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맞아 순록 떼죽음…산타 썰매는 누가 끌지?

한겨레 2024. 4. 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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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⑫ 그레타 툰베리 배신 사건 1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의 순록. 남종영 제공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스웨덴의 환경 영웅 그레타 툰베리가 풍력발전소 설치를 반대한다는 거였어요. “툰베리가 다국적 정유업체에서 로비를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노르웨이에 풍력발전 단지가 있는데, 거기서 풍력발전에 반대하는 순록 유목민 편을 든다는군요. 그레타 툰베리가 배신하다니! from 노르웨이의 기후시민이”(☞11회에서 이어짐)

이메일을 읽은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와트슨 요원이 깜짝 놀라 소리를 쳤습니다.

“이거 빅뉴스인 걸요? 아니. 게다가 툰베리는 채식하는 친구 아닙니까? 그런데 순록 잡는 사람들 편을 들다니!”

홈스 반장이 답했습니다.

“세계적인 셀러브리티가 우릴 만나줄 리도 없고. 그럼, 일단 노르웨이의 순록부터 보러 갑시다. 와트슨, 자료 조사 좀 부탁해.”

산타가 개썰매를 포기한 이유

순록은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레인디어(reindeer)’라 불리고, 미국에서는 ‘카리부(caribou)’라고 불립니다. 학명은 ‘란지퍼 타란두스’(Rangifer tarandus). 다양한 아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종입니다.

북극권과 아북극에 사는 순록은 이동에 능한 종입니다. 귀신고래가 바다 최고의 장거리 이동 선수라면, 육상에서는 최대 4800㎞를 오가는 순록이 있습니다. 봄에는 북쪽으로 이동해 해빙된 목초지에서 지의류(이끼류)를 뜯어먹어요. 모기를 피하는 데도 적합하죠.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고요.

순록은 초승달 모양의 넓은 발굽이 있어서 눈이 녹은 부드러운 땅, 늪지대를 지날 때도 체중을 분산할 수 있어요. 툰드라 지형에 최적화된 거죠. 어떻게 추위를 버티냐고요? 음, 이건 좀 어려운데, ‘역류 열교환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요. 심장에서 나온 뜨거운 피가 손발 근처로 가면 열을 빼앗겨 차가워지죠? 그런데, 순록은 차가워진 정맥혈과 몸속을 순환하는 따뜻한 동맥혈이 얽혀 있어 열을 상호 교환함으로써 열 손실을 줄여요. 물속에서 발을 구르는 오리류나 펭귄도 역류 열교환을 할 수 있도록 신체가 적응했죠.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에 흩어진 북극 원주민은 순록을 유목하며 우유와 고기 그리고 가죽을 얻었지요. 순록은 썰매개에 비해서도 훌륭한 이동수단입니다. 개는 5~7마리가 한 팀이 되어 짐을 실은 썰매를 끌고 하루 70~80㎞를 달릴 수 있어요. 반면, 순록은 20마리로 한 팀을 이뤄 썰매를 끌고 하루 20~25㎞를 가요.

그런데도 원주민은 이동 수단으로 순록을 선호해요. 왜냐면, 개는 하루에 2㎏의 신선한 고기를 줘야 하거든요. 순록은 그럴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운반하는 교통 수단으로 순록을 뽑은 거예요. 미국의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는 1823년 목격담을 시로 펴냈어요.

“성탄절 전날 밤, 쥐 한마리 들썩이는 소리조차 없이 조용할 때 아이들은 굴뚝에 양말을 걸어놓고 성 니콜라스가 오길 기다리며 침대에 웅크렸어요. 창문 밖으로 섬광 같은 물체가 날아갔고…나의 눈에 나타난 건 작은 썰매와 아홉 마리의 순록 그리고 작고 늙은 운전사. 그렇게 활기차고 빠른 이는 성 니콜라스밖에 없죠.”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의 순록. 남종영 제공

노르웨이의 서남쪽 고원에 이르자, 순록 수백 마리가 지의류를 뜯고 있었어요. 거대한 뿔을 가진 순록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올해 크리스마스 배달원은 뽑았나요?”

“할아버지들이 설립한 ‘산타 로지스틱스’에 지원한 순록이 너무 적은데다, 뽑힌 이들마저 과거와 달리 너무 허약해서, 올해부터는 루돌프만 상징적으로 남기고 드론 배송으로 전환한다고 들었어요.”

거대한 뿔이 앞발로 땅을 파면서 말했죠.

“지금 우리 순록 상황이 말이 아니에요. 2016년 우리 순록들이 높은 언덕에 있다가 번개를 맞아 떼죽음을 당했다오. 괴이한 일이야. 그 뒤부터는 날씨가 오락가락이고 이끼가 까딱하면 얼어서 우리는 먹을 게 없고 굶주리고 허약하고 힘이 없다오. 젊은 순록도, 야생 순록도, 가축화된 순록도 마찬가지라네. 우리 순록들은 곧 종말이 올 거라고 믿고 있오.”

번개 맞고 죽은 순록 323마리

2016년 8월, 노르웨이 남부 고원의 하르당에르비가국립공원 1200미터 지점 언덕에서 야생 순록 수백 마리가 이끼를 뜯고 있었습니다. 마침 비가 많이 내려 땅은 흠뻑 젖어 있었지요. 그때 번개가 언덕으로 내리쳤고, 물에 젖은 땅을 타고 전기가 흘러 순록을 죽였습니다. 무려 323마리가 죽었어요. 비가 오면 순록들은 서로 붙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피해를 더 키웠죠. 홈즈 반장이 덧붙였습니다.

“거대한 뿔 아저씨,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자연의 현상이에요. 그래서 국립공원 쪽이 설치류가 들끓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우려에도 300여마리의 사체를 현장에 그대로 둔 거고요.”

“하지만 하르당에르비는 유령이 출몰하는 금단의 땅이요.”

“과학자들이 어떤 변화가 있는지 4년간 지켜봤습니다. 자연은 고도의 회복력을 보여주었어요. 까마귀, 독수리, 여우 같은 청소부 동물(scavenger)이 죽은 고기를 차지했죠. 쥐들은 포식자가 무서워서 얼씬도 않다가 1~2년 지나서야 나타났죠. 사체가 썩으면서 순록의 내장에 있던 검은시로미(crow berry) 씨앗을 청소부 동물이 퍼뜨렸어요. 일대는 건강한 툰드라 생태계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물론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기상이변의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하당에르비다의 순록 떼죽음과 같은 대량 폐사는 더욱 빈번해질 겁니다. 2019~2020년 호주 산불로 800만 마리의 동물이 죽었어요. 와트슨 요원이 거대한 뿔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레타 툰베리를 보신 적 있습니까? 인간 세계에서 꽤 유명한 청년인데요.”

“산 아래로 내려가보시오. 거기는 북극 원주민 사미족과 어울려다니는 순록이 있오. 그들이 아마 툰베리를 만났을 거요.”

*4월8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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