락한 집에서 편히 지내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가 세금을 받고 국영사업을 벌인다. 만약 이 사업을 전부 민간에 위임한다면, 부자와 빈자 계층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사업성이 없기 때문에 혜택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이 오른다. 서민들은 오른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지 못한 채 항시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사실상 앞서 이야기한, 자유와 안전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상태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자가 그 높은 비용을 내고 민간자본의 양질의 안전과 보호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도, 종국에는 사회의 하층부터 계약이 깨진 이상 부자들 역시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부자로 살 수 있게 하는 사회의 작동이 멈춰 지위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안전사고, 재해, 감염병 등 위험을 방지하는 일은 눈에 잘 안 보인다. 제 기능을 하면 안 보이고, 기능이 멈출 때 비로소 그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한 기업의 서버관리팀 경우와 같이, 무슨 일을 하는가 의문을 갖는 것을 떠나 그런 일을 담당하는 부문이 있는지조차 생각할 일이 없을 때 일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매우 근시안적인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 부서에 들어가는 인력과 자본이 낭비로 보인다는 이유로 팀을 해체한다.

이러한 웃지 못할 도시전설 괴담 같은 일이 전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국정운영 기조로 삼은 정부라면 자연히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문부터 예산 삭감을 시도한다. 안전, 위생, 방역, 상하수도 관리 등 기반 보수 사업뿐만 아니라 교육, 출판, 과학, 환경 등 그 부작용이 당장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미래사업이 삭감 대상이 된다.

2023년 11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용산구보건소 관계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방제는 개인이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줄어든 산재예방 점검·응급의료·생활소음 기술…

2023년 어느 날, 정말 때아닌 빈대 염려증이 전국을 흔들었다. 원래 불결의 상징이었지만 주거환경이 선진화하고 방제사업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빈대는 사실상 박멸된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다시 빈대 목격 사례가 급증한 이유가 뭔지 생각해봐야 하겠다.

기후위기와 살충제 내성 등에 따라 이미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빈대 문제로 몸살을 겪었으며, 국외여행과 국제운송을 통해 한국에 빈대가 유입된 탓도 크다. 그럼에도 방제·방역 관련 예산 삭감과 더불어 수년째 다시 감퇴한 국가 신뢰도로 인해 상당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질병관리청이 ‘방제는 개인이 신경 써야 한다’고 하는 등, 다소 안일한 당국의 대처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꼈을 텐데 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최근 수개월간 갑자기 도로 위 지뢰라고 부르는 ‘포트홀’이 급증했음을 많은 이가 느끼고 있다. 눈이 많이 내렸다가 녹기를 반복하고 비도 유난히 많이 내린 탓에 도로 곳곳에 도로 파임 현상이 생겼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수 정비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나같이 예산이 부족해 행정력이 저하한 것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즉, 기후 탓만 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의 감세 정책과 세수 부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 안전 관련 예산 감소와 행정력 저하 그리고 최종적으로 책임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 피해와 서울 이태원 참사, 2023년 일본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굴욕적 대응,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해병대 채 상병 사건 등은 국가가 국민 보호의 책무를 방기해서 일어난 참사다. 직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고가 이번에는 왜 일어났는지, 비슷한 참극이 왜 연이어 발생하는지 알아보는 작업이 아직도 미진하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일체의 진상규명과 문책의 시도에 정쟁과 정쟁화라는 말을 집요하게 붙이면서 회피한다. 이런 형편에서 다시 자연스럽게 각자도생의 정서가 확산한다.

거의 모든 부문에서 예산이 줄었지만 특히 안전 관련 예산이 크게 축소됐다. 교통사고가 잦은 구간을 보수하는 예산이 삭감됐고, 농민 건강 관련 예산도 삭감됐고, 산업재해 예방 점검 관련 예산도 삭감됐고, 응급의료 예산도 삭감됐고, 어린이 안전을 위한 통학버스 개발 사업 예산도 크게 줄었고, 생활 소음과 폐기물 저감 기술을 개발하는 예산도 줄었고, 긴급재난대응 연구예산도 90% 삭감됐다.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 청소년 예산,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도 삭감하면서 현 정부는 미래를 위한 대비에 훼방만 놓고 있다.

자유방임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앞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건 일을 잘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정부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현 정부가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방임주의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자유방임주의는 야경국가 체제로 돌아간다.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하되 근본적 기능인 안전과 보호만큼은 남겨둔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국가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아예 잡지 않고 놔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이런 정부를 정부로 인정해줘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김내훈 칼럼니스트

*행재요화: 다각적으로 정치·사회·문화 담론을 비평하는 칼럼입니다. ‘행재요화’는 남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놀부심보’를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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